김광남 박사
김광남 박사

경관(景觀)은 산이나 들, 강, 바다 따위의 자연이나 지역의 풍경을 뜻하며 기후, 지형, 토양 따위의 자연경관에 인간 활동이 만들어 낸 문화경관을 더한 복합 개념이다(국립국어원). 「경관법」에서도 경관을 ‘자연, 인공 요소 및 주민의 생활상(生活相) 등으로 이루어진 일단(一團)의 지역 환경적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같은 맥락으로 정의하고 있다.

경관법은 국토 경관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경관의 보전·관리 및 형성에 필요한 사항을 정해 아름답고 쾌적하며 지역 특성이 나타나는 국토환경과 지역 환경 조성에 이바지하기 위해 2007년에 제정되었다. 그 뒤 2019년까지 모두 9차례나 개정되었는데 문제는 이 법이 여전히 계획 중심, 규제 중심, 심의 중심, 전문가 중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계획 참여, 심의 자문, 현장 활동을 세 영역의 각각 다른 입장에서 일하면서 필자가 느끼는 것은 이 법에 따른 경관 정책이 여전히 주민과 동떨어지고 심지어 공공이 경관 훼손의 주범인데도 불구하고 주민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는 편향된 시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공무원과 주민은 물론 심지어 전문가들까지도 만들고, 세우고, 채우고, 불 밝히는 것이 경관이라는 오해와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을 늘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수십 년간 진행돼 온 농촌개발사업에서 우리 농어촌경관 정책은 부처, 공간, 내용별로 유기적인 협력체제가 부족하고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는 주력 사업을 보조하는 역할에 그쳐왔다. 2, 30년 전에 나온 여러 정책과 계획에서도 농촌 경관이 날로 그 고유성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는데 지금도 농촌 경관이 더 나아진 곳은 손을 꼽기 어렵다. 그렇다면 혹시 우리 경관정책이 지향하는 방향성이나 접근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어촌뉴딜사업을 보면 더 실망스럽게 걱정된다. 1개소에 100억 내외가 들어가는 사업이 거의 모두 개발사업, 건축사업에 치중되어 있다. 생활공간에 대한 경관 회복, 자연생태 경관을 유지, 복원하기 위한 방향이나 내용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하기 어렵다. 어촌의 생존과 지속가능성에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연안 생태계와 생활경관은 정작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다.

농어촌 곳곳에서는 지금도 국적 불명의 경관 등장, 경관 부조화, 인위적 경관 설정, 불필요한 시설물과 공사가 계속되고 있다. 방문객을 유입한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조악한 상징물과 부자연스러운 경관디자인 사업은 잠깐 반짝할지 모르지만 결국 농어촌이 가진 정체성, 상징성, 심미성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과거와 달라지지 않은 지금의 농어촌개발 정책대로라면 결국 오히려 경관파괴, 방문객 감소, 농촌 쇠락의 악순환을 되풀이할 것이고 이미 농어촌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례가 이런 우려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농어촌경관 정책은 ‘경관직불제’, ‘국가농업유산제도’와 같이 공공이 주도하고 제한된 영역과 대상, 집단을 상대로 하는 방식으로만 진행되고 있다. 이런 방향과 방식을 버리지 못하면 우리 경관정책은 주민과 방문객에게 모두 외면받게 될 것이고 확산성,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도 성과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실제로 가장 최근의 경관정책 버전인 ‘농업환경보전프로그램’은 ‘농업인의 농업환경보전 인식 제고 및 지역단위 농업환경 관리방안 추진 등을 통해 농업환경 보전·개선 도모’하기 위해서 주민활동비와 사업관리·운영비를 지급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지원 자격 및 요건을 ‘행정리 또는 법정리 단위를 기본으로 농업인을 포함하여 20인 이상의 주민이 참여하여 농업환경보전 프로그램을 실천하고자 하는 마을과 주민’으로 규정하고 있다. 언뜻 보면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동안 농어촌경관 정책에서 우리가 간과해온 ‘개인에 대한 참여 동기’를 여전히 경시하고 공동체 사업, 마을 단위 등 너무 공동체주의라는 허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앙정부도 공모사업이란 형식으로 쌈짓돈 쓰듯 지방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경관법 제19조에 근거를 둔 경관협정은 주민이 지역 경관을 보전·관리, 형성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제도로서 쾌적한 환경과 아름다운 경관 형성을 위해 토지소유자를 비롯한 관련 주체들의 전원 합의를 바탕으로 주민들끼리 맺는 협정이다. 그런데 이것도 주민 참여 동기 부여와 경관 보전 활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 등 정작 필요한 핵심 요소는 빠지고 공동체 일원으로서 책임만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현장에서 지켜본 경관협정은 실행과 실천이 빠진 전형적인 페이퍼플랜으로 마스터플랜이나 기본계획 등을 위한 구색 맞추기용으로 전락해 있다.

우리 경관 정책이 현장에서 주민에게 외면당하는 이유는 개인을 도외시하고 공동체의 신화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선이고 개인은 악이라는 착각을 버려야 길이 보인다. 개인에게 참여 동기를 부여하고 ‘우리 것’이 아니라 ‘내 것’을 아끼고 가꾸는 생활경관 정책이 자리 잡지 않으면 참여도. 지속가능성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경관정책은 학문에서 생활로, 계획에서 실천으로, 집단에서 개인으로, 외부지향에서 내부지향으로 기본 방향을 대전환해야 한다.

일찍이 잉글랜드를 비롯한 EU 국가들은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집단이 아니 개별 농가와 협약을 맺는 생활형 농어촌경관 보전 정책과 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우리는 잉글랜드 농환경계획(Agri-Environmental Schemes) 등 EU의 개인 협약형 농촌경관 지원정책을 좀 더 깊숙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마을과 공동체 단위가 아닌 개인 단위, 특정 경관이 아닌 생활경관 중심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해야 주민의 자발적 참여를 끌어내고 지속가능하다. 그러면 농어촌경관도 효율적으로 지키고 생활경관 보전활동 기본소득도 지원하는 이중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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