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 Times] 나무는 사계절을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나무의 화려한 성장(盛粧)을 볼 수 있는 계절은 여름이다. 여름의 나무는 가장 화사한 잎의 빛깔로 자신을 연출한다. 다른듯 같은 초록의 잎들은 나무의 전성기를 보여준다. 겨우내 세워둔 전략과 전술이 빛나는 시기이다. 어디에 얼마만큼의 가지를 키울 것인지, 잎을 낼 것인지, 그 계획에 따라 나무의 장년이 지속된다. 사람도 비슷하다. 어린 시절의 풍부한 영양과 정교한 관심이 제각각의 잎과 가지를 갖춘 개성과 자질을 길러낸다.

그렇게 나무나 사람이나 전성기를 지낸다. 전성기는 빛나지만 그 속에 감춰진 것도 많다. 벌레 먹은 잎이 있고 누렇게 뜬 잎도 있다. 절반쯤 부러지거나 상처 난 가지도 전성기의 나무 속에 공존한다. 사람도 그렇다. 위기와 역경을 헤치고 나가는 중년과 장년의 시기에 사람 또한 무수한 아픔과 상처에 직면한다. 겉으로 보아 그럴듯해 보이는 나무의 가지와 줄기와 잎에 수많은 흔적이 남아있듯이 사람도 자신이 미처 알아채지 못한 갖가지 세월의 흔적을 가지고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여름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겨울로 계절이 건너가면 감추어둔 진실들이 드러난다. 나무가 옷을 벗을 시간이 온 것이다. 나무는 자신을 빛냈던 옷을 벗겨 다시 자연의 품으로 돌리고는 내밀하게 감추어졌던 가지와 줄기의 본모습을 서서히 내보인다. 이제 나목(裸木)의 시절이 온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무의 희비가, 나무의 영욕이 엇갈린다. 그리고 이 시기에 사람들에게는 성적표가 매겨진다.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는 시절이니까.

사람들은 대체로 두 가지를 추구하고 산다. 하나는 물질적인 자산이고 다른 하나는 정신적인 명예이다. 두 길은 멀찍이 갈라져 있는데 어떤 이는 아무지게도 둘 다를 원한다. 하지만 옛 현인들은 둘 다를 갖지 말기를 충고했다. 그 이유는 식물을, 나무를 보면 알게 되어있다. 봄부터 가을은 나무가 물질적 자산을 키우고 거두는 때이다. 자산 증식을 위해 나무와 식물은 꽃을 피우고 잎을 가꾸고 열매를 키운다. 초년부터 장년까지 식물은 갖은 영욕을 겪으며 자신이 원한 것들을 키워 거두고야 만다.

겨울은 나무가 명예를 갖는 시절이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한껏 드러내어 만물의 시선을 당당하게 받는 시기이다. 깨끗하고 깔끔한 모습으로 자신의 정신적 명예를 뽐내는, 이제껏 숨죽여 가꾸어 온 나목의 진실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때이다. 사람도 그렇다. 지위와 재산과 권력과 부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는 때가 있다. 무성한 잎, 그러니까 외적인 소유에 가려진 자신의 내적 인격이 고스란히 나타나는 시절이 있다.

숨겨진 가지와 줄기, 수형이 드러나는 진실의 계절은 반드시 온다.
숨겨진 가지와 줄기, 수형이 드러나는 진실의 계절은 반드시 온다.

보여주고 싶지 않아도 광선이 투과하듯 만인 앞에 정신적 명예 또는 불명예를 감당해내야 하는 시간이 온다. 국회청문회 같은 때이다. 장관이나 총리 후보자는 잎의 풍성함과 화려함으로 후보로 발탁되어 올려진다. 장년까지의 성과로 그들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은다. 그리고는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지의 시험대에 올라간다. 그런데 이 시험은 광선이 투과되는 장소이다. 그래서 그들의 무성함은 초음파 진단을 통하여 삽시간에 나목으로 탈바꿈된다. 언뜻 보면 모순으로 보인다.

잎의 풍성함으로 후보를 추천하더니 난데없이 앙상한 가지의 수형으로 시험하다니! 하지만 이것은 매우 공정한 처사이다. 이제까지의 그들의 삶의 평가기준이 자산과 열매였다면 앞으로의 모습은 가지와 줄기의 나목의 수형을 검토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우리는 지도자에게서 나목의 정신적 고귀함과 명예, 아픔의 상처와 기개를 살핀다. 살아온 과정이 아름다운지, 떳떳한지, 어떤 상처와 치유가 있었는지 본다. 나무의 수형처럼 그들의 자질을 살핀다. 어떤 이는 그저그런 잎을 지닌 듯 보이지만 반듯한 수형을 지녔다.

그들은 식물공화국을 정직하고 지혜롭게 잘 이끌 것이다. 어떤 이는 풍성한 자산과 공적을 뽐내지만 내밀한 모습은 뒤틀리고 변색되고 썩었다. 그 모습이 드러나면 자연스레 도태될 것이다. 대선이 얼마 안 남았다. 나라를 이끌, 식물공화국을 이끌 리더를 가릴 시기이다. 후보들은 자신에게 걸맞는 업적의 옷을 입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볼 것은 무성한 잎과 열매가 아니다. 나목(裸木)의 생명력, 나목의 줄기와 가지의 모습, 자연인으로서의 그들의 내밀한 인격이다. 2022년의 첫 날,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에 잠겨 보았다.

[한국조경신문]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