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형근 대표
온형근 대표

 

 

 

「열린 원림 문화」 향유의 첫 단추를 ‘송간세로’로 시작한다. 송간세로(松間細路)는 조선 성종 때의 정극인의 「상춘곡」에 등장한다. 불우헌 정극인은 벼슬의 영광은 없었으나 선비의 삶을 살았고 검소와 소박으로 이 나라 가사문학의 첫 장인 「상춘곡」을 창작하였다. 32행부터 34행의 내용에 송간세로의 원림 풍광과 원림에서의 행위가 드러난다.

 

32 松間 細路에 杜鵑花(두견화)를 부치 들고,

33 峰頭(봉두)에 급피 올나 구름 소긔 안자 보니,

34 千村萬落(천촌 만락)이 곳곳이 버려 잇.

<정극인, 「상춘곡」 부분>

 

소나무 사이 좁은 길에 진달래꽃을 붙들고 산봉우리 위에 급히 올라 구름 속에 앉아보니 수많은 촌락이 여기저기 벌여 있다고 표상하였다. 교목층인 소나무 군식에 하관목으로 진달래가 식재된 경관이다. 소나무 사이 좁은 길인 오솔길의 열린 공간을 향하여 진달래가 가지를 뻗고 있다. 한창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소나무가 진달래를 붙잡고 있는 게 아니라, 소나무 사이의 좁은 오솔길이 진달래를 붙잡고 있다는 것이다. 생태적으로 열린 공간이나, 임연부로 관목의 생육이 훨씬 왕성한 것을 식물생태학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래서 오솔길이 진달래를 붙들고 있는 것이다.

고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의 「추사10」에는 송간세로가 아닌, 송간석실(松間石室)이 발견된다.

 

松숑間간石셕室실의 가 曉효月월을 보쟈 ᄒᆞ니

ᄇᆡ 브텨라 ᄇᆡ 브텨라

空공山산落락葉엽의 길흘 엇디 아라볼고

至지匊국悤총 至지匊국悤총 於어思ᄉᆞ臥와

白ᄇᆡᆨ雲운이 좃차오니 女녀蘿라衣의 므겁고야.

<어부사시사, 「추사 10」>

 

「추사 10」은 자연의 미적 범주를 빼어난 시경으로 표상한 작품 중 하나이다. 초장에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새벽달을 보고자 송간석실(松間石室)로 가려고 배를 붙이고 내려서 찾아간다는 내용의 작품이다. 가을밤의 정취를 즐기다 어느새 새벽달을 볼 시간까지 이른 것이다. 중장에서는 가을 깊어 낙엽 수북한 마치 빈산같은 공산낙엽(空山落葉)의 어두운 길을 어찌 알아볼까 걱정도 앞선다. 이때의 송간석실은 동천석실을 말한다. 아직 가을 풍광에 흥이 남아 서재로 가는 것이 아니라 동천석실로 방향을 틀었다는 말이다. 내친김에 자연의 풍광을 하나라도 더 품어야겠다는 자연에 대한 지극한 예우라할 수 있을까? 종장에서는 멀리서 백운이 따라온다. 추운 기운을 소나무겨우살이의 줄기로 만든 은자의 옷인 여라의(女蘿衣)로 걸쳐 해결하려고 하나, 이조차 무겁기만 하다. 가을이 가는 것을 스산한 기운으로 느낀다. 계절이 가고 다시 오고 하는 것은 자연의 심미의식을 일깨우고, 자연미의 미적 범주를 공고하게 해 주는 원림조영의 현실이다. 그래서 자연의 미적 범주는 공간을 조성하는 것보다 공간을 발견하는 설계언어로 만나야 한다는 단서를 도출할 수 있다.

 

송간세로(松間細路) - 임천한흥.069 / 온형근

 

원림 소롯길에 무거워 떨어진 손가락만 한 송충이

물컹 터질라, 발길 돌리려다

백 년 소나무 붉은 구갑으로 꽉 채워지는 평안

환해지는 송간세로松間細路를 걷는다.

능선을 따라 가늘고 긴 길에는

가지 말라고 손 내미는

꽃 진 국수나무 길

미음완보微吟緩步 않는다면

금세 달라붙어 하나의 덤불로 꽉 막힐 난감

오르고 내리는 동안 망연자실 녹음방초에 두근대다가

평지를 걷는 동안 굵은 통증이 근육을 잡아끈다.

가지 말고 쉬었다 가라고

쪼그려 되돌아 볼 이고정跠顧亭이라도 마련할 테니

이미 퍼질러 웅크려 앉아 돌아보고 있으니

직박구리야 찌익찌익 말라

(2021. 6. 10. 7:47)

 

원림 향유를 주제로 연작시를 창작하던 여름 초입이었다. 입안에서 ‘송간세로’라는 말이 절로 옥구슬 구르듯이 또르륵 쏟아져 나왔다. 오솔길 양 옆으로 소나무 군락이 푸르고 싱싱하여 가슴이 열렸다. 절기상 망종을 이틀 앞 둔 시점이었다. 1년 중 가장 푸른 그늘이 으뜸인 녹음방초(綠陰芳草)의 절기에 소나무 군락이 눈에 띄게 들어온 것은 자연스러운 기운이다. 보리 베고, 벼 심고 하는 생명의 기운 가득하니 송충이 또한 살이 쪄서 원림 오솔길마다 늘어져 작은 바람에 흔들리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정극인은 소나무 군락이 만들어 내는 오솔길에서 진달래를 잡아 끈다는 탁월한 식재 원리를 묘사하였지만, 내가 소유유하는 원림의 오솔길이 이끄는 것은 국수나무였다. 마치 길 가는 사람을 막아서거나 가지 말라 손을 내미는 듯 애틋하다. 원림을 산책하는 이들 덕분에 달라붙어 덤불이 되지 않을 따름이다. 원림에서의 적당한 인간의 간섭은 원림에 문화를 낳게 하는 생태적 감수성과 궤를 같이한다.

가끔 쪼그려 앉아 살아온 날을 회고하는 호수가 내려 보이는 목 좋은 곳에 ‘이고정’이라 이름한 정자를 하나 짓는다. 직박구리가 ‘찌익 찌익’ 하면서 잘 하였다 맞장구친다.

가능한 매일 2시간 전후의 산행을 시작한 것은 탁월한 관행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모든 일정의 가장 중요 수순으로 삼는다. 반복적이고 익숙한 행위는 쉽게 싫증나는 게 사람의 일상이다. 이를 1년 가까이 끌고 온 기대치는 엉뚱하게도 고산 윤선도의 가르침이다. 고산이 해남에서 수정동, 금쇄동, 문소동을 매일 들락거리며 원림 생활을 향유한 뚜렷한 실천을 따른 것이다. 그런데 2시간 여 산행을 원림 향유라고 언감생심 구체화 시킨 계기는 따로 있다. 산행 중 모바일로 산중에서 시 창작을 하고 나서부터이다. 처음에는 고산의 산중신곡처럼 ‘산중’ 시리즈의 시를 쓰다가 차츰 임천한흥 연작시로 자리잡게 된다.

고산의 「입문소동구점(入聞簫洞口占)」에 보면 한 달 동안 문소동에 하루에 한 번 씩 일일래(日一來) 하였다고 한다. 매일 걷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우음(偶吟)」에 금쇄동에 핀 꽃을 보고 다시 수정동으로 이동하는 원림 향유의 장면이 나타난다. 원림 향유의 목적이 뚜렷한 것은 산행 복장을 꾸려나갔기 때문이다. 대지팡이와 짚신이라는 죽장망혜(竹杖芒鞋)는 먼 길 떠날 때 챙기는 간편한 차림새를 말한다. 이 죽장망혜로 날마다 왔다 갔다 일왕래(日往來) 하는 장면이 시경으로 표상되었다. 고산이 해남 수정동, 금쇄동, 문소동 원림에서 ‘하루에 한 번 씩 일일래하고 날마다 왔다 갔다 일왕래’한 것이 원림 향유에 대한 뚜렷한 발자취이다. ‘일일래, 일왕래’의 원림 향유를 발견하여 관행처럼 이끈 것이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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