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 Times] 작년에 몰아닥친 코로나 사태가 올해 들어 조금 잠잠해지면서 위드코로나 시대로 접어드는가 싶더니 난데없이 새로운 변이바이러스가 나타나고 우리들의 삶은 또 다시 혼란 속에 빠져들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생명체이니 생존을 도모하느라 갖은 전략을 다 쓰고 있다고 치더라도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하는 우리 인간이 번번이 그들에게 당하고 있으니 체면이 말이 아니다. 모든 생명체는 ‘진화적 군비경쟁(evolutionary arms race)’을 한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경쟁 대상이 되는 생명체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무장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쫓고 쫓기는 진화적 군비경쟁을 미국의 생물학자 라이 반 바렌(Leigh Van Valen)은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 effect)’라고 이름 지었다.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는 붉은 여왕이 앨리스의 손을 잡고 시골길을 정신없이 달리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리 빨리 달려도 제자리걸음을 할 뿐이다. 앨리스가 “우리나라에서라면 벌써 어딘가 다른 장소에 도착해 있었을 거예요. 이렇게 빠른 속도로 오랫동안 달렸다면 말이에요.”라고 어리둥절해서 말하자, 의아해하는 앨리스에게 여왕은 “네가 살던 곳은 아주 느린 나라인 모양이구나! 여기에서는 이 정도 속도로 달리면 같은 곳을 벗어날 수 없어.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려면 적어도 지금 속도의 배로 달려야 한단다.”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생물들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상태에서 도태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붉은 여왕 효과’는 생명체들의 필사적인 생존의지를 보여준다. 인간도 달리고 코로나바이러스도 달린다. 우리가 백신을 개발하고 치료제를 만드는 사이에 이 바이러스도 전력을 다해 변이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문득 식물들의 생존이 궁금해졌다. 그들도 바이러스의 침범을 받는다. 바이러스뿐인가? 곤충과 동물과 기상재해, 생리장해와 농약에 의한 피해 및 공해도 받는다. 감자나 사과를 먹을 때 보면 검은 점이 있거나 겉은 멀쩡한데 속에서 썩은 것들이 있다. 재배과정에서 방제를 위한 예방적 처치를 놓친 작물이다.

의학과 수의학이 있듯이 식물의학도 있다. 식물의학은 식물에 피해를 주는 병해충, 잡초, 약해, 생리장해, 기상재해 등의 원인과 발생경로를 밝히고, 재해의 진단, 예방, 치료 및 방제를 통해서 식물을 건강하게 생육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식물의학이 의학이나 수의학과 크게 다른 점은 의학이나 수의학은 치료적 처치를 중시하는 반면에 식물의학에서는 병해충 등의 방제를 위한 예방적 처치를 우선에 둔다는 점이다. 작물의 피해를 줄여서 우리들의 먹거리가 안전해야하기 때문일 것이다. 웬만한 농작물의 피해는 발생 후에도 방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태풍・호우・가뭄・대설 같은 기상재해는 예방하기도 처치하기도 힘들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질병에 걸리면 예방에 실패했대도 사후 여러 가지 처치가 가능하지만 갑자기 사고나 사건을 당하면 손 놓고 운명에 맡기는 방법 밖에 없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이 정의내린 ‘식물병’이란 무엇일까? 식물병이란 어떤 원인(병원체나 환경 요인)이 연속적으로 작용하여 식물의 세포나 조직이 가지고 있는 동적인 대사 흐름을 교란하는 과정을 말하며, 그 결과 식물이 본래의 형태나 생리기능에 이상을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를 보면 동물이나 인간이나 식물이나 병에 걸리는 과정과 결과는 매한가지이다. 그래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았다.

우리는 왜 병에 걸리는 걸까? 코로나 바이러스에 접할 경우 왜 어떤 사람은 죽거나 심각한 후유증을 가지고 어떤 사람은 건강하게 이겨내는 걸까? 그 차이는 무엇일까? 식물의학에서는 발병하는 3가지 요인이 있다고 본다. 간단하게 시각화하여 ‘병 삼각형’을 만들었는데 삼각형의 각 변은 병원체(主因), 기주(素因), 환경(誘因)이다. 각 변의 길이는 세 가지 요인의 양에 비례하고 삼각형의 면적은 병의 총량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저항성이 있는 식물은 기주의 변이 짧으므로 삼각형의 면적도 작다. 만약 세 가지 요인(변) 중 어느 하나라도 값이 제로(0)가 되면 삼각형이 만들어질 수 없고 병에 걸리지도 않는다.

이렇게 본다면 병에 걸리기가 쉬운 것도 아니다. 세 가지 요인이 모두 값을 가져야, 즉 모든 조건을 완전히 충족해야 병에 걸린다는 것이니까. 따라서 작물을 키울 때 세 가지 요인 중 한 가지를 약화시키면 식물병을 방제할 수 있다. 우리가 농약으로 병원체를 죽이는 것은 주인(主因)을 배제하는 것이며, 저항성 품종을 재배하는 것은 소인(素因)을 배제하는 것, 그리고 발병을 막기 위해 환경을 조절하는 것은 유인(誘因)을 배제하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의 건강에 적용해 보자. 기주, 즉 소인의 저항력을 기르는 것이 곧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다.

병원체가 기주에 감염하여 병을 일으키는 능력을 ‘병원성’ 이라고 하는데, 기주가 병에 걸리려면 병원체를 수용하는 성질을 가져야 한다. 이를 ‘감수성’이라 한다. 반대로 기주가 병원체를 수용하지 않는 성질, 병에 잘 걸리지 않는 성질을 ‘저항성’이라고 한다. 감수성이 높으면 병에 쉽게 걸릴 것이고 저항성이 높으면 발병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처해있는 환경은 녹녹하지 않다. 인간도 여러 가지 종류의 전염성 병균에 노출된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그 중 하나다.

그게 다가 아니다. 비전염성 병원도 수두룩하다. 대기오염과 수질오염에 따른 유해물질이 우리 몸에 잔뜩 축적되어 있고 각종 스트레스도 한 몫 한다. 무심코 사는 동안 앞서 말한 ‘병 삼각형’이 조금씩 만들어질 수 있다. ‘병 삼각형’이 만들어지지 않기 위한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이 중요하다. ‘진화적 군비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면 주인과 소인, 유인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대비가 필요하다. 연말이다. 잠시 멈춰 서서 나의 ‘병 삼각형’의 세 변을 한 번 점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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