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에서 토종씨앗 수집 중인 수집연구원과 변현단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 ⓒ토종씨드림
평택에서 토종씨앗 수집 중인 수집연구원과 변현단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 ⓒ토종씨드림

[Landscape Time 이수정 기자] “농촌공동체가 사라지면 생물다양성이 사라지고 전통지식도 사라진다.” 

대대로 내려오는 우리 씨앗을 지키고 보존하는 민간단체 ‘토종씨드림’의 변현단 대표가 지난 11월 수집활동 중 개발 중인 평택 고덕 신도시 부지를 바라보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번 수집 대상지역에 포함됐던 고덕면 해창리는 고덕신도시와 인접해 토종씨드림이 빠른 수집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던농촌마을이다.

변 대표는 “불과 2년 만에 개발된 모습이다. 이렇게 개발이 빠르게 진전되면 생물자원은 급속히 사라진다. 토종씨앗도 농가와 함께 사라진다”고 안타까워했다. 해창리는 한 마을 통째로 개발돼 많은 농가가 이주했다. 평택은 산업단지나 신도시로 개발 중이라 이미 땅값은 오를 대로 올라 농촌 인구 유입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농촌공동체의 붕괴는 곧 토종씨앗 등 전통지식과 농업유산 소멸로 이어진다. 이러한 우려 속에서도 토종씨드림은 이번 수집 대상지인 오성면, 고덕면, 진위면 등지에서 수집 성과를 냈다고 밝혔다. 평택은 평야지대라 논농사 중심의 농사가 이어져와 쌀과 함께 먹는 서리태를 비롯해 나물콩, 메주콩 등이 많이 수집됐다. 지난해에는 평택에서 파랑콩, 조선배추, 감자, 고구마 등 466점이 수집됐다.

11월 10일(수)부터 사흘간 토종씨앗 수집조사원들은 조를 나눠 일일이 농가의 대문을 두들이고 텃밭에서 작물과 씨앗을갈무리하는 할머니들의 발걸음을 붙잡아 ‘숨겨놓은’ 씨앗 보따리를 풀게 했다. 인터뷰 중 할머니들의 지혜와 재배법, 그지역에서만 불리는 씨앗의 고유명사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이 모든 것들은 수집원들의 손에서 꼼꼼히 기록됐다. 

토종씨앗은 오랜 시간 삼대에 걸쳐 이어져오거나 때로는 타향으로 시집오기 전 친정 어머니까지 거슬러올라간다. 40년 전 완도에서 올라왔다던 할머니는 ‘이팥’은 약이 귀한 시절 치료제로도 쓰였다는 귀띔도 놓치지 않았다.

농촌 소멸 시대 다른 지방 농촌마을처럼 평택지역에서도 70대 후반부터 80대 할머니들에 의해 주로 재배되고 보존되고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맛이 좋아 토종씨앗을 심어 먹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토종씨앗 재배 인구는 전체 농민의 1%에도 못 미친다. 

ⓒ토종씨드림
ⓒ토종씨드림

김은진 원광대 법학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전 세계 농부들이 심는 씨앗은 120종에 불과하다. 대부분 종자회사가 판매하는 씨앗에 의존하면서 더 이상 채종하지 않는 농사가 됐고 씨앗은 농민의 삶으로부터 분리됐다.

도시개발, 난개발로 줄어드는 농지, 대규모 단작에 적합한 경운농법 등은 탄소를 배출하고 생물을 다루는 농업은 오히려 지구온난화에 일조하게 됐다. 생태계 파괴로 지난해 발생한 코로나 팬데믹은 이미 인류에 경종을 내린 바 있다. 변 대표는 생태순환사회를 포기하며 자연의 일부임을 망각한 인류의 오만함을 비판하면서도 “토종씨앗은 기후위기 시대 생물다양성 확보 차원에서도 공공재로 반드시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토종씨드림은 2008년 4월 단체와 개인으로 결성된 비영리단체로, 수집, 증식, 보급, 교육, 특성 연구, 정책 연구 등을 통해 토종씨앗의 현지보전을 목표로 한다.

전국 30개 시·군 지역에서 수집한 씨앗은 2008년 강화도, 울릉도, 제주도를 시작으로 2021년 6월 기준 22개 식량작물4734점, 98개 원예작물 2385점, 52개 특용작물 1113점, 과수 72점으로 총 180작물 8304점을 수집했다.

수집 후 증식된 씨앗은 영구 저장시설이나 전국 45개 토종씨앗 지역 모임 등 민간단체에 보내져 보존 및 증식된다. 토종씨드림이 지난 14년 간 지역별로 수집한 토종씨앗 중 4800여 점은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시드볼트에 중복 저장돼 있다. 그밖에 국립농업과학원 농업유전자원센터나 경기도종자은행 등 토종씨앗을 필요로 하는 기관에 입고된다. 

10월 무주농업기술센터에서 개최된 무주 토종씨앗수집보고회 ⓒ토종씨드림
10월 무주농업기술센터에서 개최된 무주 토종씨앗수집보고회 ⓒ토종씨드림

채종포를 통해 증식된 씨앗은 다시 나눔을 통해 보급·확산된다. 또한 특성조사를 거쳐 선정된 토종씨앗은 탄소발자국을줄이고 로컬 중심의 먹을거리 활성화를 위해 상품화 돼 판매 및 가공된다. 토종농산물은 도시농부, 도시소비자와 만나 광주 보자기장 사례처럼 장터 활성화에도 기여한다. 

토종씨드림은 도시농부 교육 일환으로 토종학교를 비롯해 육종가 양성과정, 지역별 토종씨앗 수집원 양성교육을 통해 토종씨앗 수집교육에 매진하고 있다.

경기도종자관리소, 산림청 등 정부기관, 지자체 등과 협업함으로써 토종씨앗 수집과 보급 활동도 지속하고 있다. 이번 수집에는 지난 2019년 출범한 토종종자은행 담당 기관인 경기도종자관리소 토종팀도 참여했다. 토종종자은행에서는 경기도에서 수집한 토종종자를 비롯해 민간단체인 토종씨드림, 토종도서관 전국협의회와 함께 경기도 내 시·군에서 수집한 토종종자를 보존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진한누룽지벼 등 토종벼를 재배하고 홍보하고 있다. 

토종씨드림은 지난 4월 양평군과 업무협약을 맺고 양평군 내 토종씨앗 발굴사업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현재 지금의 민간단체에서 지원근거가 있는 사단법인 설립을 추진함으로써 더욱 활발한 활동을 예고하고 있다. 

끝으로, 토종씨드림은 그동안의 수집성과를 바탕으로 기록한 ‘토종씨앗도감’(2020)에 이어 씨앗 로드맵을 주제로 한 책 출간을 준비 중이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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