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 Times] 최초의 정원이론서는 중국에서 만들어졌다. 명나라 때의 건축설계사이며 정원설계사인 계성(計成)이 지은 ‘원야(園冶)(1634)’이다. 계성은 본래 화가였다. 동양의 산수화는 자연을 그대로 담은 것은 아니다. 자연을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조명하여 일정한 화폭에 구현한 것이다. 작은 공간에 오밀조밀하게 배치한 하늘과 구름과 산과 강은 그리는 이의 마음과 느낌이 함께 담겨있다.

그림 한 구석에 자리한 작은 초가와 소 한 마리, 그 옆에 한가로이 누워있는 아이는 자연에 녹아든 인간 존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본연의 자세이다. 인간은 자연을 모태로 살아가기에 이 그림 속의 사람이야말로 자유롭고 즐겁다. ‘원야’의 야(冶)는 아름답게 조성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계성은 화가의 재질을 활용하여 정원을 꾸몄다. 자연을 종이에 축약한 것이 그림이라면 그 그림을 다시금 땅위에 옮긴 것이 동양의 정원이다.

자연을 인위로 다시 인위를 자연으로 돌려 순환시킨 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아름답고 곱게 만드는 것일까? ‘원야’에는 몇 가지 정원꾸미기의 원칙이 나오는데, 가장 핵심적인 것이 ‘사람이 만들었지만 하늘로부터 개창된(비롯된) 것처럼 하라’는 원칙이다. 거칠고 불규칙적인 자연을 모방하여 자연적 아름다움을 재현하는 것이 정원만들기의 관건이다.

인간의 창조성과 천재적 기법으로 자연을 축약하고 복제하지만 그러한 인위성을 감쪽같이 숨겨버리는 방법이다. 그렇게 꾸며놓은 정원은 작위가 없고 정해진 격식 또한 없다. 그것을 구원무격(構園無格), 자연적 불규칙성의 아름다움의 재현이라고 한다. 그러한 정원을 만들기 위해 동양인들은 차경(借景)을 활용했다. 차경이란 외부풍경을 빌려와서 내부풍경을 아름답게 꾸미는 기법이다.

옛 한옥의 뒷문을 열면 바깥풍경의 미(美)가 집안으로 밀려들어오듯 보인다. 외부의 것은 원래 나의 것이 아니지만 이와 같은 방식으로 내 것인 양 가져다 즐길 수 있다.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동양의 정원과 경치는 곱씹을 수 있는 의미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이것을 의경(意境), 의미의 경지라고 한다. 자연과 정원에서 우리는 심상을 일으키고 관념을 완성시킨다. 의경이란 상(象)을 초월하여 상 바깥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동양의 정원은 한 폭의 산수화를 재현한 것이다. ⓒ한재희<br>
동양의 정원은 한 폭의 산수화를 재현한 것이다. ⓒ한재희

그렇게 하여 상징적 형상과 정취를 결합하는 것이다. 글(문자)은 말로 하는 의미를 다 담을 수 없고 말은 자신이 전달하려는 뜻을 다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상을 만들어서 뜻을 그 안에 담는다. 그래서 상에는 도(의미)가 담겨있다. ‘역경’에 나오는 64개의 괘는 모두 자연의 모습을 담은 상(象)이다. 그 상들에서 교훈과 의미와 자연과 인생을 본다. 정원도 그러하다. 내가 만드는 정원은 나의 글과 말과 뜻과 의미의 총화이다. 바로 그 땅에서 있음직한, 벌어질 만한, 끊이지 않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이다.

정원사는 땅에게 말 걸어 그 땅이 하고 싶은 말과 상(象)을 이끌어낸다. 이것이 인차(因借)의 과정이다. 인차란 인지(因地), 즉 땅을 따르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에게 묻고 자연과 정을 들인다. 나와 자연과의 대화의 과정, 끝나지 않을 이야기의 향연이 벌어지는 곳이 정원이다. 길고긴 대화를 거쳐서 우리는 정원을 일군다. 정원은 우리에게 먹을 것과 볼 것과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지난겨울 가지치기를 잘못한 살구나무는 어정쩡하게 불균형한 모습을 보여준다. 되잡아야겠지만 새 가지가 나와서 자랄 때까지, 적절한 순간까지 기다려야 한다. 길 한 모퉁이에서 죽어가는 명자나무를 데려다가 몇 년을 정성들였더니 어느새 팔팔하게 살아나 마음을 밝혀준다. 명자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생명은 자신을 구가하는구나!

정원 속에는 무엇이 숨어있을까? 끝없이 펼쳐지는 의미의 축제가 궁금하다. ⓒ한재희
정원 속에는 무엇이 숨어있을까? 끝없이 펼쳐지는 의미의 축제가 궁금하다. ⓒ한재희

정원사는 자연에 홀려서 자연으로 걸어 들어간다. 자연은 그를 감동으로 맞이하고 교훈으로 안아준다. 모든 상에는 의미가 담겨있다. 오늘 내가 만난 자연과 정원에도 지치지 않고 끝나지 않을 생명의 가닥들이 반짝인다. 최고의 자연은 정원이고 최고의 정원은 나 자신이다. 초겨울, 추운 겨울나기를 계획하며 정원과 나는 하나가 된다.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봄이다. 그 때를 바라며 우리는 정경(情景)을 즐긴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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