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섭 한국정원협회 고문
송정섭 한국정원협회 고문

도시 거주자의 80%이상이 아파트에 사는 우리나라는 선진국들처럼 정원이 발붙일 공간이 별로 없다. 정원을 만든다면 기껏해야 베란다나 옥상일 것이다. 공동주택의 단지 내 대부분 공간은 조경으로 공원화되어 있으며 따로 정원으로 칭할만한 공간은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니 우린 따로 정원을 문화적으로 향유해 본적도 정원을 통해 다양한 교육과 활동이 이뤄져 본적도 없어 여전히 정원 후진국이 아닐까 싶다.

최근 전원주택이나 개인주택, 나아가 공동주택의 단지 내에 정원을 만들고 있지만 대부분 조경업체가 주도적으로 설계 시공하다보니 정원이 아닌 그저 일정시점의 경관을 만드는 수준에 머물러있다는 게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특히 우리나라 조경은 그동안 산업으로 성장해오다 보니 돈이 되는 시설이나 구조물 중심의 설계가 많아 식물 중심의 정원선진국들에 비해 괴리가 크다.

세계 정원문화의 원조로 볼 수 있는 영국의 정원문화를 살펴보자. 정원산업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첼시플라워쇼 100주년 때 방문했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정원의 주연급 소재인 식물, 특히 새로 개발되어 선보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화훼) 품종들이 잘 소개되어 있고 방문객들은 매년 자기집 정원에 심을 새로운 소재를 찾으며 꽃과 나무들의 이용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얻는다. 물론 우리나라 황지해 정원디자이너처럼 전 세계 정원디자이너들의 등용문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영국이나 독일, 미국, 일본의 일반 주택의 정원을 돌아다녀보면 조경시설이나 구조물 중심의 디자인을 중시하는 걸 찾아보기 힘들며 최대한 식물중심의 생태적 공간배치가 핵심을 이루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우리나라도 순천과 서울, 울산에서 대규모의 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고 국가적으로 또 많은 지자체들이 아름다운 정원 콘테스트가 진행되고 있어 정원문화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하지만 어쩌다 박람회 때 정원심사에 참여하다 보면 심사위원들이 대부분 조경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어선지 조경시설이나 구조물, 디자인에 치중되는 경향이 있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정원디자이너 등용문이 되는 것까지는 좋은데 선정된 정원들이 마치 한국정원의 미래 교과서인 것처럼 인식시키려는 관련 단체나 업계의 시도도 참 못마땅하다. 이렇게 되니 여전히 우린 가드닝과 정원문화가 생활 속에 자리 잡기 힘들고 한국형 실용정원의 정체성도 거의 없다. 최근 울산 태화강 정원을 기획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피트 아우돌프도 한국의 숙근성 자생식물에 초점을 맞춰 연중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려고 하는 점을 보면 그저 흉내만 내려고 하는 우리는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정원은 굳이 학술적으로 정의하지 않아도 자연의 풀과 나무, 흙, 돌이 중요한 구성요소들이다. 여기에 심미적이고 기능적인 면이 추가된 공간으로 정원의 주인공은 사계절 변화를 주는 식물인 것이다. 여기서 정원가꾸기를 통해 우리 인간은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하며, 정원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잃었던 공동체를 회복하는 중요한 공간으로도 작용한다.

맞다, 한국형 정원엔 봄엔 매화나 산수유, 여름엔 배롱나무나 산딸나무, 가을엔 단풍나무, 겨울엔 소나무같은 상록수나 앙상한 가지와 골격을 자랑하는 활엽수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정원은 연중 꽃이나 열매, 단풍잎들을 보면서 4계절이 분명한 우리 자연의 변화를 실감하며 우리의 인생을 조명해 보기도 하는 창조적인 공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 국민들의 아파트 주거문화를 바꾸긴 어렵지만 이제 막 태동하는 한국의 정원문화는 첫바늘을 잘 꿰면 롱런할 수 있다. 건강한 정원문화 확산을 위해 한국형 정원의 정체성 확보가 시급하며, 정원의 주연은 멋진 시설구조물이나 디자인이 아니라 살아서 사계절 변하는 꽃과 나무라는 점을 함께 공감했으면 한다.

* 본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으며, 독자의 개인 또는 단체의 목소리를 전달해 줄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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