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해 정원디자이너
황지해 정원디자이너

[Landscape Times 이수정 기자]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식물구조를 정원으로 비유한 예술작품이 탄생했다. 미술가이자 정원디자이너인 황지해 작가(뮴 대표)가 지난 10월 완성한 ‘원형정원 프로젝트’ 정원이다. 단단한 콘크리트의 원형 인공지반에서 황 작가는 또 하나의 자연을 만들었다.

인공지반인 미술관 옥상 원형정원은 전시실 내부에 있으면서도 하늘을 마주할 수 있는 야외공간이다. 18미터 높이의 백남준 비디오아티스트의 작품 ‘다다익선’을 지나 3층을 향할 즈음 하늘이 탁 트인 선큰 구조의 자연공간이 관람객을 반긴다.

정원은 미술관이라는 물성과 대비되는 생명이 숨 쉬는 공간인 동시에 관악산과 청계산 능선으로 둘러싸여 위요감을 느낄 수 있는 안온한 공간이 됐다. 원형벽을 따라 심긴 식물을 위에서 혹은 옆에서, 아래서 바라보며 걷다보면 시시각각 변화하는 식물의 형체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포착할 수 있다. 특히 취재진이 찾은 해질녘, 서향 햇빛을 받아 농후해진 자생식물의 다양한 색채 스펙트럼은 놓칠 수 없는 장면이다.

황 작가는 지난 2017년 서울로7017 개장을 기념해 전시한 설치미술 ‘슈즈 트리’의 예술적 논란에 상처가 깊다. 서울로에 걸린 버려진 3만 켤레의 신발을 재활용해 보행 도시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환경미술을 많은 매체가 ‘혐오’의 인상으로 낙인하면서 한동안 흉물거리로 입방아에 올랐다. 대중들의 엇갈린 반응 속에서도 한편으로는 예술에 대한 편협한 비평, 또는 ‘검열’로 재부각되기도 됐다. 황 작가는 긍정과 부정의 다양한 시선을 인정하면서도 씁쓸한 기억은 여전하다.

‘원형정원 프로젝트: 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 사진촬영 우승민 ⓒ국립현대미술관
‘원형정원 프로젝트: 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 사진촬영 우승민 ⓒ국립현대미술관

 

관악산 줄기로 위요된 선큰 정원

콘크리트 기둥 녹색 트렐리스로 재탄생

황 작가에게 정원은 생명과 죽음이 순환하는 “행위의 예술”이자 미술작업의 연장이다. 꽃과 나무의 이야기가 내포된 자연의 언어로 미술작업을 하는 이유다.

그에게 정원은 드로잉의 과정과도 같다. 휘거나 곧거나 혹은 기는 다양한 식물 줄기, 크고 작은 씨앗과 꽃대 하나하나가 선묘의 대상이다.

원형정원 프로젝트는 2년 전 디자인됐지만 시공된 모습은 처음 그림과는 전혀 다른 결과물이었다. 황 작가가 최초 설계한 디자인이 공사 입찰에서 선정된 시공업체의 손을 거치면서 애초 디자인과 동떨어진 모습이 된 것이다.

황지해 작가
황지해 작가

미술관 측과 협의한 결과 수차례 수정을 거쳐 새와 벌들이 날아들고 과천 주변 자생식물과 사계절 풍경을 담은 자연주의 정원으로 마무리됐다.

청계산과 관악산 줄기가 원형의 병풍이 돼 둘러싸인 원형정원은 장소적으로 분명 매력적이었다. 그러나 선큰구조의 인공지반 한 가운데 약 6미터의 원기둥이 우뚝 버티고 있어 디자인에 애로사항이 있었다. 황 작가는 무미건조한 콘크리트 원기둥에서 오히려 물관과 체관이 있는 식물 줄기 단면도를 연상했다. “선큰이어서 바람막이가 될 수 있겠다는 것은 장점인데 문제는 중앙 원기둥이었다. 불편한 구조물을 필요한 구조물로 만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콘크리트 기둥에 트렐리스를 설치하고 덩굴식물을 심어 수직정원을 연출함으로써 주변의 원형화단에 식재된 식물들과 조응하면서도 미술관 너머 청계산의 생태와 이어지는 녹색경관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라는 정원 프로젝트의 ‘달뿌리’ 어휘는 달과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장소의 물리적 체감을 더하면서도 달을 지탱하고 있는 공간으로 부각하기 위해 선택했다. 글자 그대로 “달의 뿌리”다. 그리고 정원에서 우성종과 열성종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생성하고 소멸하는 식물군상이 마치 “밀고 밀리는 바다처럼” 혹은 공생하듯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협주곡처럼 느껴보라고 ‘느리고 빠른 대화’로 이름 붙였다.

“자연 그대로의 찰나”를 느껴보라는 황 작가는 정원에 주변 식생을 도입해 자연과의 공생을 발화했다. 수백 종의 식물이 대화하는 정원에는 새와 나비, 벌이 한창 정원을 맴돌고 있었다. 울릉도마가목을 비롯해 까마귀밥나무, 분꽃나무, 좀작살. 회임나무, 히어리, 쥐똥나무, 개암나무, 헤이즐넛, 때죽나무, 백당나무, 한라백당나무, 덜꿩나무 등 자생 열매나무가 많아 일명 “과천 맛집”으로 소문났다고.

과천 현대미술관 원형 옥상에 조성된 정원 ‘원형정원 프로젝트: 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현대미술관 원형 옥상에 조성된 정원 ‘원형정원 프로젝트: 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 ⓒ국립현대미술관

 

“정원예술의 여정…거친 여행길”

정원한테 받은 위로 커…정원,

자연에 조응하는 한 편의 드로잉

정원의 주요 콘셉트인 자연주의 정원을 두고 황 작가는 “원시성은 숲에 다 있다. 이걸 흉내낸다고 얼마나 되겠나. 그냥 흉내일 뿐이다”면서도 “식물에 감정 이입하고 자세히 보면 팽나무 밑에 찔레꽃이 있고 노박덩굴이 같이 올라온다. 봄이 돼 새싹이 움트면 하얀 찔레꽃이 하부를 잡아줄 것이다. 자생 식물이 같이 자라는 숲이다”고 말했다.

원형정원의 또 다른 매력 중 하나라면 큰바늘꽃, 과남풀, 연잎꿩의다리, 물매화, 애기취, 긴산꼬리풀, 냉초, 가는오이풀, 아기범부채, 마타리, 배초향, 올괴불나무 등 평소 보기 힘든 자생식물들을 다양한 포인트에서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원과 미술관 경계에 있는 원형의 실내공간에 들어서면 백당나무, 개비자나무, 줄댕강 등 12개 창문마다 경관 포인트가 있다. 각각의 창문에 비친 정원은 12개의 이야기인 셈이다.

널브러진 나무와 돌이 있는 정원에 이르면 마치 멀리 관악산 줄기가 정원에 내려앉은 듯 깊고육중한 숲 경관을 떠올리게 한다.

황 작가는 도시에서 자연을 끌어올 수 있는 공간으로서 옥상정원의 가치를 강조했다. “열섬효과 저감 등 옥상정원의 기능은 누구나 잘 알 것이다. 도시에 건축물이 너무 많기 때문에 도시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옥상정원만 제대로 조성해도 좋겠다”면서도 “옥상은 마치 고립된 섬과 같다. 하중, 배수 등 해결해야할 문제가 많지만 도심 속에서 이만한 공간이 있을까. 도심에 생태계를 복원한다는 관점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정책화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과천 현대미술관 원형 옥상에 조성된 정원 원형정원 프로젝트: 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
과천 현대미술관 원형 옥상에 조성된 정원 원형정원 프로젝트: 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

끝으로, 정원을 ‘거친 여행’이라 표현한 그는 오히려 힘들게 정원을 만든 후 정원으로부터 위로 받는다고 전했다.

황 작가는 인터뷰를 마치며 슈트트리 악플러들을 향해 “원형정원을 꼭 한 번 방문해 달라. 이제는 당당하게 맞설 수 있다”며 미소 지었다.

아울러 이번 원형정원 프로젝트를 지원해준 태성문화재단과 국립현대미술관 측에 고마움을 표했다.

원형정원 프로젝트 작품은 2023년 12월 7일까지 개방한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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