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시대] 당신이 갖고 싶은 하나의 경관은?
[조경시대] 당신이 갖고 싶은 하나의 경관은?
  • 신지선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21.09.17
  • 호수 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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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선 한국정원문화연구소 월하랑 대표
신지선 한국정원문화연구소 월하랑 대표

[Landscape Times] 생애 최초 인테리어 공사가 곧 시작된다. 디자인이 구체화되면서 집에 대한 나의 태도와 안목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사 예정인 집 거실에는 원래 테라스가 딸려 있었다. 그 점이 매력이었는데 낡은 새시를 교체하려면 테라스를 없애야 한다. 테라스가 살아남으려면 새시 교체를 포기해야 한다. 단열 문제로 업체는 테라스를 포기하라고 조언하는 상황. 아직 나는 마음의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집의 새시 문제 하나로도 이토록 머리가 아픈데 백지 상태에서 정원이라는 공간을 조성할 때의 고민은 도대체 얼마나 깊어야 할까? 대전에 위치한 유형문화재 남간정사(南澗精舍)는 1683년에 조성된, 우암 송시열의 생애 마지막 7년이 깃든 건물이다. 그는 이전에 대전 소제동의 기국정과 괴산 화양구곡의 암서재를 만든 경험이 있었다. 우암은 자신의 머릿속에 그려보던 공간을 현실 속에 구체화해본 두 번의 경험 이후 남간정사를 지었다.

우암 송시열이 제자들을 가르쳤던 대전 남간정사 ⓒdoopedia
우암 송시열이 제자들을 가르쳤던 대전 남간정사 ⓒdoopedia

남간정사는 건물 밑으로 물이 관통하는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다. 가운데 두 칸을 공중에 띄우고 뒤에서부터 앞으로 물이 흐른다. 건물 중앙을 공중에 띄우기 위해서는 시공의 어려움이 작지 않다. 풍수지리적 고정관념도 뛰어 넘어야 했다. 집 앞에 물이 흐르는 것은 봤지만, 아래로 물이 흐르는 경우는 드물다. 이렇게 특이한 건물은 남간정사 이외에 두 곳 정도 더 있다.

남간정사 조성 10년 후에 건축된 대전 대덕구의 옥류각 역시 건물 아래로 계류가 흐른다. 옥류각 주인인 송준길은 송시열과 할머니가 자매 사이며 잠깐이지만 함께 자랐다. 두 사람은 모두 문묘에 배향된 조선을 대표하는 명현이다. 500년 동안 18명만이 성리학의 정통을 잇는 인물임을 인정받은 곳에 두 사람은 이름을 나란히 올렸다.

대전 중구의 유회당에도 아래에 곡수(谷水)가 지나는 작은 정자가 있다. 보통 곡수는 건물 앞으로 흐른다. 창덕궁의 소요정과 강진 백운동 원림이 대표적이다. 유회당 건물 아래로 물길을 만든 권이진은 송시열의 외손자다.

비슷한 형태의 건물이 모두 대전에 있으며, 송시열과 연관이 있다. 남간정사는 우암이 죽기 전, 본인의 이상향을 힘있게 구현한 공간임이 분명하다. 그 궤적과 의미를 찾고 싶었다. 공간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문득 남간정사 기둥에 붙은 주련의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危石下崢嶸 위석하쟁영 / 위태로운 돌이 가파르고 험한 모습으로 아래를 향하고

高林上蒼翠 고림상창취 / 높은 숲 푸르게 우거지며 위를 향한다.

中有橫飛泉 중유횡비천 / 그 가운데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물로

崩奔雜綺麗 붕분잡기려 / 모든 것이 무너지듯 뒤섞이는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다.

- 운곡남간(雲谷南澗) ‘주자’-

아래를 향하는 돌과 위를 향하는 숲은 자연물을 상징한다. 각기 따로 놀고 있는 둘 사이에 물이 흐르자 비로소 아름다운 하나의 경관이 되었다. 주자는 이것을 시로 지었고, 송시열은 그 시를 정원의 이름으로 했다. 이 시에서 ‘가운데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물’은 남간정사의 물을 떠오르게 한다. 자연물이 서로 조화롭게 작용하는 이치를 깨달아 인간의 성정을 닦는 주희의 성리학은, 곧 송시열의 성리학이었다.

송시열은 성리학을 하나의 경관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 완성이 남간정사였다. 건물 끝 한단 높은 곳에 앉아 제자들 아래로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인생의 말년을 보냈을 송시열을 그려본다.

우암사적공원
우암사적공원

다시 필자의 집 인테리어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업체는 새시 앞에 슬라이딩 도어를 달아 테라스를 살리면서도 단열 효과를 줄 수 있는 안을 제시했다. 실력 있는 업체를 만나 참 다행이다. 그렇게 살린 테라스에는 정원을 가꿀 것이다. 그렇게 나도 소박하게나마 내가 조성하는 공간 속에 나를 표현하고 담아내고 싶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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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선 객원논설위원 wolharang_@naver.com 신지선 객원논설위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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