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남대로 갈재
삼남대로 갈재 ⓒ문화재청

 [Landscape Times 이수정 기자] 과거 물자 교류의 기능을 담당했던 민간교역로 ‘옛길’이 무분별한 개발로부터 훼손을 막고자 명승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이 옛길의 훼손을 막고 보존할 수 있도록 ▲‘삼남대로 갈재’, ▲‘삼남대로 누릿재’, ▲‘관동대로 구질현’, ▲‘창녕 남지 개비리’, ▲‘백운산 칠족령’, ▲‘울진 십이령’ 총 6개의 옛길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 예고했다.

옛길은 고려 시대 통치의 목적으로 건설된 역로(驛路)로 조선 후기 상업이 발달하면서 물자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9개 대로 체계로 완성됐다. 삼남대로, 관동대로, 영남대로, 의주대로 등의 간선도로는 한양을 중심으로 전국을 연결했고 점차 민간교역로의 기능을 맡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당시 대부분의 옛길이 신작로로 바뀌는 과정에서 길이 확장되고 가로수가 세워지면서 본래 모습을 잃게 되었고, 남은 옛길마저 후대에 임도로 사용되면서 훼손된 상황이다.

명승으로 지정되는 옛길은 ‘예전부터 다니던 길’ 또는 ‘옛날에 존재했던 길’ 등 단순히 시간과 공간의 사전적 의미를 넘어 길에서 오랜 시간 축적돼 온 문화, 역사, 전통 등을 모두 포함하는 정신적 가치를 담고 있어 선조들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번 6개 옛길은 문화재청의 ‘옛길 명승자원조사’ 결과와 관계전문가, 지방자치단체의 추천을 받아 발굴한 옛길 잠재자원 21개 중 현지조사, 문화재위원회 검토 등을 거쳐 역사문화적 가치, 경관적 가치, 생태적 가치, 활용 가치 등을 고려해 명승으로 지정 추진됐다.

문화재청은 옛길 6개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최종 지정할 계획이다.

이번에 지정 예고된 대표적인 옛길 중 ‘삼남대로 갈재’는 고려 시대 현종이 나주로 몽진할 때 이용한 삼남대로의 대표적 고갯길이다.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를 구분하는 상징적인 장소로 조선 시대 많은 문인이 이곳을 지났다는 기록을 통해 이곳의 역사적 가치와 중요성을 알 수 있다. 또한, 송시열이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사사되기 전 마지막 여정이었으며, 동학농민군이 장성에서 대승을 거두고 곧바로 정읍으로 향하기 위해 갈재를 넘었다고 한다.

길 가운데 축대가 조성돼 마차와 사람들이 다녔던 경로가 구분되고, 돌무지가 회전 교차로의 역할을 하는 등 과거 교역을 위해 활발히 이용됐던 옛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외에도 정읍과 장성을 연결하는 돌길, 흙길의 형태가 잘 남아 있고, 고갯길 정상에는 부사 홍병위 불망비가 위치하는 등 옛길을 따라 다양한 문화유산과 함께 주변에 참나무, 단풍나무, 소나무 등이 우거져 경관적 가치 또한 크다.

울진 십이령은 두천원(斗川院)을 기점으로 봉화 인근 내륙의 생산품과 울진 인근의 해산물을 교역하던 십이령의 일부로, 샛재·바릿재 등 옛 십이령의 주요지점이 잘 남아있다. 십이령은 울진과 봉화에 걸쳐 위치한 12개의 큰 고개를 말하며, 영남지방을 대표하는 험준한 길로 사대부보다는 주로 상인들이 오가던 길이었다.

조선 후기 문신 이인행(李仁行, 1758~1833)은 ‘신야집(新野集)’에서 유배지까지의 여정 중 겪었던 험한 길 중 십이령을 첫 번째로 꼽았고, 이곳에서 어염(魚鹽)을 파는 상인들이 끊임없이 왕래하던 모습을 남겼다. 실제 울진 십이령은 울진 내성행상 불망비, 성황당과 주막 터, 현령 이광전 영세불망비 등 보부상과 관련된 역사문화적 요소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특히, 샛재에 위치한 ‘조령 성황사’는 옛 보부상들이 성공적인 행상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오가는 길손들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정기적인 배향을 하는 유서 깊은 곳이다. 또한, 황장봉산 동계표석(黃腸封山 東界標石)은 양질의 소나무인 황장목을 확보하기 위해 해당 지역을 봉산(封山)으로 지정한 것으로 옛길 주변에 우거진 금강송의 우수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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