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녹지불평등 진단과 대응 주제로 열린 도시숲 정책포럼
지난 26일 녹지불평등 진단과 대응 주제로 열린 도시숲 정책포럼

[Landscape Times 이수정 기자]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관통하면서 그동안 묻혀 있던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가운데 녹지 또한 수혜자의 범위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도시의 이름 있는 대규모 공원이나 한강 수변 등 경관이 빼어난 녹지 주변은 값비싼 주거단지로 둘러싸여 있다. 인구가 밀집된 서울의 한 자치구는 아파트 재개발로 조경녹지가 증가했지만 정작 늘어난 녹지면적이 사유화되면서 이용자를 배제하는 현상을 낳았다.

사회적 불평등이 곧 녹지 불평등이라는 서글픈 동의어를 뒤로 하고 기후위기 시대 녹지 형평성 문제는 이제 풀어야 할 숙제가 됐다.

북미 대도시 저소득 동네일수록

공원녹지 접근성 열악해

생명의 숲(이사장 허상만)이 ‘녹지불평등 진단과 대응’을 주제로 도시숲 정책 포럼을 지난 26일(목) 개최했다.

이 같은 녹지 불평등 문제는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흐름이다. 박근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산림자원관리학과 교수에 따르면, 2020~2021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회 여가 활동이 규제되고 위축됐지만 전 세계적으로 공원녹지에 대한 수요는 오히려 증가했다. 그러나 과연 모든 사람이 공원녹지를 더 이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가 제시한 북미권 공원녹지 연구 자료를 보면 연령별, 성별, 인종별, 소득·교육수준별, 장애유무별 야외활동 빈도는 각기 달랐는데 특히, 저소득 동네일수록 가로녹지 등 소규모 일상 녹지로의 접근성이 나쁘다. 거꾸로 말하면 녹지 접근성이 열악한 동네 주민들은 코로나19로 이동범위가 더욱 제약됐다는 것이다.

대도시 공원은 대체로 대중교통수단으로 접근성이 높아지는데 미국의 경우 유색인종이나 노인계층의 공원 접근성은 보행뿐만 아니라 대중교통에서도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대형공원 주변지역에는 고소득 가구와 백인 비율이 높았다는 결론이다  

한편으로는 가까운 생활권 소규모 녹지는 인근 이용자들의 활용형태도 반영하지 못했다.

박 교수는 공원녹지 불평등을 환경정의의 분배적 정의(도시숲 접근성)에서 나아가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이 공원녹지에 접근하기 어렵고 초기 계획과정에서 배제되고 공간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환경부정의’ 즉 “상대적으로 절차적 정의(사회경제적 취약계층 참여), 관계적 정의(취약계층이 공간과 혹은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가 간과되지 않았나”고 문제 제기했다.

이어 “코로나19 팬데믹은 공원녹지의 중요성을 일깨웠지만 접근성과 이용성 모두 고려하면 (녹지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열린 것은 아니다. 분배적·절차적·관계적 정의 모두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팬데믹에 영향을 많이 받는 고령층이나 저소득층, 장애인에 초점 둔 정책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녹지 불평등 6411 버스서도 보여

서울 자치구별 녹지 격차 최대 14배

그렇다면 서울시 내 계층별, 지역별 생활권 도시숲 현황과 분배성은 어떠할까.

신혜영 생명의숲 선임활동가는 청소노동자의 첫차로 유명한 서울시내버스 6411버스 노선을 통해 서울 서남단인 구로구와 강남 개포동의 가로녹지 경관을 대조했다. 그 결과 구로구보다 강남구, 서초구가 가로녹지가 풍성하고 조경녹지도 빈번하다.

신 활동가에 따르면, 공원, 도시공원, 도보생활권공원의 자치구별 격차는 최대 14.3배에 이른다. 서울시 전체 인구 70%가 1인당 공원면적은 3제곱미터 이하다. 서울시 423개 행정동 가운데 생활권 도시공원이 전혀 없는 곳도 7곳이다.

신 활동가는 불균형한 녹지 분배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우선, 공공부지를 학교를 거점으 로 한 녹지 확보를 들며 “기후위기와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해 학교숲 조성 모델이 필요하다. 운동장의 많은 부분이 숲으로 전환하는 방법이 고려돼야 한다”며 “녹지 소외 지역 중심으로 우선 지원하고 녹지를 보편화하기 위해 재원 마련을 위한 민관협력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도심 내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녹지 조성이 필요하다면서도 “푸른도시서울상, 산림청의 제도권 내 사업이 진행되지만 대상지 확보나 조성비용 확보에 한계가 있다. 기초 자치단체 의지에 따라 편차가 크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민참여 창구가 마련돼야 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노후공원 리모델링과 이용권에 제약 받는 이들을 위한 근린공원 만들기 등 기존 공원녹지의 질적 개선을 제안하면서도  “제정된 도시숲법에 따라 도시숲 지원센터가 행정 사각지대 있는 공원녹지의 양적, 질적 개선과 함께 시민참여 또는 민간 자원을 연계하는 창구 역할이어야 한다”고 요청했다.

김용국 건축공간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서울의 경우 현실적으로 공원 확보 제약이 커 질적인 개선방식으로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민간재원이 필요한 데 동의하며 “일본은 노후공원 활성화 범위에서 방치됐던 공원 정비 수익시설을 공원에 환원해 도쿄 신주쿠 미나미공원을 활성화해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처럼 인구밀도 높고 주거지역이나 시설 상업시설이 밀집된 노후공원에 적용할 여지가 크다”고 의견을 냈다.

그리고 “기존 도시나 행정동 차원의 대규모 공원을 넘어 소규모 생활권 녹지로서 맞춤형 대안을 만들어낼 시점이다”고 말했다.

녹지율 높아진 자치구 이면 ‘재개발’

공원, 면적 공급에서 이용 중심 '공유지'로 바라봐야 

신 활동가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서울시 토지이용에서 녹지 및 오픈스페이스가 감소한 반면 조경녹지, 주거지녹지는 증가했다. 실제로 영등포구는 불과 몇 년 전 1인당 공원면적 최하위권이었지만 아파트 재개발로 조경녹지와 기부채납공원이 늘면서 2020년 1인당 공원녹지 면적이 상위권으로 상승했다.

김은희 도시연대 정책연구센터장은 “(재개발로) 녹지율이 높아졌지만 재개발에 따른 사회적 불평등도 같이 높아졌다. 원인을 규명해나가는 연구나 논의가 집중돼야 한다”며 “도시공원의 불평등은 곧 사회적 불평이다”고 비판했다.

이어 “공원이 자본 중심 공간으로 재편되면서 공간의 불평등은 심화됐다. 기후변화 대응 차원에서 대형 공원이나 숲 공원 몇 개 만들 게 아니라 일상과 연계할 고민이 필요하다”며 “면적 형태의 공급에서 질적인 이용 형태로 논의를 전환할 때”라고 피력했다.

무엇보다 “취약계층에게 필요한 녹지형태나 서울역 쪽방동네 주민에게 필요한 공원은 어떤 것인지 실제로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걸 제대로 바라보지 않으면 정형화된 디자인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앞서 논의된 관계적 정의와 관련해 주민 참여 녹화에 대해서도 “사회적 가치에 대해 지분을 강제하는 게 주민참여다. 주민참여가 절차적 도구화로 전락했다”고 비판하며 “행정은 만들어놓고 할 일 다 했다는데 유지관리 비용·방법·주체·지원제도가 (민간 역할보다) 더 중요하다”고 행정의 책임을 물었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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