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 Times] 정원의 역할이 날로 커지고 있다. 울타리 안의 위요된 정원은 사전적 정의일 뿐, 더 이상 정원은 마당 한편의 예쁜 꽃밭이나 식물원에 잘 조성된 테마 정원을 말하는 데 국한되지 않는다. 단순히 보고 즐기고 배우고 치유하는 공간에서 보다 포괄적으로 정원에서 파생 혹은 함께 접목 가능한 문화와 예술, 환경, 생태, 각종 사업 영역까지 아우르는 분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정원은 카페나 레스토랑의 실내외 공간에 도입된 지 이미 오래고, 유명 백화점에서도 가장 핫한 휴게 공간이 되었으며, 주거 공간뿐 아니라 각종 건물의 옥상과 벽면, 자투리 공간에도 들어섰다. 이제 정원은 단지 물리적으로 미적인 아름다움과 휴식을 제공하는 공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내에는 미세먼지를 저감시켜 주는 스마트한 수벽 정원이 조성되고, 각 가정에는 심신의 건강을 증진시켜 주는 반려식물 플랜테리어가 유행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로 인해 정원에서 이루어지는 가드닝 활동의 중요성도 더욱더 커졌다. 비대면 수업과 재테크 근무가 일상화되면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 사람들에게 정원은 야외 교실이자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귀중한 공간이 되었다. 정원은 아이들에게 전인교육의 장으로서 창의력과 학습능력, 소근육 발달, 사회성, 자연 사랑, 관찰력 증진뿐 아니라 다양한 학습을 위한 산교육의 터전이 될 수 있다.

장기화된 코로나 시대 사회∙경제적으로 맞닥뜨리게 된 여러 제약으로 ‘코로나 블루’라는 우울감을 앓는 이들에게 정원이 치유와 위로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정원 있는 집’을 꿈꾸게 되었다. 정원을 직접 조성하고 가꾸지 않아도 수목원과 식물원, 기타 공공 정원과 민간 정원을 방문하여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으며, 정원을 통한 힐링 프로젝트에 대한 수요도 더욱 높아졌다.

보다 거시적 관점에서 숲과 정원은 대기오염, 온실가스 등 날로 심각해지는 지구 온난화로 ‘아픈’ 지구를 되살리기 위한 생태 환경적 해법의 중심에 있다. 싱가포르는 일찌감치 ‘도시 안의 정원’에서 ‘정원 안의 도시’로,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바이오필릭 도시’로 캐치프레이즈를 바꾸었다.

1960년대 독일 태생 미국의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이 주창한 생명 사랑을 뜻하는 바이오필리아 개념을 도시에 적용한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 환경 보존은 기본이고 정원을 통해 생태계와 인간이 조화를 이루어 모두가 건강한 삶의 질을 영위하고자 하는 목표를 담고 있다.

정원은 이제 뉴딜 정책과 뉴노멀, ESG 등 전세계적으로 점점 관심이 높아지는 화두와 함께 진지하게 거론된다. 특히 ESG는 정부 기관뿐 아니라 기업과 학계, 시민 단체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인데, 정원과도 많은 부분 연계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기업 경영에서 필수적 가치로 부상하고 있는 ESG는 2006년 UN의 책임 투자 원칙으로 거론된 개념으로 환경(Enviroment)·사회(Social)·거버넌스(Governance)의 영문 첫 글자를 조합한 단어이다.

이 세 가지는 기업의 3대 비재무 지표로서 지속 가능한 경영, ‘같이의 가치’를 강조한다. ESG는 투자 결정과 자산 운영과 관련하여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핵심 원칙으로 점점 더 많은 기업에서 채택되어 왔는데, 코로나19 위기가 닥치면서 환경, 사회 문제에 대한 기업의 책임론과 함께 다시금 주요 쟁점으로 확산하게 되었다.

다우 존스의 팩티바(Dow Jones Factiva)에 따르면 ESG에 관한 지난 2년간의 뉴스 보도량은 150% 이상 증가했다. ESG와 정원은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정원과 식물 컬렉션을 매개로 미션을 수행하는 수목원과 식물원의 예를 들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영국 런던의 260여 년의 전통을 지닌 큐 왕립 식물원은 생물 다양성 손실과 기후 변화라는 커다란 도전에 맞서 싸우며 100만 본 이상의 식물과 700만 개의 표본 등 보유 자원을 기반으로 한 광범위한 연구를 토대로 전 세계 멸종 위기종에 대한 심각성을 널리 알리고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왔다. 이를 통해 아프리카 등 열대 우림지역이 벌목되는 것을 막고 이미 훼손된 지역에는 전 세계 뜻 있는 기업들이 새롭게 수십 억 그루의 나무를 심도록 돕고 있다.

최근 발표한 ‘변화를 위한 성명서’에 따르면 큐가든은 2030년까지 2019~2020년 기준 대비 탄소 ‘핵심’ 배출량을 46.2% 줄인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큐가든이 운영하는 정원은 웨이크허스트, 서섹스, 큐 마다가스카르 보전센터까지 포함하므로 큐가든의 새로운 기후 대응 정책은 이 시설들에도 모두 적용되는 것이다.

전력을 비롯하여 직원들의 출장과 출퇴근으로 발생하는 탄소 배출, 폐기물, 용수, 연료가 핵심적인 배출원에 포함되며, 여기에 방문객 관련 배출에 대한 목표도 설정 중에 있다. 가령 현장에서 재생 에너지 발전량을 증가시키고, 차량 연료는 전기로 업그레이드하며, 식품 및 음료 매장에서 일회용 플라스틱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탄소 상쇄 전략은 유엔이 후원하는 ‘레이스 투 제로’ 캠페인에 의해 승인되었다.

ESG 경영에 앞장서는 핍스 식물원의 온실과 조경센터 전경. 세계에서 가장 친환경적 건물과 지속 가능한 운영 방식, 탄소 저감을 위한 노력으로 유명하다. ©2021 Phipps Conservatory and Botanical Gardens except where noted
ESG 경영에 앞장서는 핍스 식물원의 온실과 조경센터 전경. 세계에서 가장 친환경적 건물과 지속 가능한 운영 방식, 탄소 저감을 위한 노력으로 유명하다. ©2021 Phipps Conservatory and Botanical Gardens except where noted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핍스 컨서버토리 식물원(Phipps Conservatory and Botanical Gardens)도 지속 가능한 운영에 대한 철학과 투자 유치로 성공적인 ESG 경영의 모범을 선보이고 있다.

핍스 식물원의 미션은 식물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에 대해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교육과 연구, 실천을 통해 인간과 환경의 안녕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이에 따라 2005년 세계 최초로 LEED(미국 녹색건축위원회의 녹색건물인증제도) 인증을 받은 방문자 센터를 건립하였고, 2012년에는 가장 까다로운 4개의 친환경 건축물 기준인 리빙 빌딩 챌린지(Living Building Challenge), 리드 플래티넘(LEED Platinum), 웰 플래티넘(WELL Platinum), 사이츠 플래티넘(SITES Platinum)을 모두 달성한 전 세계 유일한 건물을 지었다.

또한 조직의 모든 분야에 지속 가능성을 통합 적용해 오고 있다. 카페에서 정크 푸드나 생수, 플라스틱 일회용품을 취급하지 않고, 가드닝 작업에 있어서도 지속 가능한 친환경 방식을 채택하며, 부지 전체에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사용한다. 전형적인 펜실베이니아 가족이 집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매년 사용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에 해당하는 16개의 드럼통을 온실 앞 진입로에 전시하는 등 식물원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탄소 저감에 대한 의식을 고취시키는 일도 하고 있다.

산림청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수목원정원관리원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국립세종수목원과 함께 지난 5월 ESG 경영을 선포하고 이와 관련된 사업을 다각도로 전개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7월에는 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 소비자기후행동 등 단체와 수목원이 함께하는 No 플라스틱 캠페인을 벌였으며, 앞으로도 2050 탄소중립과 연계한 ESG 경영에 적극 임할 계획이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수목원, 식물원, 정원이 환경과 사회, 거버넌스라는 ESG의 세 가지 핵심 가치에 대해 좋은 사례들을 선보이며 인간 사회와 자연이 건강하게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의 보장을 모색하고 있다. 한마디로 지구촌을 구하는 데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화학자 크뤼천(Crutzen, P.)이 제안한 인류세(Anthropocene)라는 말이 있다.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지구 환경이 크게 바뀐 지질 시대를 이르는 말이다. 방사능 물질,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플라스틱, 콘크리트 등은 분명히 수십억 년 동안 자생해 온 지구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플라스틱은 뉴락 또는 플라스티글로머리트(plastiglomerate)라고 불리는 플라스틱 암석으로 굳어져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지구에 아픈 상처로 존치할 것이다.

‘당신의 머리는 당신의 발이 있는 곳에서 생각한다’는 프레이 베토(Frei Betto)의 말처럼 이제는 지구 환경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냉정하게 직시하고 다른 동식물들이 살아가는 자연 생태계를 함께 보살피며 가능한 한 많은 숲과 정원에 발을 딛고 서서 미래를 생각할 때이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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