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회의 캡쳐, 왼쪽부터) 신명진 유엘씨 에디터, 김창재 미술작가, 김정화 막스플랑크 예술사연구소 연구원
(화상회의 캡쳐, 왼쪽부터) 신명진 유엘씨 에디터, 김창재 미술작가, 김정화 막스플랑크 예술사연구소 연구원

[Landscape Times 승동엽 기자] 조각하기란 미술에서 재료를 새기거나 깎아서, 혹은 빚어서 입체 형상을 만드는 행위를 의미한다. 조각하는 일과 소조하는 일을 아우르기도 한다. 조경에서 식재를 하고 도시의 중심이 되는 색상을 결정하며, 녹지의 비율을 산출하는 등의 행위는 사전적 의미를 넘어서 일정 부분 도시 ‘조각’하기의 큰 틀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지난 11일(수) 유엘씨(ULC, Urban Landscape Catalog)는 ‘Open Space, Open Artwork: 공공예술로서의 조경’ 프로젝트 두 번째 온라인 세미나 ‘조경×조각(도시 조각하기)’을 개최했다. 세미나는 신명진 유엘씨 에디터의 발제와 김정화 막스플랑크 예술사연구소 연구원, 김창재 미술작가의 토론으로 진행됐다.

“조경은 정해놓은 매체에 변화를 주는 조각 행위와 닮았다”

개념 미술(Conceptual Art)로 잘 알려진 미국의 현대미술 작가 솔 르윗(Sol Lewitt)은 1981년 페어몬트 공원 예술협회(Fairmont Park Art Association)의 의뢰로 매사추세츠 주 라일리 메모리얼(Reilly Memorial)을 위한 공공예술 프로젝트 “꽃으로 만든 네 방향의 선(Lines in Four Directions in Flowers)”을 구상하면서 작품의 설치, 경험과 해석을 대중에게 맡기는 구조적 작업을 택했다.

솔 르윗은 꽃이라는 매체를 지정만 할 뿐 조경가의 해석과 작업 방식에 있어서 해석의 여지를 남겨뒀다. 작업이 구상된 지 약 30여 년이 지나 착수에 들어간 조경회사 올린(OLIN)은 식재의 종류, 표현하는 방식, 경험의 방법과 과정을 세밀하게 재해석하는 과정을 거쳤다.

올린은 색상별로 연달아 피어날 수 있는 4~5 종류의 꽃을 선정해 오랫동안 4개의 사각형의 색상이 돋보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를 위해 식재 알고리즘을 활용했는데, 올린은 이러한 알고리즘이 일련의 명령문과 개념어로 구성된 솔 르윗의 작업 구상과 일맥상통한다고 판단했다.

발제에 나선 신명진 유엘씨 에디터는 “조경가가 이러한 도시 경관을 만드는 행위, 혹은 설계하고 형태를 빚어내 실현화하는 일련의 작업은 3차원적 환경 속에서 작가가 정해놓은 매체에 ‘변화’를 주는 ‘조각’ 행위와 닮았다”고 말했다. 또한, 신 에디터는 “조경은 좁게는 집 앞의 가로수부터 넓게는 공기와 바람, 미세먼지까지 책임을 지게 된다”며, 일찍이 문명이 태동하던 시절부터 존재한 정원이라는 공간부터 오늘날의 커뮤니티 활동을 통한 경관의 재생까지, 조경은 ‘도시 조각하기’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경과 조각의 만남이 가장 두드러지는 지점은 ‘정원’이다”

신 에디터는 이어진 발제에서 정원이라는 공간이 조경과 조각의 조우가 가장 두드러지는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퍼포먼스적 요소가 내포돼있는 픽처레스크 정원의 모습을 보면 초점을 조각품 혹은 수목 군락 등에 놓고 주변환경이 펼쳐지는 기법이 활용됐다고 말했다. 이는 경관의 통합적 경험이라는 차원에서 조경과 조각물이 소통하는 관계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또한 신 에디터는 초창기 센트럴파크 설계도면에 등장하는 유일한 조각품 ‘물의 요정(Angel of Waters)’을 사례로 들며 “픽처레스크라는 미적 언어 속에서 정원과 유사한 역할을 맡았던 센트럴파크에 ‘상징성’을 부여한 것은 바로 조각품이다”라고 말했다.

“도시야말로 조경이 조각, 나아가 공공예술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다”

김정화 막스플랑크 예술사연구소 연구원은 신 에디터가 주장한 조경과 조각이 가장 두드러지는 지점이 정원이라는 것에 대해 반박했다. 김 연구원은 “신 에디터가 주장하는 정원 속 조각품이 주변 환경과 맞물려 상상력을 촉발시킨다는 것에 의문이 든다”며, 조경 사학자 존 딕슨 헌트(John D. Hunt)의 말을 인용해 “많은 픽처레스크 정원은 상징과 알레고리가 가득한 극장이었는데, 여기서 조각은 퍼포먼스 수행자였고 경관은 이를 뒷받침하는 무대이자 재현 장치에불과했다”고 말했다. 픽처레스크 정원 속 알레고리로 존재하는 고대 신화 속의 조각상 앞에서 인간은 관람자에 불과했을 뿐이며, 참여의 기회를 열어두고 있는 곳은 우리의 정체성과 생활이 얽혀 있는 곳, 삶의 터전이자 내 공동체의 기억이 집적된 ‘도시’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서는 조경이 조소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대해 김창재 미술작가는 “업역 침범은 매우 민감한 사항이지만, 관점을 바꿔 생각해보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며, “예컨대 조소를 전공한 사람이 조경을 하고, 조경을 전공한 사람이 조소를 하는 것은 그 작품을 창작하고 활용하는 관점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우려할 부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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