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시대] 먼저 조경에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넓게 가지를 펼쳐라
[조경시대] 먼저 조경에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넓게 가지를 펼쳐라
  • 이태겸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21.07.07
  • 호수 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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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겸 (주)에스이디자인그룹 공공디자인연구소 소장
이태겸 (주)에스이디자인그룹 공공디자인연구소 소장

[Landscape Times] 모르는 번호로 한 통의 메시지가 왔다. ‘선배님, 저는 00학번 나조경입니다. 만나 뵌 적은 없지만, A선배에게 소개받고 연락드립니다. 찾아뵙고 진로에 대해 여쭙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대학원 입학 시즌이 시작되면 더 많은 연락을 받는다.

어느 날은 오래 못 봤던 후배에게, 어느 날은 답사 동행하는 다른 전공의 학생에게, 아르바이트하러 온 학생들에게, 또 어느 날은 다양한 분야의 현직 종사자들에게 상담 요청을 받는다. 누군가에게 특별히 대단한 조언을 할 처지도 아니지만, 어느 분의 말처럼 현재의 나는 ‘학계와 업계 가운데에 있는 사람, 다양한 분야의 일을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기에, 뚜렷한 방향 제시보다 여러 측면을 고려하여 고민을 나누고 싶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고민의 경중을 따질 수 없지만,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거나 생업을 하다 대학원으로 진로를 변경하거나 병행하는 경우에는 좀 더 신경이 쓰인다. 아무래도 나 자신이 오래 대학원 생활을 한 만큼 즐거움과 고충도 두루 겪었기 때문이리라.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는 경우, 진로학과, 세부전공, 풀타임과 파트타임 등 대학원 유형 등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나눈다. 꽤 자주 듣는 고민은 진학 전에 어느 정도 사전 공부가 되어 있어야 할 것 같다며 대학원 진학을 미뤄야 할까 하는 것이다.

대학원은 좀 더 알고 싶은 분야의 지식의 ‘일부’를 채우러 가는 곳이기에 과도한 기대와 지나친 자기 비하는 금물이다. 사회와 마찬가지로 대학원도 도전하는 곳이고, 성공도 있지만 실패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대학원생뿐 아니라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해있는 다양한 사람들과도 진로 고민을 나누는 때가 많다. 그러나 그들의 경험과 고민거리를 최대한 많이 들은 후에 하는 이야기들은 사실 내가 존경하는 선배님들 말씀이다. 나는 그저 나에게 와닿았던 조언을 내 경험에 비추어 다시 전달하는 것과 다름없다.

관심있는 연접 분야에서도 일하고 싶다면, 먼저 조경가로서 깊이 공부하고 충실한 네트워크를 쌓아 조경이란 분야에 튼튼한 뿌리를 내려야 한다. ⓒU.S. National Park Service
관심있는 연접 분야에서도 일하고 싶다면, 먼저 조경가로서 깊이 공부하고 충실한 네트워크를 쌓아 조경이란 분야에 튼튼한 뿌리를 내려야 한다. ⓒU.S. National Park Service

Ep1. 대학원 박사과정 내내 나의 멘토이자 등대였던 학내 연구소의 한 선배께서는, “네가 아무리 다른 일을 하더라도, 사회에서 보는 너는 조경인이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설계나 시공 등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조경 분야를 포함한 도시·경관·사회·문화 등 공간을 구성하는 모든 것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막연하게 ‘조경을 좋아하지만 다양한 일도 하고 싶은데, 조경인이라는 이름표만으로 충분할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현업에서 활동하는 현재, 선배님의 말씀을 이해한다. 내가 매일 접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경관, 지역개발 및 재생, 공공디자인, 문화경관 등 다양한 분야의 일을 하고 있지만, 아무리 다른 분야에서 일하더라도 이력서에 쓰고 외부에서 호명되는 나는 ‘조경인’이고, ‘조경인’으로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조경인이라는 정체성이 내 활동의 원동력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Ep2. 대학원 졸업 후, 모 대학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 선배가 있다. 대학교 때 조교이자 강사로 만났기에 어렵게 느껴졌던 선배였는데, 부임 후 우연히 장시간의 동행을 할 기회가 있었다. 대학원 졸업 후 여러 고민을 하던 때였는데, 앞서 길을 가고 있는 자로서 경험한 선례들과 함께 한 가지 조언을 해주셨다.

“뿌리를 튼튼히 내리지 못한 나무는 갑작스러운 바람이나 큰 태풍에도 쉽게 쓰러진다. 가뭄이 왔을 때도 뿌리를 얕게 내린 나무는 오래 견딜 수 없다. 전문가로 사는 삶도 마찬가지다. 관심있는 연접 분야에서도 일하고 싶다면, 먼저 조경가로서 깊이 공부하고 충실한 네트워크를 쌓아 조경이란 분야에 튼튼한 뿌리를 내려야 한다. 그 후에 다른 분야로 가지를 뻗어도 중심을 잃지 않고, 너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급해하지 말아라. 깊고 넓게 뿌리내린 나무는 가지를 아무리 넓게 펼쳐도 쓰러지지 않는다.”

‘전공 분야에만 집중해라, 한눈팔지 말아라’와 같은 이유를 알려주지 않는 조언과 다르게, 이때의 조언은 삶의 방향을 정하는 것뿐 아니라, 그 이후 조경인으로서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십여 년이 지나, 관심사와 조경이 다른 것 같아서 조경을 계속할지, 조경의 여러 세부 분야 중 어떤 분야를 선택해야 할지, 대학원에 진학할지 실무경험을 먼저 할지와 같은 후배들의 고민을 들으며, 두 선배의 다른 듯하지만, 똑 닮았던 조언을 전해준다.

‘조경이든 아니든, 나의 뿌리를 깊고 넓게 뻗을 수 있는 분야를 찾아보세요. 당신의 관심사와 유사한 이러이러한 분야도 있어요. 어디에서든 튼튼하게 기본을 잘 다지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답니다. 혹시 모르겠다면, 조경을 조금만 더 알아가 볼래요? 조경은 방대한 분야라 어딘가에 당신이 찾고 있던 곳이 숨어있을지도 몰라요. 선택은 당신의 몫이지만, 조급해하지 말고 넓은 시야로 찾아보세요.’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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