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 Times] 늦봄부터 초여름의 꽃밭은 식물들의 욕망의 경연장이다. 그들의 진한 욕망은 수분매개자인 곤충과 동물뿐 아니라 우리 인간들의 발길도 잡아 끈다. 꽃이 피어있는 동안 결혼을 해야 아기를 만들 수 있으니 식물들의 마음은 급하다. 짝에게 다가갈 수 없는 그들은 중매쟁이의 도움이 절실하다. 중매쟁이를 끌어들이는 전략과 스타일도 가지가지이다.

점잖게 곤충들을 초대해서 티타임을 갖거나 점심이나 저녁식사를 함께하는 식물들도 있지만, 강압적으로 곤충들을 납치하여 하룻밤 가두어 두곤 임무를 확실하게 완수해야 풀어주는 식물도 있다. 그뿐 아니다. 아예 자기가 그 곤충의 짝인 양 사기를 쳐서 목적을 달성하는 식물들도 있다. 바로 해머오키드(Drakaea glyptodon)라는 식물이다. 이 식물은 자신의 결혼을 위해 죄 없는 수컷 말벌을 꼬드긴다.

앞 다투어 피어나 중매쟁이들을 부르는 식물의 욕망 ⓒ최문형
앞 다투어 피어나 중매쟁이들을 부르는 식물의 욕망 ⓒ최문형

타이니드 말벌 수컷은 막 태어난 암컷과 교미한다. 날개가 없는 암컷은 땅 속에서 나와 필사적으로 기어서 20센티미터 정도 되는 풀 위로 기어 올라간다. 꼭대기로 올라간 암벌은 페로몬을 풍겨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수컷을 부른다. 덩치 큰 수벌은 즉각 날아와 날개 없는 암벌을 안고 날아다니며 배고픈 암벌에게 꿀을 먹이고 짝짓기도 한다.

바로 요맘때 이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얄미운 꽃이 피어난다. 꽃의 키는 20센티미터이고 꽃잎 모양은 날개 없는 암벌 모양에다가 크기도 비슷하다. 게다가 이 꽃은 정탐능력이 어찌나 뛰어난지 암벌과 똑같은 페로몬을 솔솔 뿌려댄다. 페로몬에 이끌린 수컷은 조금의 의심도 없이 정신없이 날아와 꽃을 암벌로 알고 부둥켜안고 날아오르려 한다. 하지만 꽃이 무슨 수로 날겠는가?

안타까운 수컷이 꽃을 부여잡고 날아오르려 할 때마다 계속 맞은편 수술에 부딪힐 뿐이다. 게다가 이 꽃이 풍기는 페로몬은 진짜 암컷의 10배나 된다. 워낙 페로몬이 강하니 한 마리가 아닌 몇 마리의 수컷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이들은 혈투를 치르지만 승리한 수컷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감쪽같이 결혼사기를 당했을 뿐! 수컷은 온 몸에 끈적대는 꽃가루를 뒤집어쓰고 꽃에서 겨우 떨어져 나온다. 하지만 다시금 옆의 꽃에 다가가 같은 일을 되풀이한다. 이 과정을 거쳐 해머오키드의 꽃가루는 다른 꽃의 암술에 붙어 수정이 된다.

개업이나 승진 때 선물로 인기인 난은 꽃을 피우는 식물의 20%를 차지하는, 아주 성공적으로 진화한 식물이다. 그 성공의 열쇠는 꽃에 있다. 난꽃은 지조가 강해서(?) 오직 한 종류의 수분매개자만 선택해서 유혹한다. 꽃가루가 섞이지 않아야 수정확률이 확실하게 올라가므로, 난꽃의 전략은 자신의 꽃가루가 다른 종류의 식물과 섞이지 않도록 딱 한 종류의 중매쟁이만 선택했다.

게다가 난의 꽃가루는 다른 꽃들과는 다르게 꽃가루들이 낱개로 흩날리지 않고 한 곳에 뭉쳐있다. 꽃 입장에서는 수분 과정의 위험부담이 크다. 그래서 일부 난꽃은 곤충을 속여 먹는다. 벌보필름(Bulbophyllum virescens)은 중앙의 꽃잎 하나가 특이하다. 파리가 날아오면 꽃잎이 움직이게 설계되었다. 꽃잎은 덫처럼 파리를 가두는데, 이 덫은 정해진 몸무게에만 반응한다. 크기가 다른 파리나 다른 곤충들은 갇히지 않는다. 이 난은 자신의 꽃가루만 날라줄 전담파리를 골라서 가두는 전략을 쓴다.

지난 4월 말 국립광릉수목원에 개화한 광릉요강꽃 ⓒ국립광릉수목원 숲해설가 윤인호 제공
지난 4월 말 국립광릉수목원에 개화한 광릉요강꽃 ⓒ국립광릉수목원 숲해설가 윤인호 제공

광릉요강꽃(Cypripedium japonicum)도 덫을 만드는 난꽃 중 하나이다. 광릉요강꽃은 동아시아 특산종이자 멸종 위기 1급식물이다. 이 꽃은 항아리처럼 생긴 독특한 꽃잎을 가졌고 꽃 중심엔 구멍이 뚫려있는데, 그 구멍 속에 꽃가루처럼 보이는 노란 반점이 있다. 꽃 위쪽에는 또 다른 구멍이 있는데 이 구멍 옆에 있는 것이 진짜 꽃가루이다. 또 꽃 윗부분에는 빛을 투과하는 투명창이 있다. 놀이동산 같기도 한 이 복잡한 구조는 다 이유가 있다. 벌이 꽃에 다가가면 꽃은 먼저 입구로 안내하는데 그 입구는 벌이 잘 볼 수 있는 보라색의 원이다. 벌이 현관에 도달하면 구멍 안쪽이 보이고 거기에는 먹이로 착각할 수 있는 노란 반점이 있다. 벌은 아무런 의심 없이 그 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입구는 들어갈수록 좁아진다. 꽃의 구조는 들어갈 수만 있지 되돌아 나올 수는 없는 구조이다. 결국 벌은 함정에 갇힌다.

불쌍한 벌은 발버둥치면서 어떻게든 탈출하려고 하지만 방법이 없다. 그때 절망하는 벌에게 한 줄기 빛이 보인다. 바로 투명창으로 들어오는 빛이다. 빛을 향하는 습성이 있는 벌은 그 쪽으로 향한다. 이것을 예상한 듯, 꽃은 안에 짧은 털을 만들어 두었는데 이 털은 출구 쪽으로 갈수록 많아진다. 당황한 벌은 이 털을 사다리처럼 짚고 올라간다. 꽃은 벌이 무사히 꽃잎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밖에도 털(사다리)을 만들어 두었다. 아주 주도면밀하다. 좁은 출구에서 버둥거릴 때 벌은 진짜 꽃가루를 온통 몸에 묻히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벌이 덫에서 빠져나가면 벌의 등에 붙은 꽃가루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벌이 다른 꽃의 암술에 갔을 때 꽃가루가 암술에 잘 붙을 수 있도록 각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짝을 찾아 번식에 성공하고 후손을 두는 것은 모든 생명체의 본능이고 욕구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많은 생물들은 생명을 걸기도 한다. 그만큼 복잡하고 난해한 과정이다. 식물은 다른 생명체들의 욕망과 습성을 꿰뚫어 보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무사한 결혼을 위해 정교하고 과학적인 시스템과 전략을 구축했다. 우리는 꽃밭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의 욕망을 후린, 성공한 식물들의 경연장이므로.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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