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민규 협동조합 틔움 이사장
성민규 협동조합 틔움 이사장

[Landscape Times] 2000년대 후반 서울시(서원마을/능안골/선유골)에서 ‘살기좋은 마을만들기’란 이름으로 계획 수립이 시작되었다. ‘살기좋은 마을만들기’는 기성시가지 관리를 위해 주민참여를 통한 계획방식을 도입하여 양호한 단독주택지의 보전관리를 통하여 자산가지로서의 부동산이 아닌 ‘머물고 싶은 도시’이자 ‘살기좋은 우리동네’를 만드는 사업이었다. 이는 ‘휴먼타운’으로 확장되었고, ‘주민참여형 지구단위계획’이라는 수법으로 운영되다가 현재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상의 ‘(관리형) 주거환경개선사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도시재생 특별법)상의 도시재생사업은 아니지만 ‘주민의 참여를 통한 저층주거지의 주거환경 개선 추구’라는 점에서 도시재생사업과 맥락이 닿아 있다.

국토부에서는 2006년부터 도시재생연구개발사업(R&D 도시재생 테스트베드 사업)을 추진하였다. 도시재생 관련 정책, 제도, 기법, 설계 및 시공기술 등의 연구성과물을 실제 사업구역에서 적용하는 시범 사업을 운영하며 실용성 있는 도시재생모델을 구축하고 제도를 정비하는 과정을 진행하였으며, 이후 법제도 마련 및 선도지역 선정/사업 추진 등의 과정을 거쳐 도시재생사업을 확산시켜 나갔다.

테스트베드 추진 개념도(도시재생종합정보체계)
테스트베드 추진 개념도(도시재생종합정보체계)

이러한 도시재생계획 수립과정에서 가장 특징적인 내용은 기존의 공공주도의 전면재개발 방식에서 주민과 지역 주도의 보존 및 보완 방식의 사업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며 주민과 지역의 관심과 참여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이렇게 주민이 참여하고 주도하는 계획 결정과정이 시작되면서 가장 적응이 필요한 분야는 공공과 도시계획 관련 전문가 그룹이었다. 그동안 도시 분야의 계획 수립과정에서 주민들이 참여 할 수 있는 과정은 계획 수립을 위한 기초조사 단계에서의 간단한 설문조사(토지 및 건축물 소유자 대상의 우편 설문조사)와 계획 결정과정에서의 주민공청회, 주민공람 정도였다. 이때 주민들의 의견이 많은 경우 계획 내용 정리가 어렵고 일정이 늦어질 수 있다는 점 등을 우려하여 행정적으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법적 절차만 간단히 이행하는 것을 선호하였다. 지구단위계획의 경우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상 주민공람은 2개 이상의 일간신문에 게제하고 14일 이상 열람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나(시행령 제22조), 일부 계획 결정과정에서는 주민들이 많이 읽지 않는 일간신문에 게재하고 주말을 최대한 포함하여 주민공람을 진행하는 경우가 있었으며, 주민들이 적게 참여해도 문제없는 ‘주민이 거의 없는 주민공청회’가 진행되기도 하였다.
이렇듯 주민의견을 듣고 반영하는 과정을 법적 절차로만 생각하고 진행하다가 2000년 후반부터 도시재생활성화계획 수립 과정 등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본격적으로 듣고 반영하기 시작하였으며, 시·구 단위 기본계획 수립과정에서도 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노력들을 진행하기 시작하였다. 공공뿐만 아니라 용역을 수행하는 전문가 그룹도 현장에 나가서 주민과 지속적으로 의견을 교환하고 설명하며 계획안을 수립하는 과정은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것이었으며, 이런 의견 수렴 및 주민공동체 활성화의 전문 조직과 함께 계획을 만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과 예산을 들여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조율하며 만들어낸 계획(안)과 전문가들이 분석하여 만든 계획(안)은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일부 도시계획 전문가 그룹은 주민의견 수렴 과정이 불필요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처럼 공공은 주민들이 계획 수립과정에 참여하고 의견을 내는 걸 꺼려하였고, 전문가 그룹은 지역 주민의 의견을 듣는 과정을 불필요한 과정으로 생각하였으니, 주민 참여에 따른 상향식 계획 수립과정인 도시재생사업에 대한 인식이 좋았을 리 없다.

하지만 이미 정책 결정의 패러다임은 바뀌어 도시재생사업을 위한 상향식 의사결정 프로세스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10년 넘는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에 주민들이 주도가 되어 지역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시도되었다. ‘주민자치회’, ‘주민공모사업’, ‘시민숙의예산제’ 등 주민들의 의견이 제시되고 반영되는 과정을 통해 주민들은 내가 속해 있는 지역(거주지 또는 사업지)에서 진행되는 사업들을 직접 결정하고 운영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지역 사업의 주체가 되는 경험을 통해 또 한걸음 성장할 수 있었다.

주민자치회와 유관기관과의 상호 운영체계(춘천시)
주민자치회와 유관기관과의 상호 운영체계(춘천시)

또한 도시계획 관련 계획 및 사업의 추진 과정에서는 주민들이 참여하여 지역의 의제를 발굴하고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논의하였으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계획을 결정하고 사업의 우선순의를 논의하였다. 도시기본계획인 ‘2040 서울플랜’의 경우 시민기획단을 조직하여 계획의 수립과정에 참여토록 하였고, 대부분의 도시재생활성화지역에서 주민워크숍을 통해 계획 수립을 진행하고 있다. 사업시행 과정에서도 주민협의체 운영을 위한 내용을 논의하는 ‘운영위원회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으며, 주민들의 참여가 밀접하게 필요한 ‘주민공동이용시설’의 층별 용도, 운영방안 등을 논의하는 ‘공간기획 워크숍’을 통해 설계에 주민의견을 반영하고, 사업 시행 단계에서 주민들이 운영에 참여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러한 주민 주도, 지역 참여의 상향식 의사결정 구조방식에서 보완이 필요한 부분은 논의하고 합의하는 과정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고 계획수립에서 사업시행까지 적어도 3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에 따른 불만도 함께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과정에서 주민들은 의견을 제시하는 과정에만 참여하고 이후 사업의 실행 및 운영 과정에서 배제되며 주민참여 과정마저도 ‘해야 하니까 하게 되는 보여주기식 행사’로 운영되는 경우도 있어서 이후 실행 및 운영 과정에서는 주민들의 의견과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물론 주민과 합의한 내용은 전문가와 행정 내 관련부서 간 검토 과정에서 관련 법규, 실현 가능성, 사업비, 운영주체 등의 여러 검토를 거치며 조정될 수밖에 없지만 이에 대한 충분한 소통과 설명과정이 필요하며 일부의 시선에 따라 사업 목적이 바뀌지는 말아야 한다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하겠다.

도시계획 외 다양한 분야에서도 주민들의 의견을 통해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은 진행되고 있다. 오히려 계획 및 사업규모가 작은 소규모 사업분야에서 주민참여에 따른 성과가 잘 나타나고 있다. 지역환경개선을 위한 이슈 발굴 및 사업 시행, 어린이 놀이터 환경개선사업, 녹지조성사업 등에서도 이용주체인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실행하고 있으며, 화려한 사업성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주민들의 많은 관심과 애정 속에서 공간이 조성되고 활용되고 있다. 어린이 놀이터 환경개선사업, 녹지조성사업 등 소규모 사업에서 주민참여 성과가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이유는 계획의 수립 및 실행과정이 비교적 짧고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실행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계속 참여하며 관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겠다.

과거 주민들은 하향식 과정을 통해 공공이 진행하는 사업들의 결과를 받아드릴 수밖에 없었으나, 현재는 다양한 주민 참여 방법들을 통해 의견을 제시하고 실현될 수 있도록 이용자이자 운영 주체로써의 활동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앞으로는 주민들이 실행의 주체로써 의사 결정 및 집행과정에 참여를 통해 주민참여의 영역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며 이를 지원하고 실행하기 위한 공공과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주민참여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며, 단순 성과지향적 사업 추진방식에서 벗어나 주민과 함께 호흡하며 만들어갈 수 있는 내부 평가 방식과 사업 목표에 대한 재조정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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