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 Times] “할머니, 가지 말아요, 우리랑 같이 살아요!” 심장병 때문에 한 번도 마음껏 뛰어보지 못한 꼬마가 정신을 잃은 채 걸어가는 할머니에게 전력으로 달려가 앞을 가로막고 한 말이다. 뇌졸중으로 몸이 성치 않은 할머니가 창고에 낸 불로 힘들여 수확한 농작물들이 모두 다 재가 되었다. 허망하게 걸음을 옮기는 할머니와 길을 막아선 아이들, 뒤돌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휘적휘적 걸음을 옮기는 할머니의 모습이 감동적이다. 하지만 타버린 작물창고는 이혼에 직면한 부부가 다시 결합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제 아내와 남편은 손을 맞잡고 넓은 농장에 다시금 새 우물을 파고 농사일을 시작한다. 윤여정 배우의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비롯해 수많은 해외의 상을 수상한 ‘미나리(2020)’ 이야기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아버지가 어린 아들 데이빗과 함께 할머니가 심어놓은 미나리 밭에서 미나리를 수확 내는 장면이다. “할머니가 심어놓으신 미나리, 알아서 잘 자라네, 맛있겠다!” 정이삭 감독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자전적으로 펼쳐낸 이 영화의 배경은 미국 아칸소주의 시골, 1980년대이다. 영화 속 꼬마 데이빗이 바로 정이삭 감독의 어린 시절이다.

거듭되는 이민생활의 어려움과 어린 아들 데이빗의 심각한 심장병으로 불안과 불만에 가득 찬 아내, 시골에 내려와 한국채소를 심어 기반을 마련해 보겠다는 남편, 부부는 병아리 감별을 하며 열심히 일하지만 바퀴달린 컨테이너 집에서 태풍과 호우에 맞서 두려워하며 살아야하는 각박한 환경에서 다툼이 잦아진다. 부부는 남매를 보호하고 양육해 줄 외할머니를 한국에서 모셔오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지만, 아이들이 볼 때 할머니는 전혀 할머니답지 않다.

손자손녀에게 욕을 섞어 화투를 가르치고 오줌 싼 데이빗을 놀려먹고 요리도 할 줄 모른다. 아이들은 할머니답지 않은 한국할머니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아이들과 숲 속으로 들어가 미나리를 심는다. 미나리가 얼마나 좋은 식물인지 아냐며 자랑하는 할머니 앞에서 데이빗은 미나리 노래를 지어 흥얼흥얼 부른다. 하지만 이 ‘이상한’ 할머니는 데이빗에게 세상에서 최고의 ‘스트롱 보이’라고 용기를 주며, 심장병을 두려워하는 손자를 끌어안고 미나리노래를 불러 재워준다.

영화 ‘미나리’ 스틸 컷
영화 ‘미나리’ 스틸 컷
영화 ‘미나리’ 스틸 컷
영화 ‘미나리’ 스틸 컷
​영화 ‘미나리’ 스틸 컷​
​영화 ‘미나리’ 스틸 컷​

 

아이들과 할머니가 친해질 즈음 할머니는 갑자기 뇌졸중으로 마비 증세가 오고, 아버지의 농작물이 출하될 무렵 데이빗은 병원에서 병이 다 나아간다는 진단을 받는다. 하지만 힘겨운 시골생활에 염증을 느낀 엄마는 아빠와 헤어질 결심을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부부의 별리를 가로막은 것은 불구가 된 할머니가 낸 불이었다. 늦은 밤 아이들과 귀가하던 부부는 창고가 불타는 것을 보고 힘을 합쳐 작물들을 구해내려 애쓴다. 화재는 그들 마음의 앙금도 모두 태워버렸다.

미나리의 질긴 생명력처럼 그들은 다시 일어서 마음을 합해 농사를 시작한다. 아버지가 고생 끝에 일군 농작물들은 안타깝게도 모두 타버리고 없지만, 할머니가 축축한 땅에 뿌린 미나리는 쑥쑥 커갔다. 줄기 속이 빈 여러해살이 풀 미나리는 벌레와 질병에 저항력이 강하여 생명력이 끈질기며 물을 정화할 수 있다. 미

나리는 어디에나 넣어서 먹을 수 있는 한국요리의 허브이고 약으로도 쓰인다.

기름진 땅에서 한국작물을 키워 열매를 맺은 가장의 노력은 한 번의 실패를 보았다. 하지만 할머니와 그 땅에서 뛰놀며 미나리노래를 부르던 데이빗의 건강은 호전되었다. 넓고 좋은 대지는 미국이란 새로운 터전을 말하며 한국작물은 이 이민가족을 뜻한다. 농작물은 열심히 가꾸어야 하지만 미나리는 그냥 두어도 잘 자라주었다. 데이빗은 부모의 염려 속에서는 항상 불안하고 위축되었지만, ‘이상한’ 할머니와 함께 했을 때는 대담하고 자유로워졌다.

할머니는 아이의 습지였다. 굳이 트랙터로 갈지 않아도 지하수와 수돗물을 끌어대지 않아도 아이의 마음과 몸을 안온하게 해주는 축축한 땅이었다. 그 땅에서 아이는 미나리처럼 저절로 자랐다. 그리고 건강해졌다. 할머니가 데이빗과 함께 ‘원더풀! 미나리’를 연호할 때 바람이 불어 미나리가 흔들린다. 할머니는 말한다. “저거 봐라, 미나리가 고맙다고 인사를 하네.”

그렇게 잘 자란 미나리, 정이삭 감독은 코로나로 우울해진 세상 사람들에게 영화 ‘미나리(Minari)’로 말을 걸었다. 그리고 이제는 곁에 없는 할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할머니!” 미나리의 인사는 배우들의 진심어린 연기를 타고 지구촌을 한 바퀴 돌았다. 사람들의 각박한 삶에 훈훈한 정과 사랑을 선사했다. 그렇게 우리는 ‘원더풀! 미나리’에 빠져들었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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