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 Times] 널따란 플라타너스 푸른 잎이 바람을 타고 천천히 땅으로 떨어지는 장면이 잊혀 지지 않는 영화가 있다. 잎이 내려앉은 곳은 잎처럼 푸르른 젊은이들이 가득한 교정이었다. 바로 직전 장면에서는 잘생긴 청년이 스스로 세상을 하직하면서 부모와 연인과 이별한다. 그의 이른 죽음을 푸른 잎의 하강으로 묘사한 이 영화는 ‘미 비포 유 (Me before you, 2016)’이다. 안락사를 진지하게 다룬 이 영화는 소설 원작을 바탕으로 했기에 구도가 탄탄하고 감동도 크다.

이 작품은 여름처럼 파란 젊음을 누려야했던 주인공 윌이 갑작스런 사고로 목 아래 부분이 마비되어 결국엔 존엄한 죽음을 선택하는 이야기이다. 그의 곁에는 새로이 마음을 나누기 시작한 연인 클라크도 있었지만 그녀의 안타까운 만류를 뿌리치고 주인공은 삶을 마감한다. 푸르고 싱싱한 잎이 정원의 거름이 되듯 그의 선택은 ‘그녀’의 삶의 희망과 자원이 되어 준다. 부자였던 윌이 가족부양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클라크가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유산을 남긴 것이다.

영화의 마무리는 그녀를 응원하는 그의 편지로 끝난다. “당신은 내 심장 깊이 새겨져있어요, 클라크.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환하게 웃으며 걸어 들어온 처음 그날부터. 내 생각은 너무 자주 하지 말아요. 당신이 슬픔에 빠져 우는 건 싫거든요. 그냥 잘 살아요, 그냥 살아요. 당신의 걸음걸이마다 내가 함께 할게요. 사랑을 담아서, 윌”. 이제 당당하게 꿈을 펼치라고, 누구도 눈치 보지 말고 누구에게도 기죽지 말고 자신의 삶을 살라고, 그것이 내가 바라는 일이고 나의 삶과 죽음의 의미라고 말해주는 그의 진심은 흐느낌과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 사랑이 어떻게 죽음을 숭고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이 영화는 보여준다. 젊음과 죽음이 교차되면서 이 두 사람의 연인이 어떻게 성숙되어가는 가도 알려준다.

사람은 누구나 젊음을 선호하고 생명을 원한다. 봄의 신호를 받아 여기저기서 폭죽처럼 피어나는 꽃들은 진력을 다해 청춘을 구가한다. 꽃이 떨어지면 그 강렬함은 잎으로 옮아가고 잎들은 씨앗과 열매를 만들어 내기까지 쉬임 없이 일한다. 봄에서 여름은 꽃과 잎의 절정기이다. 그들의 생명력은 우리를 설레게 하고 우리를 치닫게 한다. 우리도 그들처럼 생을 만끽하고 발랄하게 움직이고 온 힘을 다해 살아간다.

낙엽은 가을에만 있는 게 아니다. 봄에서 여름까지도 곳곳에서 누렇게 변한 잎을 본다. 꽃이 떨어져야 씨앗이 자라나듯 황화되어 떨어지는 잎이 있어야 새 잎이 자라난다. 우리는 화사한 꽃이 좋고 푸르른 잎들이 좋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과 삶의 한 면 만을 보고 싶은 우리의 욕심이고 사치이다. 별리와 죽음은 삶의 필수적인 반대 부분이기 때문이다. 헤어짐이 없다면 만남도 없고 끝은 곧바로 시작인 것처럼.

요즘 우리 집 화분 안에서는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다. 얼마 전 까지만도 멀쩡했던 커다란 잎이 어느 날 갑자기 누레져서 들여다보니, 다른 쪽에서 아기의 꼭 쥔 주먹 같은 작은 잎이 두 개 돋아나고 있다. 한 쪽은 늙어가고 한 쪽은 막 태어나 쑥쑥 자라난다. 한 세대가 가고 한 세대가 오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하지만 종종 나는 내리막이 싫고 이별이 싫고 황화 되어가는 것이 마땅치 않다. 그것이 일이든 관계이든 건강이든 간에 항상 모든 것이 푸르고 푸르기를 바라고 원했다.

누군가 자신의 생을 양보한 그 곳에서 새로운 생명이 올라온다.
누군가 자신의 생을 양보한 그 곳에서 새로운 생명이 올라온다.

생명을 지닌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기준이 무엇일까? 변하는 것은 생명이고 변치 않는 것은 생명이 없는 것이다. 항상 푸르른 잎과 늘 아름다운 꽃은 생명이 없는 조화나 그림에서나 볼 수 있다. 생명의 속성이 선택이듯 우리도 항상 결정 앞에 놓여있다. 관계이든 일이든 시시각각 선택해야 한다. 우리 집 식물도 얼마 전 결단을 내린 것이다. 태양 에너지가 충분치 않은 환경에서 새로운 세대를 키우려고 앞선 세대가 떠나기로 한 것이다.

인간이 유산을 자녀에게 물려주듯 식물도 떠나는 잎이 새로운 잎에게 자원(필요한 원소)을 준다. 고지대의 힘든 환경에서 2~300년을 자란 가문비나무는 메마른 땅이라는 위기 탓에 아주 단단하게 자라난다. 하지만 이들은 생존을 위해 아래쪽 가지와 잎들을 모두 떨군다. 척박한 곳에서 햇빛을 머금을 수 있는 위 쪽 가지와 잎은 남겨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떨어진 가지는 본체인 나무의 거름이 되어줄 것이다. ‘미 비포 유’의 주인공은 나무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오기를 선택한 푸른 잎이었다.

안타까운 짧은 생이었지만 그는 행복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났다. 바로 그의 죽음으로 다른 생명, 사랑하는 이에게 새 희망을 줄 수 있었기에 그는 흐뭇했다. 잎이든 가지이든 인생이든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잘 사는 법과 잘 죽는 법을 배우는 게 생명의 임무이다. 살아있든 죽든 누군가의 그늘과 거름이 될 수만 있다면 삶과 죽음이 무슨 대수인가, 성공과 실패가 과연 성적표인가. 내가 다녀간 자취가 누군가에게 거름이 되고 희망이 된다면 인생은 살아볼 만하고 또 죽어볼 만하지 않은가!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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