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시대] 정원은 왜 즐거워야 할까
[조경시대] 정원은 왜 즐거워야 할까
  • 박원순 객원논설위원
  • 승인 2021.03.24
  • 호수 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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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
박원순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

[Landscape Times] 얼마 전 배철수의 음악 캠프에서 영화칼럼니스트와 대화 가운데 디제이 배철수는 좋은 영화에 대한 개인적인 판단 기준을 소탈하게 밝혔다. 얘기인즉슨, 아무리 의미 있고 중요한 내용의 영화라 할지라도 재미가 없으면 안 된다는 말이었다.

정원도 마찬가지다. 재미와 즐거움이 없는 정원은 아무리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하더라도 재미 없는 영화처럼 지루하고 무미건조할 수 있다. 정원은 인위적 공간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진지한 자연주의에 입각하여 자연을 있는 그대로 모방하려는 정원, 철저히 우리 것만 고집하여 지나치게 배타적이고 원칙주의적으로 경직된 정원, 그리고 너무 많은 것을 보여 주려 하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 정원들이 그런 분위기를 내기 십상이다. 정원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시대와 국가, 문화를 막론하고 인간이 만든 모든 정원의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들 가운데 하나는 바로 ‘즐거움’이었다.

사람들이 정원에서 얻고자 한 공통적인 즐거움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주변의 야생 환경으로부터 안전하게 위요된 공간이 주는 안락함이다. 바깥의 풍경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위험이나 온갖 돌발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면 즐거움을 누릴 마음의 여유 따위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본 요건이 충족된 다음, 즐거움의 정원에 필요한 것들은 다양한 식물들을 통해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요소들이다.

다양하게 맛보고 즐길 수 있는 이국적인 과일과 허브류의 맛과 향기는 미각과 후각의 기쁨을 자극한다. 크고 작은 나무와 관목들의 모양과 원근감, 혹은 멀리 산과 강, 바다가 보이는 탁 트인 배경의 전망이 주는 아름다움, 계절마다 피어나는 다채로운 빛깔의 꽃들은 눈을 즐겁게 해준다. 바람에 사각거리는 잎과 줄기들이 부딪치는 소리들, 그리고 실개천과 연못, 분수를 통해 끊임없이 흐르는 물소리는 영혼을 일깨운다.

보송보송하거나 매끄럽거나 한 온갖 식물들의 질감들, 그리고 정원의 기반을 이루는 돌과 자갈, 모래와 흙 등 다양한 토양 재료들에서 느낄 수 있는 촉감들은 우리가 잊고 지내던 원초적 감각을 되살린다.

무수히 많은 종류의 식물들은 저마다 고유한 의미와 상징, 역사와 이야기를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 뇌가 갈구하는 지적 욕구를 채울 방도는 무궁무진하다. 이러한 요소들이 바로 즐거움의 정원 설계에 꼭 포함되어야 할 핵심적인 사항들이다. 여기에 편안하게 정원을 감상할 수 있는 시설들, 가령 그늘진 정자와 퍼걸러, 가볍게 산책하며 정원을 탐험할 수 있는 산책로와 벤치, 각종 편의 시설과 장식물, 그리고 영감을 주는 창의적 예술작품들이 있다면 더욱더 즐거울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 같은 요소들이 충분하지 못하거나 균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정원일수록 즐거움이 덜하다. 특히 정원의 주소재인 식물들의 영향력을 간과하고 외형적 디자인에만 치중한 정원은 진정한 정원의 즐거움을 전해주기 어려울 것이다.

플레저 가든(pleasure garden) 또는 즐거움의 정원에 관한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이러한 정원은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가 생겨나기 훨씬 전에 사막의 오아시스, 신비의 섬 등 낙원(paradise)의 개념으로 등장했다.

기원전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이집트 시대 즐거움의 정원은 울타리로 둘러싸인 공간에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연못이 있고 그 주변으로 다양한 과일나무와 꽃들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기본적으로 정원은 풍요로움이 가득한 땅에 감사하며, 그로부터 소출을 얻고 휴식과 파티를 즐기는 공간이었다. 로마 시대에는 집집마다 가족 단위 즐거움의 정원이 만들어졌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외부 세계와 떨어져 위요된 공간에서 낭만을 즐기며 은둔의 즐거움에 몰입하기 위한 시골 정원들도 많았다.

왕족과 귀족들은 권력과 재력을 과시하고 대규모 연회를 개최하기 위한 정원들을 열심히 만들었다. 즐거움의 정원은 어려운 시대를 거치면서도 그 생명력을 이어갔다. 중세 시대 정원은 수도사들이 영적인 기쁨을 얻고 철학적 사색을 즐기는 장소였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즐거움의 정원이 절정을 이루었다.

온갖 화려한 초화류들이 대규모 문양 화단을 장식했고, 거기에 열대 식물과 다육 식물 등 세계 곳곳에서 온 식물들이 함께 어우러졌다. 혹자는 이렇게 원산지가 다른 식물군을 그저 색깔과 패턴을 위한 재료로써 마구 섞어 사용한 정원을 맹렬히 비판하기도 했지만, 그러한 정원 양식들은 널리 보편화되었고, 유리온실의 발달과 함께 다양한 식물들을 증식, 재배, 유통하는 산업도 크게 발달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식물 하나하나의 색깔과 질감을 살리고 다양한 식물들을 예술적으로 혼합하여 계절에 따라 자연스럽게 꽃들이 피고 지게 만든 코티지(cottage) 정원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일어난 미술 공예 운동과 함께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세기 중후반으로 넘어가면서 정원은 점점 공공의 영역으로 통합되고 개방되어 대중들에게 다양한 레크리에이션과 힐링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게 되었다.

“정원과 서재가 있다면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었다”는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의 말은 오늘날에도 (아직까지는) 유효하다. 공교롭게도 책과 정원은 모두 아날로그적이며, 우리는 실제로 보고 만지며 행간 속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아주 오래 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책이라는 물성(物性)이 주는 고유의 아날로그적 즐거움과 마찬가지로, 고대의 정원에서 찾을 수 있었던 즐거움은 오늘날 즐거움의 정원이 추구하는 이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빠르고 복잡하게 다변화하는 현대 사회, 특히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세상 속에서 정원의 역할과 기능은 더욱더 중요해지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정원은 위로가 되고 몸과 마음에 새로운 활력을 주는 공간이 되고 있다.

즐거움의 정원을 표방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챈티클리어 가든에는 다양한 테마와 다채로운 식물들로 풍성한 정원 전체에 걸쳐 재치와 위트가 번득인다. 19세기 영국의 풍자 소설 ‘뉴컴스(Newcomes)’에서 차용하여 정원의 이름이 된 수탉(chanticleer)을 모티브로 한 오브제를 비롯하여 정원 곳곳에 배치된 장식물과 설치물은 정원사들이 직접 디자인, 제작하여 어느 것 하나 평범하지 않은 품질로 재미와 영감을 준다.

계절마다, 그리고 해가 바뀔 때마다 관람객들은 이번엔 또 어떤 즐거움이 있을까 기대하며 수시로 정원을 찾는다. 우리에게도 이제 그러한 정원이 더 많이 필요하다. 그것은 만들어 놓고 방치하는 정원이 아니라 감각 있는 가드너들의 손길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식물들의 아름다움과 오감의 즐거움, 그리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영감이 창조될 수 있는 정원이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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