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민 내일학교 부설 민간정원 ‘위토피아가든’ 디자이너/우리내일스마트팜 대표
권지민 내일학교 부설 민간정원 ‘위토피아가든’
디자이너 겸 우리내일스마트팜 대표

[Landscape Times] 5년 전, 내일학교에 다닐 당시 전국의 식물원과 수목원을 방문하여 헤드가드너와 가든디자이너들을 만나 뵙고 인터뷰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다. 정원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만 가지고 서툴고 기본적인 질문을 했지만, 모든 분들이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 따듯한 마음과 바람을 아낌없이 내어 주었다. 그 때 그분들께서 공통적으로 하신 말씀이 있다. 한국은 정원과 ‘식물, 자연’을 중심으로 한 조경이라는 개념이 이제 막 생성되고 있는 나라이고, 해외에 비하면 후진국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가든’이 고깃집인 줄 알던 시대에 비해서는 훨씬 발전했지만 아직 현장에서 정원의 개념이 도입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하셨다. 그 모습에서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수많은 고충과 어려움이 느껴졌다.

수목원과 식물원의 가드너 ‘스승님’들께 배운 것을 바탕으로 정원도 만들어보고, 공모전에도 나가 상도 받아보면서 나는 어느새 정원이라는 세계에 완전히 몸을 담그게 되었다. 이미 100년쯤 앞서간 해외의 정원과 가든디자이너의 사례, 유명한 가든쇼, ‘철학이 담긴 작품이다’라고밖에 볼 수 없는 강렬하고 도전적인 작품들은 나에게 정원에 대해 설레는 마음과 꿈을 전했다. 나도 세상에 큰 물음과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정원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열망이 마음속에 자랐다.

그리고 2021년 현재. 경북 봉화에서 정원 전문 스타트업을 창업해 좌충우돌 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창업을 하게 된 이유는 정원산업을 바로 현장에서 경험하며 배워보고 싶은 열망이 컸고, 사업을 통해서 시도해볼 수 있는 영역이 무궁무진해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분들께서 진심으로 도와주셨기에 경험할 수 있었던 정원의 세계를 후배들과 함께 나누고, 후배들에게도 지속하게끔 하고 싶었다.

그중에 나는 온실에서 기른 다양한 정원식물 품종들을 활용하여 직접 정원을 디자인하고, 시공하는 일도 진행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정원의 세계와 이상, 내가 배워왔던 것과는 달리 조경업계는 생각했던 것만큼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오히려 충격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정원 디자인에 대해서 말하고, 다양한 초화류와 관목에 대해 설명하고, 그 소재들이 어우러졌을 때 정원을 거니는 사람에게 얼마나 감동을 줄 수 있는지 설명해도 잘 전달이 되지 않았다. 결국 몇 시간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1000평이 넘는 좋은 땅에 오로지 꽃잔디만 심어놓은 모습을 보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없는 세상에서 나는 ‘가든’이 고깃집이 아니라고 설명하는 10년 전 사람이었다.

물론 이것은 매우 극단적인 사례일 수 있다. 정원에 대해 처음 접해보지만 나에게 새로운 시도를 할 기회를 주시는 분도 있다. 특히 민간에서는 정원전문가 수준의 식견을 갖추고 있으면서 제대로 디자인한 정원을 조성하기를 바라시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국내에 조성되는 공원이나 조경의 90%는 국가나 지자체에서 조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에서 특별하게 관심을 갖고 추진하지 않는 한 대부분 이런 일이 일어난다. 설계와 공사가 따로 떨어져있고, 설계용역은 설계용역대로 적당한 초화 몇 종, 교·관목 몇 종을 써서 평면도를 그려낸다. 공사는 입찰이나 수의계약을 받아 나온 도면대로 공사를 진행한다. 시스템적으로 디자인이라는 요소가 고려가 되기 어려운 듯하다. 내가 당사자여도, ‘지피’ 3~5종으로 30분 안에 끝낼 설계를 하루, 이틀 혹은 일주일을 들여 경관을 분석하고, 이름도 어려운 초화류 몇 십 종을 사용해서 복잡하게 진행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내역 작업할 때도, 시공할 때도, 도면을 그릴 때도 전부 5배, 10배의 어려운 일이 된다. 정해진 예산에서 회사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일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정원전문가들의 가르침을 듣고 성장한 나의 입장에서는 과연 정원과 조경의 가치, 디자인이라는 요소를 어떻게 반영해야 할지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전국적으로 정원문화가 이제 막 태동하고 있다. 일반인들이 정원을 보는 눈도 높아졌다. 가든쇼를 통해 다양한 작가들이 배출되고 있는데 그 가치가 실제 시공 현장에서 적용되어 보급되기 어렵다면, 방법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현재 국내에서 조경과 정원을 바라보고 있는 일반적인 시각도 점검해보게 된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자연이 파괴되고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는 시점에서, 지금 이 시각에도 수없이 조성되고 있을 조경-정원공간들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걸까?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줘야 할까? 사람들의 삶과 어떻게 만나고, 융합되어 더 나은 삶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걸까?

나는 내일학교를 다니면서 독서와 토론, 다양한 인문학 수업을 통해 ‘정원’과 ‘조경’의 차이를 배웠다. 조경은 토지와 경관에 대한 전체적인 계획을 중심으로 그 공간을 꾸미기 위한 녹지 조성도 함께 고민하는 분야이고, 정원은 식물, 자연을 중심으로 인간이 함께하는 아름다운 공간을 만들어 내고자 고민하는 분야라는 것이다. 물론 조경을 할 때에도 식물과 자연을 고려하고, 정원을 만들 때에도 시설물이 중요하긴 하지만, 실제 현장이나 사전적 의미로는 전반적으로 이러한 경향을 띄고 있는 듯하다.

정원이 ‘자연을 만드는’ 분야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하는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비슷한 의미 같아도 전혀 다른 뜻이다. ‘자연을 만든다’는 자연을 나와는 연관이 없는 대상체로 본다는 뜻이지만, ‘자연과 함께’한다는 것은 자연을 더불어 아름답게 살아가야 할 동반자로 생각한다는 의미다. 사람이 만드는 모든 공간에서는 결국 디자인하고 만드는 사람의 생각과 철학, 가치관이 담기게 된다. 정원에서 이야기하는 ‘인간과 자연이 함께 하는 모습’ 역시 그 사람이 정의한 그 형태로 정원 속에서 드러날 것이다.

이미 역사 속에서 수많은 형태의 정원을 만들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발전해 온 정원선진국가 영국, 그 중에서도 가장 최신의 트렌드를 볼 수 있는 첼시플라워쇼에서 전 세계 최고의 정원-조경디자이너들이 ‘지속가능한 지구’를 정원의 주제로 고민하고, 디자인하는 것도 이와 같은 흐름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 인간이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정원과 조경을 통해 더 치열하게 고민하여 실제 현장에도 적용해 가고 싶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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