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인 서울시립대 대학원/석사과정
최정인 서울시립대 대학원/석사과정

조경학과에서 설계 수업은 필수 과목 중 하나이다. 학부 때부터 대학원 과정까지의 조경설계 수업은 매번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이 기간에 나는 성장하였고 조경이라는 분야와 가까워졌다. 일반적으로 조경공간을 생각하면 자연환경이 주된 요소로 구성되고 수목이 가득한 공간이 떠오르는 것처럼 학교 수업에서도 정원, 공원설계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조경설계의 주된 대상지는 공원, 아파트 단지, 광장처럼 비우는 것이 주된 속성인 공간이다. 그러나 설계 스튜디오 수업을 수강하면서 자주 갖는 강박관념은 공간을 채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간이 비어있으면 미완성되었다는 느낌 때문에 비워두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계획 과정에서 넓은 빈 공간이 발생하면 공간을 분할하고 그 주변부에 식재 등의 방식으로 채우는 과정을 통해 공간을 만들어왔다. 어느 저명한 조경설계가의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으로 채우려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요소들을 지워나가는 과정’이라는 말처럼, 빈 공간에 대한 강박관념으로부터 조금씩이나마 자유로워질 수 있기를 바라본다.

식재설계는 조경설계과정에서 고려되어야 하는 필수 요소이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정립하기는 어렵다. 수목과 초화류는 환경과 시간의 영향으로 인해 형태와 성질이 변하기 때문에 이를 통합적으로 고려한 디자인은 학생인 필자에게 매우 어렵다. 이 때문에 학습을 통해 얻은 수목에 대한 지식을 설계 대상지에 적용해야 하는 순간에는 결국 기존 설계안과 같은 선례나 경험에 의존하여 정보를 얻게 된다. 결론적으로 제한된 시간에 공간부터 식재 디자인까지 하다 보면 대상지에 특화되지 못한 차별성 없는 디자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반드시 식재를 통해서만 조경이 차별성을 갖출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식재에 대한 유연한 사고도 필요하지만 조경 설계가가 사용할 수 있는 도구는 다양하다. 예로 TOPOTEK이나 아드리안 구즈(Adriaan Geuze)의 작품들을 들 수 있다. 이들이 식재 없이 포장이나 다른 요소를 활용하여 회화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수목을 식재하지 않고도 공간의 정체성과 역할을 더 잘 살릴 수 있다. 수목으로 연출할 수 있는 경관도 있지만, 수목을 식재하지 않음으로써 공간의 정체성과 역할을 잘 살릴 수도 있다.

조경은 도시, 건축 뿐 아니라 인문사회 분야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조경설계의 영역은 하천·가로·해안 등과 같은 도시기반시설과 연계된 공간, 도시재생, 자연재해 예방 및 회복, 기후변화, 전염병 예방, 고령화 및 고독사 등의 사회문제 해결 등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 설계 수업도 조경학과 단독으로 하던 수업에서 점차 도시·건축·사회 관련 학과와 연계해서 진행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조경을 종종 ‘종합 예술 과학’이라고 정의하지만,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접근의 잠재력과 단점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설계가로서 다루는 영역과 요인들이 점차 복잡하고 다양해지는 만큼, 조경설계가의 역할과 갖추어야 할 역량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고민은 이번 학기에 도시에 관한 지식이 수반되어야 하는 설계 스튜디오 수업에 참여하면서 더욱 가깝게 와닿았다.

실제 공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도시, 건축, 조경 관련 분야의 협업이 이루어진다. 이 때문인지 도시 분야와 함께하는 설계 수업에서 설계안을 도출해내는 과정의 시작점은 건축물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조경학도의 입장에서 접근성, 맥락, 토지와 건축물의 세부 구성요소들을 파악하다 보면 관련 전문 지식의 부재로 인한 어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일례로 토지 지목과 용도에 따라 도입 가능한 시설, 허용되는 행위에 대한 부족한 이해로 인해 계획한 프로그램의 현실화가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이로 인해 조경설계 안을 도출하고 도시 분야와 함께 대상지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연접한 도시의 사회·제도·공간적 맥락과 충돌되거나 제한되는 부분이 종종 발생했다. 그러나 이런 경우 어떻게 판단하고 대처해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많았다. 도로를 비롯한 도시의 구성요소까지 살피려니 관련 지식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자신감이 떨어지고 기존에 배워온 조경의 영역이 아닌 것 같은 의구심도 들었다. 계획안이 현실화되는 과정에는 법과 정책에 부합하는지가 중요한데, 대학 진학 이래로 지금까지 이런 부분에 대한 교육과 개인적인 학습이 없었던 터라 더욱 대처가 어렵기도 했다. 조경설계안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대상지 내외의 여건을 최대한 고려했다고 생각했지만, 도시 관련법과 제도, 지역 여건 등과의 적합성을 살펴보는 부분이 미흡했던 것이다.

학교 조경설계 수업에서는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변수에 대한 고려 없이 디자인 자체만 고민하고 설계를 마무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무리 많은 고민을 통해 만들었다고 해도, 도시의 전반적인 현실이 반영되지 못한 필자의 디자인은 결국 상상 속 그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좋은 설계, 좋은 디자인에 대한 견해는 다양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향후 만들어진 공간의 이용자들에게 편리하고 만족감을 주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일 것이다. 그러므로 자연적인 요소가 주가 되는 조경설계일지라도, 조경공간이 놓일 도시라는 공간과 사람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 되는 계획이 필요하다. ‘종합 예술 과학’이라는 정의처럼 조경은 넓은 분야를 다룬다. 도시분야와 함께 설계를 하다 보니 조경설계 교육 또한 대상지 내부와 식물, 시설물 중심에서 나아가 도시 및 건축, 인문분야 등 제반 학문에 대한 이해도 강화할 필요성이 있음을 느꼈다. 근본적으로 조경은 경관을 만드는 행위를 총칭하며 인간과 관계있는 공간과 관련 있는 물리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조경학도로서 생명과 자연을 다루는 학문을 배운다는 자부심을 가져왔다. 조경이 도시문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 갈수록 중요성과 가치도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변화하는 사회와 환경에 대응할 수 있도록 조경의 입지를 굳건히 하고 조경가의 역할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준비를 시작해야 할 때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경설계가를 꿈꾸는 조경학도로서 넓은 시야와 관련 분야에 대한 적확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교육의 기회가 더욱 많아지기를, 더욱 체계적으로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언젠가 조경설계가로 성장한 내가 설계한 공간을 이용하는 누군가가 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꿈꿔본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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