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인 서울시립대 대학원/석사과정
최정인 서울시립대 대학원/석사과정

대학원 조경학과에서 설계 수업을 들으며 좋은 경관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종종 하게 된다. 좋은 경관과 좋지 않은 경관으로 분류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자연친화적이고 자연과의 조화로움이 느껴지면 우수한 경관이고 인공적인 속성이 강하거나 자연의 색채가 상실되어 보이면 경관성이 낮다고 여겨진다. 일부에서는 고도로 진행된 도시화로 고층 건물로 빽빽해진 도시 모습을 비판하며 한탄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간의 삶과 편의 위주로의 건물과 도로로 구성된 도시의 경관은 전원에 비해 낮게 평가되기도 한다.

필자가 살고 있는 ‘서울’을 떠올려보자. 꽉 막힌 10차선 이상의 광활한 도로와 하늘에 닿을 것만 같은 마천루가 떠오른다. 밤에는 어둠 사이로 뚫고 나오는 도시의 불빛들이 연상된다. 이처럼 서울의 다양한 풍경 가운데 녹색이 뚜렷하게 보이는 장면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서울에도 살아있는 자연이 많고 생태성이 높은 장소 또한 많다. 서울시 지도를 펼쳐보면 곳곳에 산이 있으며 북한산처럼 여러 지역구에 걸쳐 있는 큰 규모의 산자락들도 여럿이다. 멀리서 서울을 바라보면, 한강의 푸르름과 도시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경들은 서울의 경관에 생명력을 더해주며 풍성한 느낌을 준다.

또한 도보권 내에 녹지가 상당 부분 존재하기 때문에 서울도 바이오필릭 시티가 될 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으며 지속가능한 미래도시의 조건을 갖추었다고도 볼 수 있다. 바이오필릭 시티(Biophilic City)라고 하는 것은 바이오필리아(biophila) 이론을 기반으로 한 도시 계획적 개념으로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연환경 가운데에 있을 때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다'는 믿음이 배경이 된다. 이를 통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에 자연을 가져오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는 개념이다.

이처럼 도시라고 해서 무조건 자연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나 입장을 취하고 있지는 않으며, 회색 빛깔로만 구성되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대규모 첨단 도시라고 할지라도 도시라는 큰 틀 속에서 군데군데에 녹색이 들어가 있다. 서울만 살펴봐도 복잡한 도시 구조물 사이에 자연 요소가 조화롭게 녹아 있다. 어쩌면 서울이 연출해내는 경관이 가장 다채로울 수도 있다. 또한 현재 서울이 대도시로서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데에는 단순한 삶의 편리성 그 이상의 것이 존재한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그 이상의 것은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의 오묘한 조화가 만들어내는 경관이지 않을까? 자연의 힘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으며 자연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가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의 필요성에 대한 경각심이 점차 확대됨에 따라 녹색 도시 조성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애초에 자연을 다루는 것을 비롯하여 자연과 관련된 모든 영역은 조경의 것이라고 여겨져 왔다. 또한 자연은 생명이 있기에 조경은 생명을 매개체로 하는 종합 과학 예술 학문이라는 점을 상당한 기간 동안 가장 큰 무기로 내세워왔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자연에 대한 이해가 왜곡됨에 따라 우리가 내세우는 차별성을 이루는 자연은 ‘순수한 자연’이나 원시성을 유지하고 있는 ‘신비스러운 자연’으로 통용되는 경우가 많다(『조·경·관』중에서). ‘조경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의 센트럴파크가 상업화와 공업화로 인해 점점 활력을 잃어가는 인공 환경과 대비되는 전원의 이상을 계획한 것에서 비롯된 개념이 지금껏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해석된다.

우리는 자연이 가진 순수한 생태성과 생명력을 다루는 분야는 조경이 유일하다는 자부심에 취해서 지금껏 안주하고 지내온 것은 아닐까? 다양한 변화를 겪고 있는 현시점에서 다시 한 번 조경의 정의와 역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조경’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그 분야의 범위는 고민할수록 규정하기 어렵다. 흔히 조경이 무엇이고 어떤 분야인가라고 했을 때 ‘생태, 정원, 자연, 나무’가 무의식중에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러한 관점에서 ‘조경’은 ‘나무 심는 분야’ 혹은 정원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분야로 규정할 수 있다. 조경을 아주 조금 공부하고 나서 동일한 질문을 받는다면 사람과 관련된 공간 및 서비스와 시스템을 계획하고 조성하는 행위라고 정의하거나 경관을 조성하는 일을 총칭한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경관과 조경의 영역은 어떻게 구분될까? 경관이란 눈으로 인식되는 각각의 장면이다. 눈에 비치는 장면이라는 결과물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통 눈에 보이는 경관-결과 자체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며,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는 고려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렇다면 과연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모습만을 질 좋고 우수한 경관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우수한 경관과 질 낮은 경관을 분류하는 기준을 정의할 수는 없다. 경관은 자연과 인간이 구성한다고 판단할 수 있으며 자연과 인간은 모두 생명력을 가지며 그에 따라 경관도 시시각각으로 변하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따라서 각 경관이 나타나기까지 겪는 과정 없이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다양한 모습들을 그 모습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이다. 경관도 사람과 자연으로 이루어지며 각 대상과의 상호작용의 결과물이고 과정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관이 형성되는 과정을 조경이라고 정의하면, 조경을 정의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합리적인 절충안이 도출되지 않을까? 조경이라는 행위의 결과가 경관이라고 보면 경관에 영향을 주는 모든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즉, 사람의 영향을 받고 또한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모든 행동을 조경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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