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 Times 이수정 기자] 비탈면 녹화용 식물로 흔히 보이는 감국, 패랭이, 산국, 구절초는 이름만 들으면 우리나라 자색식물과 동일한 것으로 오인하기 쉽지만 알고 보면 유전자가 전혀 다른 외래식물인 경우가 많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따르면, 이들 식물들은 국내 자생종과 같은 종이라도 유전적으로 다르며, 특히 자생종과 교잡하면서 유전적 교란을 일으킨다.

생물자원에 대한 국가의 권리를 보호하고 유전자원의 공정한 배분을 위해 2014년 발효된 나고야의정서에 따라 국가자산으로서 유전자원 수집과 확보는 이제 시급한 과제가 됐다.

강기호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백두대간보전부장은 “울릉도 특산식물인 섬벚나무 근처에 왕벚나무를 심었는데 꽃이 피는 시기가 같아 교잡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섬벚나무의 유전자가 오염될 수 있다”고 걱정을 내비쳤다.

고도와 기후대가 유사한 지역 또는 산림복원 대상지 주변 지역에서 수집 및 생산하도록 규정한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2019년)에 이어 올해 9월부터 「산림복원용 자생식물 및 자연재료의 공급 등에 관한 고시」가 시행되면서 산림복원을 위한 자생식물 활용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이로써 훼손지 복원에 사용될 자생식물의 기초조사부터 수집, 증식, 공급체계까지 효율적인 산림복원사업이 추진될 전망이다.

백두대간 생태축 보전 및 산림복원 연구기반을 구축해온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지난해 산림청으로부터 ‘산림복원지원센터’와 ‘산림복원지 사후 모니터링 기관’으로 지정, 백두대간 산림복원을 위한 지정기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올해 백두대간보전부가 신설되면서 부에 소속된 백두대간산림복원지원실은 산림복원지원센터의 산림복원지원센터의 핵심 업무를 담당하며 백두대간 생태축을 비롯해 해안, 도서, DMZ(비무장지대) 등 훼손지에 대한 체계적인 산림복원 사업에 본격 착수하게 된다.

생태계 교란·수입종자 맞서 자생식물 기초정보 수집 나서

자연모델 ‘시드 믹스처’로 자생식물 생산체계 가능

몇 년 사이 산림청, 해양수산부, 환경부 등 부처별 복원 예산이 증가했지만 그동안 산림생태계에 대한 체계적인 복원사업은 늦은 감이 있다.

생태계나 유전자원에 대한 기초조사 없이 진행되는 산림복원사업은 오히려 생태계를 교란할 확률이 높다. 강기호 부장(백두대간산림복원 실장 겸임)은 “복원은 이벤트가 아니다. 선진국에서는 복원하는 데 20년에서 50년 걸린다. 복원은 원래대로 돌린다는 뜻인데 우리나라 산림 대부분이 2차림이다. 한 번 이상 파괴된 곳이다. 원시림이 없다. 그래서 복원모델을 찾기 힘들다. 복원의 원형을 어디로 볼 것인가가 문제다. 예를 들면, 구상나무를 복원한다고 한라산의 구상나무를 지리산에 심지만 같은 구상나무라도 전혀 다른 유전자다. 구상나무가 어떻게 분포됐는지 연구하려면 유전자를 분석해야하는데 섞여버리면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백두대간산림복원지원실은 훼손지 현지조사와 진단, 모니터링, 기후변화와 환경조건을 반영한 복원계획을 수립, 이를 통해 생태계 환경이 비슷한 주변지역 참조생태계 조사를 통해 복원모델을 구축할 예정이다. 내년부터는 복원에 활용할 전국단위 야생종자 수집 및 연구, 대량증식방안 연구 등을 주요 사업으로 추진하면서 산림생태복원을 위한 자생식물 공급체계 구축에 나선다.

그동안 재배작물의 경우 농촌진흥청에서 꾸준히 토종종자 수집을 진행해왔지만 산림 분야에서는 예산이나 인력부족 등의 문제로 종자 수집에 어려움을 겪었다. 더구나 자생식물 종자 자료가 전무하다시피 해 복원식물에 대한 기초정보 수집도 시급한 단계다.

백두대간산림복원지원실은 사방공사나 훼손지 복원에 거의 외국수종이 심기는 상황에서 최대한 외래식물의 수요를 줄이고 자생식물로 복원하자는 취지에서 자생식물 목록을 만들어 수집할 계획이다.

수입종을 대체할 복원용 자생식물 종자는 94종을 목표로 수집하며, 식생 천이단계를 고려해 향후 보완할 예정이다. 또한, 해당종의 자생지나 수목원에서 전국단위로 수집한 식물을 이력 관리하게 된다.

백두대간산림복원지원실은 자생식물의 공급확대를 위해 복원용 ‘시드 믹스처(Seed Mixture)’ 개발 계획을 갖고 있다. ‘시드 믹스처’란 씨앗이 심기는 지역의 생태와 경관에 적합한 자연모델로서, 지역적 특수성을 고려한 복원용 자생종자의 조합이다. 현장조사 결과에 기초해 단계별 후보종을 선발, 수집하고 실험 및 현장적용연구를 거쳐 복원에 활용할 예정이다.

이처럼 수집된 종자는 이력관리 등에 최적화된 공·사립수목원에 1차로, 전문 양묘업체에 2차로 공급돼 대량생산될 예정이다.

또한, 지역 야생화 축제나 경관농업을 비롯해 관광활성화, 산업화 소재 확보, 생태공원 조성에 활용될 전망이다.

한반도 기후·지형 고려 ‘시드 트랜스퍼 존’ 개념 도입

종자수집부터 발아특성 연구 병행 “생태계 살리는 산림복원”

고속도로 생태통로 등 ‘복원’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녹색공사’ 혹은 불법으로 훼손된 산림 조림이나 사방공사 시 주변 산림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인간 위주의 복구”였다면 앞으로의 ‘산림복원’은 체계적인 기후대, 습도, 토양상태 등 지형과 환경적 특징을 기준으로 복원용 종자 서식지 구역을 규정하는 ‘시드 트랜스퍼 존(Seed Transfer Zone)’ 개념을 통해 과학적으로 진행된다.

우리나라는 식생지리학적으로 남부해안지방과 제주도는 난온대 산림이며 나머지 지역은 냉온대 낙엽활엽수림대에 해당한다. 지형적으로는 경동성 산지지형으로 동쪽은 해안형, 서쪽은 내륙성 기후, 백두대간과 같은 높은 산지지형이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등 복잡한 지형 가운데 다양한 식생으로 구성돼 있지만 기후나 환경 등이 고려되지 않은 채 조림돼 복원수종의 종자 공급이 시급한 실정이다.

‘시드 트랜스퍼 존’은 산림복원지의 생태적 건강성을 확보하기 위한 복원용 자생식물 종자의 이동 제한 구역을 지정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동향은 미국, 일본, 유럽 등지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다. 복원용 식물 종의 환경조건, 발아생태, 유전다양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잠재적 종자 이동제한 구역을 설정하며, 이를 시드 트랜스퍼 존으로 명시하고 있다. 특히 훼손지 복구 및 복원을 위해 수입되는 식물을 대체하기 위해 산림복원용 자생식물을 대상으로 시드 트랜스퍼 존을 설정함으로써 산림생태계의 구조와 기능을 되살리는 복원의 기반 구축과 종자 산업의 새로운 방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백두대간보전부 백두대간산림복원지원실 직원들

“올바른 산림복원” 위해 자문, 교육활동도 강화

지속적인 모니터링은 과제

강 부장은 “산불이 나도 이제 복구하기 위해 단순히 나무를 조림하는 게 아니라 복원 개념으로 가야 한다. 동계올림픽 개최로 훼손된 가리왕산도 마찬가지다. 훼손된 토양은 기본적으로 안정화해야 하지만 그 뒤에는 복원의 틀로 접근해 시간을 갖고 해나가야 주변 환경과 이질적이지 않게 된다. 일부 지자체는 성급하게 단풍나무, 소나무 심어버리는데 결국 죽게 되고 주변과도 어우러질 수 없다. 자연적으로 안정이 되고 주변과 어우러질 수 있도록 시간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며 “복원은 공사가 아니다. 법에서도 10년 이상 모니터하도록 규정했듯 사전계획단계부터 사후 모니터링 단계별로 계획을 갖고 철저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지자체가 복원을 의자 설치하고 편의시설 놓고 조경공사 하듯 흉내만 낸다. (산림복원용 자생식물 및 자연재료의 공급 등에 관한 고시에서) 자생식물과 자연 소재를 활용해야 한다고 하니 법 활용은 하되 제대로 시행은 안 한다”고 지속적인 모니터링 활동과 아울러 향후 산림복원을 위한 교육활동도 이어질 것이라 전했다.

자생식물을 활용한 훼손지 산림복원은 궁극적으로 건설과 토목 등 인간이 차단한 생물들의 생태통로를 열어줌으로써 온전한 생태계 실현과 맞닿아 있다. 끝으로, 강 부장은 “자생식물은 곤충하고도 밀접하게 관련된다. 원예종이 많으면 곤충이 먹을 것이 없어진다. 곤충이 지구상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양봉으로 도시 생태계를 되살리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자연은 단순히 녹지개념이 아니라 생태계다”며, “에코시티하면 녹지면적만 얘기하는데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생태적인 질을 말하려면 반드시 생태계 연결고리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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