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br>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Landscape Times] 마지막 달력의 시기, 12월이다. 어쩐지 허전해도 거리의 나무들을 보면 그렇구나, 하는 마음이 든다. 나무들에게는 이제 이별의 순간도 지나갔다. 발밑에서 수다 떨던 잎들도 모두 자기 길을 찾아 떠났다. 혼자 남은 나무는 본연의 시간을 헤아린다. 바람과 별과 눈, 가끔 놀러올 새들과 지내는 때가 되었다. 홀로 있어야 하는 계절, 외롭지만 휴식의 기간일 수 있다. 버리고 비우지 않으면 갖지 못할 나날이다. 

이때를 위해서 식물은 분주하게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평온하게 쉴 수 있다. 가을 낙엽의 세포자살은 수분과 관련이 깊다. 물을 품고 있으면 얼어 죽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안전한 겨울을 위해 나무는 잎과 열매를 버리고 혼자가 된다. 하지만 나무들은 평소에도 버리고 비우기를 아주 잘한다. 뿌리가 왕성하게 끌어 모은 물들을 3% 정도만 남고 97%는 증발시킨다. 

이게 무슨 비효율인가 싶지만 물을 밖으로 내보내는 과정은 알찬 결과를 준다. 이산화탄소의 흡수를 촉진해서 광합성을 용이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물은 흡수한 물의 거의 대부분을 버린다. 덕분에 햇볕이 쨍한 여름날 숲은 시원하다. 나머지 3%는 가지고 있다가 대사에 사용하거나 필요에 따라 활용한다. 버리고 비우는 일이 자연스럽다. 식물은 자신의 기관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므로 무엇이든 그 안에 꽉꽉 눌러 채우지 않는다. 

동화물질이 체내에 축적되면 더 이상의 양분을 생산하지 않는다. 포도의 경우 이파리 내부에 탄수화물이 (건물의) 17~25%가 되면 광합성 작용을 완전 정지한다.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느껴 자신의 생산능력을 잠시 중지하는 셈이다. 무한히 원하고 채우는 인간과 다르다. 식물은 분해 또한 잘한다. 한정된 공간에 많은 것들이 적체되어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열조직이 성숙조직으로 분화되기도 하고 성숙조직이 분열조직으로 탈분화하기도 한다. 

분화는 유전적으로 동일한 세포가 서로 다른 형태학적이고 생리학적인 기능을 갖게 되는 것이고, 탈분화는 성숙한 세포들이 분열조직 상태로 되돌아가 그들의 유전자 정보를 진행시켜서 다시금 분화를 준비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분열조직과 성숙조직이 순환할 수 있다. 이런 재주를 가진 식물에게 ‘노화’를 낙인찍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이고 인간의 색안경의 투사이다. 이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는 ‘저절로 그러한’ 자연일 뿐이다. 

미련없이 버리고 비우는 것도 현명함이다

겨울나무가 저절로 자연스레 잎을 모두 버린 것을 보면 노자가 말한 ‘마음 비우기(虛心)’가 생각난다. 노자는 우리 마음의 본연은 ‘비어있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마음이 텅 비면 외롭고 쓸쓸하기에 우리는 가급적 마음을 비우지 않으려 애쓴다. 오히려 마음을 많은 것으로 채운다. 열정, 걱정, 욕망, 꿈, 소원, 사랑, 우정 등 마음을 채울 것들은 세상에 널렸다. 그런데 마음을 채운 소재들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내 마음을 갖가지 것들로 채우고 나면 문제가 생긴다. 

작은 마음이 정체되어 순환이 일어나질 않는다. 마음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누구’인가를 비추거나 넣거나 할 수가 없다. 이것을 간파한 사람이 노자이다. 노자가 말한 ‘성인(聖人)’이 억지로 꾸며서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은, 성인이 자신의 마음에 욕망, 꿈, 사랑 등 무엇인가로 꽉 채워서 순환과 대사가 힘들어지지 않도록 조치했다는 것이다. 즉 성인이 마음을 비운 것이다. 성인은 식물이 뿌리로 물을 흡수하듯이 세상만사로 마음을 채울 능력을 가졌지만 대부분의 자원들을 버리고 비운다. 

성인은 식물처럼 분열조직과 성숙조직이 순환하는 분화와 탈분화를 자유자재로 할 수도 있다. 비우고 버린 성인의 마음은 백성이 지닌 본연의 마음과 하나로 통할 수 있다. 나무와 식물들이 자연의 시기를 좇아 많은 것을 버림으로써 자연과 하나로 돌아가듯이, 성인도 욕망과 지식을 비워서 백성의 자연스러운 마음과 만난다. 우리의 삶의 모습은 식물과 닮았고 닮아야 한다. 겨울은 노화와 죽음의 시기가 아니다. 버리고 비우는 순환을 배우는 때이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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