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환 부산대 교수
홍석환 부산대 교수

[Landscape Times] 우리 사회는 상생과는 거리가 먼, 극단의 이기로 인한 대립이 주류로 자리하고 있으며 그 정점에는 늘 막대한 자본이 군림하고 있다. 사익과 공익이 대립하면 열에 아홉은 자본을 뒤에 업은 사익이 이기는 구조로 고착화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소외된 분야는 관심이 없기에 분식할 필요도 없이 불균형을 드러내놓고 키우며, 이런 사회문제에 앞장서 변화를 외치는 소수의 몸부림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 또한 극소수에 불과하다. 과연 내 일이 아닌 불구경에 불과할까?

우리나라 사회는 개발중심주의, 돈 중심주의를 추구하는 동안 비약적 성과를 거뒀다. 전 세계 경제 순위를 수능등급으로 치자면 최고수준인 1등급을 받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못살겠다며 돈을 더 벌기 위해 환경은 더욱 파괴돼도 좋다는 인식이 강해져만 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자본을 옹호하는 대표적 국가로서, 기업에 우호적인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기업환경순위가 2014년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 4위와 5위를 오가고 있다. 반면 김용균으로 대표되는 사회 소외계층, 즉 굳이 순위를 따지지 않는 개인 삶의 환경은 그 끝이 어디인지 꼭 확인해볼 요량인 집단처럼 최악의 나락으로 치닫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돈이 많은 국가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올해 우리나라 국민이 ‘행복’하다 느끼는 수준은 전 세계 61위였고, 자신의 ‘삶에 대한 자유’의 정도는 자유민주주의국가라 부르기에도 무색할 정도의 수준인 140위에 불과했다. 국가를 평가하는 이 몇 가지 숫자를 조합하면 우리나라는 ‘특정 소수가 차지할 거대한 부를 만들어내기 위해 절대다수 개인에 대한 삶의 자유와 행복을 억압하는 국가’로 정리할 수 있다. 국가가 절대다수 국민의 ‘행복’추구보다 극소수의 ‘부’를 몰아주기 위한 장치로 전락한 수준이다. 헌법 1조 1항을 ‘대한민국은 자본공화국이다’로 바꿔야 할 수준 아닐까?

자연의 공익적 기능, 조경이 추구하고자 하는 ‘모두가 건강한 환경’이라는 측면은 이 일그러진 저울의 관계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최근 불거지는 부동산문제 해결을 위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기반인 자연은 그저 값싸게 훼손하여 비싼 부동산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아파트 부지로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정부에서 ‘환경의 공익’을 지키려는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공원부지에 아파트를 짓는 황당한 상황도 이미 현실이 되지 않았나. 이런 상황이니 우리나라가 돈으로는 이미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들어서 있지만, 선진국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지구 전체 생명들의 삶을 위협하는 소위 ‘기후악당’국가로 불리는 것이다. 부를 축적한 극소수 사람들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이 반드시 가져야 할 ‘공공선을 위한 희생정신’ 즉,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증발된 사회이다 보니 악당국가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서는 외부의 비판자도 없으니 이런 악당들이 오히려 존경받는 대상이 되는, 자정능력을 상실한 사회가 고착화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악당들은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소위 ‘교양 없음’으로 치부하며 무시한다.

전 세계적 흐름과 맞물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환경관련 이슈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은 단연 기후변화이다. 모든 환경문제의 근원이 되는 이슈이기에 핵심적으로 다루어야 마땅한 주제이긴 하지만 이 흐름의 중심에는 가장 중요한 ‘그래서, 어떻게?’라는 지역적 행동을 만들어갈 구체적 액션플랜이 부각되지 않고 있다. 너무나 많은 지역적 환경문제를 이야기하기엔 버거운 사회에서 고육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지만 게임을 바꿀 요소로는 너무나 피상적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액션플랜은? 예일대가 매년 발표하는 환경성과지수 항목 중 ‘녹지면적 감소(Tree cover loss)’부문에서 우리나라는 168개 평가국 중 81위에 그쳤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국가가 아님에도 이런 결과를 보인 것이다. 올 여름 시행된 도시공원일몰제가 언뜻 생각나지만 이런 문제가 아님을 느낌으로도 알 수 있다. 공원이 차지하는 비율이 국토면적에서 미미한 수준이니 말이다.

대한민국에서 국토의 개발은 아직도 자본의 관점에서 돈을 불릴 수 있는 가장 쉬운 수단이기 때문에, 자본이 잠식한 상황에서 토지의 난개발은 인구가 줄어드는 시점에서도 멈출 줄 모르고 질주하고 있다. 환경의 공익적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환경영향평가제도는 그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전락해 있으며, 친환경 계획이라 하는 환경계획 분야는 한 세대가 지났음에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급격하게 자연환경이 훼손되는 상황이 지속됨에도 조경은 그 작디작은 개발지 내 녹지를 조성하면서 ‘친환경’과 ‘공공복리’를 위한다는 자위만으로 만족하고 있는 듯싶다. 소위 교양 있는, 품위 있는 아름다움을 논하기 이전에 국민 전체에 미치는 생태계서비스 가치의 추락을 막을 방법부터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자연 개발의 면죄부를 주는 환경영향평가의 심각한 문제들, 산으로 간 4대강 사업인 산악관광개발 관련 사업들, 태양광과 풍력으로 친환경 발전을 내세운 거대 산림녹지의 파괴, 대통령 공약으로 그친 자연훼손총량제, 그린뉴딜을 빙자한 추가적인 자연파괴 등 산적한 환경문제에 공익을 위한 목소리를 내야만 한다.

광적인 개발중심주의가 지속되어야 조경의 미래 먹거리가 유지될 것이라는 착각은 이제 버려야만 한다. 품위 있는 공원의 아름다움을 논하기 전에, 지금도 그 공원의 수십, 수백 배 넓은 면적으로 훼손되는 자연을 위해 잘난 교양을 내려놓고 액션플랜을 주장해야 할 때이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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