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br>
고정희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Landscape Times] 한국에서 태어났으나 초등학교 때 미국에 이민 갔다가 거기서 독일 남편을 만나 지금 베를린에 와서 사는 친구가 있다. 한국말이 무척 서툴지만, 어떻게든 한국말을 하려 애쓰는, 그 노력이 매우 가상한 친구이다. 그러다 가끔 기발한 표현을 만들어 내어 좌중을 웃게 만든다.

며칠 전, 함께 어딜 가던 중에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지나게 되었다. 친구가 문득 이렇게 말했다. “은행나무가 멋지긴 한데 가로수로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어째서 그러냐고 물었더니 “가로수는 엠…. 그걸 뭐라고 하지? 아 그러니까 숱이 많은 나무가 더 좋아.” 했다. 숱이 많은 나무? 하하하 웃다가 생각해 보니 그럴듯했다.

은행나무는 수형이 원뿔꼴인 데다가 자유분방하고 성겨서 가로수로 제격은 아니다. 워낙 운치 있는 나무이기에 간혹 가로수로 심기도 했으나 적정성을 인정받지 못한 까닭에 베를린 전역에 고작 6백 그루 정도 심었을 뿐이다. 비율로 따지면 0.014%니 없는 것과 다름이 없다.

파리 근교의 완벽한 피나무 가로수길 ©고정희
파리 근교의 완벽한 피나무 가로수길 ©고정희

숱이 많은데다가 천연의 머리 맵시가 가로수로 심기에 딱 좋은 나무가 있다. 피나무 속(Tilia)의 나무들이다. 베를린 가로수 35% 이상이 피나무 속이다. 마치 가로수가 되기 위해 태어난 나무 같다.

초여름에 노란 꽃이 피는데 향이 매우 좋아 이때가 피나무 가로수길 걷기에 가장 좋은 시기이다. 피나무 꽃의 꿀은 그 독특한 향으로 인해 별미로 인정되며 꽃을 따서 말린 것은 약으로 쓰는데 주로 차를 달여 마신다. 해열 효과가 있어 감기 걸렸을 때 마시면 좋고 심신을 안정시킨다고도 한다. 가을이면 은행나무의 황금빛은 따라가지 못해도 제법 노랗게 물들어 북유럽의 어둑한 거리를 환히 밝힌다.

그런데 타고난 자질이 아무리 풍부하더라도 제대로 교육받지 않으면 가로수로 ‘간택’되지 못한다. 나무들의 타고 난 자질을 일일이 고려하여 교육하는 곳이 있다. 바로 조경수목 재배원이다. 그저 나무를 기르는 곳이 아니라 나무의 쓰임새에 맞추어 각각 재배법을 달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독일어로는 바움슐레(Baumschule)라고 한다. 바움은 나무이고 슐레는 학교이니 결국 나무가 다니는 학교, 내지는 나무학당이라는 뜻이 될 터이다.

나무학당(바움슐레)에서 가로수용으로 자라는 피나무. 4년생. ©고정희
나무학당(바움슐레)에서 가로수용으로 자라는 피나무. 4년생. ©고정희

가로수의 경우 피나무 속 다음에 단풍나무 속, 참나무 속, 플라타너스, 마로니에 순으로 5대 가로수를 이룬다. 이들은 모두 나무학당에서 가로수용으로 특별 교육을 받는다. 외형으로 본다는 우선 그 줄기가 곧아야 하고 수관이 균일한 형태로 빽빽하게 자라야 한다. 어려서부터 대나무에 묶어주어 곧게 자라게 하고 하부의 잔가지들은 나오는 족족 바로 잘라주어 소위 말하는 지하고 2.2m 내지는 4.5m의 나무를 길러낸다.

2.2m짜리는 보행로에 심고 4.5m는 도로변에 심는데 적어도 3회 이상 뿌리돌림 한 것만 쓴다. 바로 쓸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작아도 쪽 고른 나무를 도로변에 심으면 공간이 바로 완성될 뿐 아니라 질서정연하여 차량이나 행인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17세기 바로크 시대, 완벽히 통제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무의 자람도 철저히 통제했던 전통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삽목하여 나무를 기르는 기술은 이미 고대 로마에서 크게 발달했다고 하나 수목을 엄격하게 훈육하는 방법은 바로크 시대에 본격화되었다. 이때를 조경수목 재배원의 출발 시기로 본다. 바로크 정원의 나라, 프랑스에서 가장 먼저 수목 재배 기술이 발달했음은 물론이다. 사람은 엄격히 훈육했으나 나무는 생긴 대로 자라게 했던 한국적 정서와는 정반대였다. 완벽한 가로수길을 만들고 샤밀이라 불리는 수벽(樹壁) 등을 재배하는 기술 모두 프랑스에서 전 유럽으로 전해져 300여 년 간 그리 해 오고 있다. 제대로 기른 나무들을 내다 심어야 하자도 적고 관리를 별로 하지 않아도 잘 자란다는 사실이 오래전에 입증되었으므로 아무도 그 방법을 의심하지 않는다. 지금은 <조경수 재배 기술 표준>으로 법제화되었다. 이 기준에 맞는 나무만 심어야 준공 허가를 받는다.

단체 뿌리돌림. ©고정희
단체 뿌리돌림. ©고정희

바로크 시대에는 왕과 귀족들이 조경수 재배를 독점했었으나 풍경정원 시대에 민간 수목 재배원이 나타나 조경산업으로 서서히 자리 잡아 갔다. 현재 독일에만 약 3780개의 재배원이 있고 그 면적을 모두 합치면 약 7500만 평에 달하며 연간 십억 그루의 표준화된 나무를 상품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표준에 맞추기 위해서 밀식은 금기이므로 넓은 면적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유럽에서 가장 크다는 브룬스 수목 재배원은 약 150만 평의 규모이다.

피나무의 가을. ©고정희
피나무의 가을. ©고정희

2012년 늦가을,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 독일 정원에 튤립 구근을 심기 위해 칼 푀르스터 재단의 동료 두 명과 순천에 갔을 때의 일이다. 정원을 둘러보던 동료들이 배경에 서 있는 매우 큰 나무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나무들이 왜 저래?” 왜 저리 크고 말랐냐는 뜻이었다.

나무들이 주변에서 녹색 스크린을 만들어주어야 비로소 정원이 만들어지는데 키만 훌쩍 컸지 비리비리 말랐거나 찌그러져서 녹색 배경을 전혀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동료들 얼굴에 가득한 물음표를 향해 한국에서 조경 수목재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설명해 줄 수밖에 없었다.

우선 국토 자체가 작은데다가 그나마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가용면적이 30% 남짓이다. 그 가용면적에서는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아야 했으므로 널찍한 땅에다 마음껏 조경수를 기르는 사치를 누릴 수 없다고 했다. 산에서 캐 오거나 밀식재배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가파른 산비탈, 그것도 암석층에 나무를 심고 정기적으로 뿌리돌림 해서 제대로 기를 수 있으면 그대들이 한번 해 봐라. 그랬다. 지금은 저래도 시간이 흐르면 다 멋진 나무가 될 터이니 기다리면 된다고도 했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마음은 썩 좋지 않았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찌그러진 나무는 찌그러진 채로 남는다. 그리고 과연 면적 부족이 유일한 이유일까? 당시 영세성을 면치 못했던 조경산업의 여건상 불가피했다. 그러나 조경산업이 크게 발전한 지금, 조경수 재배 분야에서도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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