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br>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Landscape Times] 솨!~ 우수수~ 부는 바람에 잎들이 나뭇가지를 떠난다. 짧은 비행을 하고 나면 새로운 여행길에 오른다. 작은 나무들 머리에 내려앉기도 하고 이끼와 풀들이 빼곡한 땅위로 돌아오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들이 닦아 놓은 단단한 길 위에 떨어지기도 한다. 가을은 식물의 여행시즌이다. 공들여 만든 씨앗들도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난다. 되도록 멀리 가려고 새들에게 유혹의 눈짓을 보낸다.

물론 공짜는 없다. 엄마가 만들어 준 향기 좋고 영양 넘치는 과육이 뇌물이다. 비교적 가벼운 열매와 씨앗들은 바람의 손길을 기다린다. 바람을 타고 때로는 물결에 실려 씨앗은 미지의 세상으로 향한다. 그렇게 씨앗들을 떠나보내면서 이파리 일꾼들도 행복해진다. 할 일 다했다는 홀가분함으로 충만하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이제부턴 내 인생이야!’ 그들도 바람의 도움을 받는다. 비가 내리면 비행의 스릴은 좀 줄어들지만 그래도 나쁘지는 않다. 은퇴하는 아니, 휴가 가는 가을 잎들의 뒤를 밟아 보자.

땅 위의 풀들과 속삭이는 낙엽들
땅 위의 풀들과 속삭이는 낙엽들

바람에 솨 솨 화답하면서 그들은 자유를 얻는다. 긴 세월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호흡하고 영양분 만들어 저장하고 배설도 하느라 일개미만큼 바쁘게 살았다. 낮에는 낮대로 밤에는 밤대로 엄마나무 도와서 열매 키우느라 분주했다. 이제 열매들도 각기 제 갈 길로 갔다. 그들은 환호한다. ‘나는 자유다! 나 하고 싶은 걸 할 거야.’ 그래서 엄마 나무에서 독립한다. 아스팔트로 떠난 낙엽은 진정한 자유인이다. 바람이 불면 열을 지어 달린다. 철새처럼 대열을 이뤄 땅 위를 구른다.

얼마나 이 순간을 즐기는 지 사사삭 합창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도시인들처럼 이들도 함께이면서 따로 이다. 독립적이고 재빠르다. 들판이나 산이나 공원은 다른 환경이다. 여기서 잎들은 이웃과 교감하며 2막을 시작한다. 솨 솨 우수수 소리가 그 증거이다. 엄마나무를 떠나면서 여러 번 엄마와 포옹을 한다. 시간 여유 있는 잎들은 옆에 있는 이모나무들과도 스킨십을 한다. 낙엽 떨어지는 소리는 이들이 이별의 포옹과 키스를 나누는 소리다. 그래서 참으로 요란하다.

늘 함께 살고 늘 곁에 있었지만 손 한 번 못 잡은 아쉬움을 이 순간 달랜다. 엄마, 그리고 친척들과 다정하게 교감하는 절호의 기회다. 어떻게 아무 소리 없을 수 있을까? 그들의 이별축제에 우리 인간들의 귀도 쫑긋해진다. 문득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그대 사랑 가을 사랑, 단풍일면 그대 오고,... 그대 사랑 가을 사랑, 저 들길엔 그대 발자국, ... 가을, 아~ 가을, 오면 가지 말아라, 가을, 내 맘 아려나~’ 이 가사는 낙엽의 마음을 짚어준 것일 게다. 곁에 있어도 포옹 한 번 못하고 지낸 잎들의 아쉬움이 배어있다. 그렇게 그들은 이별을 하고 새로운 만남으로 향한다.

공원의 잎들은 이끼와 풀들을 만난다. 늘 올려다보아야 했던 잎들이 어느 날 땅으로 하강하니 이끼와 풀들의 호기심이 넘친다. 만나자마자 재잘재잘 이야기가 넘친다. 낙엽의 입장도 비슷하다.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았던 땅 위 세상이 신기하다. 파랗고 노랗고 빠알간 무지개로 그들의 수다가 시작된다. 낙엽들은 이곳에 잠깐 머물 수도 있고 오래도록 함께 할 수도 있겠지, 그들의 다음 여정은 아무도 모른다.

바람과 비와 땅이 결정해 줄 것이다. 사람들은 서로 이질적인 존재들끼리 서먹해 하지만 자연은 다르다. 하나의 삶, 하나의 순환에서 그들은 일체이다. 그래서 오래된 벗 인양 아끼고 즐긴다. 나는 그들의 사귐이 부럽다. 그들의 재잘거림, 그들의 끝없는 이야기가 바스락바스락 들려 온다. 이 잔치에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수북이 쌓여있는 그들의 무리 위로 달려간다. 사그락 사그락 그들의 소리를 듣는다. 이제는 잃어버린 마음 속 대지의 언어를 되돌리고 싶어서다.

그들의 수다에 끼이고 싶다. 그렇게 살며시 다가가면 그들만의 냄새와 그들만의 소리가 나의 자연을 일깨운다. ‘그래, 우리 인간도 이곳으로 돌아가겠지, 이곳으로 돌아가야지!’ 노란 은행잎이 말한다. ‘나는 이제 즐거워. 자유인이거든.’ 내가 묻는다. ‘혹시 너는 새 싹 시절을 기억하니? 신록인 때가 생각나?’ 은행잎이 말한다. ‘물론이지, 그 때 나는 여렸고 싱그러웠지. 막 세상에 나왔을 때 신기하기도 두렵기도 했어. 조금 자라니까 두려움도 사라졌어. 그리고 정말 열심히 일했어.’

‘그럼 너는 그 때가 그립지 않아?’ 잎이 대답한다. ‘결코 그렇지 않아! 이제 다시 자연의 품에 안겨서 새로운 삶을 계획할 거야, 아니, 그 전에 세상을 구경하러 돌아다닐 거야. 햇님과 바람과 곤충들이 들려 준 이야기들을 직접 경험하고 싶어. 새싹과 신록 때가 전혀 부럽지 않아. 나는 성공했어. 아이들을 다 키워서 독립시켰고 진짜 휴가를 누리고 있거든. 하지만 사람들은 단풍과 낙엽의 시절을 지내며 아쉽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많아. 신록 때를 하염없이 그리워하지.’ 내가 대답했다. ‘사람들이야 그러는 게 당연할거야. 자연과 자연의 법칙을 잊은 지 오래거든.’

‘글쎄, 난 사람들 마음을 모르겠어, 이 계절, 가을은 세상에서 최고인 걸! 겨울부터 봄까지 줄곧 가을만 기다렸어. ’ 낙엽은 나와의 대화를 멈추고 다시 이끼와 얘기 나누는 데 빠져들었다. 그들은 긴 여행의 끝에서 다시금 누군가의 양분이 되어줄 생각에 벅차다. ‘그렇지, 이런 가을이 있었네? 도대체 단풍이 신록을 부러워할 일이 있기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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