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br>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Landscape Times] 아내가 죽었는데 북치고 노래하는 사내가 있었다. 조문하러 온 친구가 기가 막혀 물었다. “자네,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닌가? 함께 슬픔과 기쁨을 나누며 긴 세월 살아온 자네 아내가 저세상으로 갔는데 통곡은 못할지언정 노래를 부르다니!” 친구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사내는 그 말에 싱긋 웃으며 말했다. “친구,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는데 내가 왜 슬프지 않겠나? 나도 처음에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네. 그러다 문득 생각해 보았지, 아내는 어디로 갔는지, 그리고 그녀는 어디에서 왔는지. 그래, 아내는 이제 이 세상에 없어. 나는 더 이상 그녀를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 헌데 애초에 그녀는 어디로부터 왔을까?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생겨났지. 하늘과 땅 사이, 그 빈 공간에서 아내는 생겨났어, 그리고 이제 그녀는 다시 그 곳으로 돌아갔을 뿐이라네. 그런데 내가 뭐 울고불고 할 것이 있나?” 이 사내는 바로 자연주의 사상가로 알려진 중국의 장자이다.

장자의 아내가 장자보다 먼저 가지 않았다면 <장자>의 이 소중한 구절은 기록되지 못했으리라. 장자의 통찰은 어디에서 비롯했을까? 아마도 이 가을이 아닐까? 장자의 아내는 가을날, 황화되어 지는 낙엽 속에서 생을 갈무리한 것이 아닐까? 숨이 진 아내의 시신을 잡고 애통하던 장자는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 마당에는 떨어진 잎들이 수북이 쌓여있고 나뭇가지는 앙상하다. 봄 여름 그 푸릇하고 청량했던 나뭇잎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모두 어디에서 왔을까? 가을날의 낙엽과 나무가 어우러져 우리 마음을 두드리는 이 이야기가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매년 보는 단풍도 하는 말이 다 다르다. 올해는 우리에게 어떤 이별이야기를 들려줄까?
매년 보는 단풍도 하는 말이 다 다르다. 올해는 우리에게 어떤 이별이야기를 들려줄까?

이별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헤어짐은 슬픔이고 아픔이다. 잎과 나무의 이별 때문인지 사람들 세상에서도 가을은 우수의 계절이다. 이별의 시와 노래가 넘친다. 가을은 갈무리와 정리의 계절로 인식된다. 그래서 우울하고 쓸쓸하다. 어쩔 수 없이 물리적으로 떨어져야 하는 이별은 아프다. 영화나 드라마는 공항에서 헤어지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공항의 이별이야 어찌할 수 없다 치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변해서 헤어져야 하는 마음은 또 얼마나 시린가! 시월에 접어들자마자 ‘시월의 마지막 밤’이란 전설적인 노래를 떠올리는 건 가을이 원치 않는 별리의 시기라는 걸 암시한다.

하지만 식물의 이별처럼 화려하고 웅장한 건 없다. 산이 대부분인 우리는 가을 단풍이 곳곳에 자리한다. 낙엽처럼 바삭하게 건조된 마음을 붉은 단풍으로 덥히려고 우리는 산에 간다. 그 곳에는 식물들, 나무들의 합창이 있다. 찬란한 이별의 오케스트라가 울리고 울린다. 성공(열매)을 자축하는 불꽃놀이가 웅장하다. 폭죽이 한 번 터질 때마다 잎이 하나씩 떨어진다. 이별은 새 생명을 준비한다. 땅 위에 떨군 잎은 나무의 양분이 된다. 낙엽의 바스락거림조차도 우리들 마음에 양분이 된다. 열매들과 어울린 낙엽은 함께 다음 생을 약속한다.

세상 어느 이별이 이처럼 아름다운가, 세상 어느 이별이 이보다 값진가! 하늘과 땅 사이에서 식물은 마감과 시작을 한다. 붉고 노랗게 열정과 사색으로 온 세상을 점령한다. 그래서 우리 마음은 가을마다 낙엽으로 흔들리며 춤춘다. 낙엽처럼 땅으로 향한다. 식물들에 취해서 그들에게 반해서 우리는 흐느적거린다. 이별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그들이 말한다. 이별은 귀하고 꼭 필요하고 멋진 일이라고 노래한다. 이별을 위해 그들이 얼마나 애썼는가, 길고 긴 계절을 바로 이 순간을 위해 달렸다.

우리의 값진 이별을 위해 그들은 세상을 오롯이 물들인다. 장자도 이 말을 들었다. 이 노래와 색채를 맛보았고 어디에선가 낙엽을 태우는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봄에 올라온 연초록 잎을 떠올리고는 만사만물의 시작과 끝이 두 개가 아님을 깨달았다. 이제 아내도 낙엽처럼 다시 자연 속으로 돌아간다는 걸 알아냈다. 그래서 쓰린 마음을 달래려고 노래를 불렀다. 모든 것이 무(無)에서 시작하고 무(無)에서 끝나듯 영원한 이별도 영원한 만남도 없음을 노래했을 것이다.

식물은 스승이다. 빼어난 미모의 지혜로운 스승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이별을 공부시킨다. 낙엽처럼 무수한 이별들… 이별하지 않으면 만남이 없다. 끝이 없으면 시작도 없다. 그래서 그 무엇과 그 누구와 헤어지더라도 그것은 아름다운 것임을, 꼭 필요한 것임을 우리에게 말한다. 구르는 낙엽이 보이면 한 장 집어 들고 말을 시켜 보자. 그의 짧지 않은 사연을 들으며 이 가을, 화려한 이별에 흠뻑 취해 보자.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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