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환 부산대 교수

[Landscape Times] 정원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농경사회의 마당중심공간이 편리를 위한 아파트문화로 바뀐 이후 다시 변화의 시기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연 것이다. 자의는 아파트문화의 건조함과 폐쇄성에 기인하며, 타의는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장기화가 불러왔다.

코로나블루시대인 지금 정원을 가꾸고 즐길 수 있는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피로감은 느끼지 못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콘크리트박스의 고평가 아파트단지가 아닌 도시에서 벗어난 작게나마 마당이나 정원이 있는 집이 새롭게 부각되는 시기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집들인 뉴욕 맨해튼의 아파트 가격이 하락하는 반면, 전원지역의 지가가 상승하는 현상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부동산가치 측면의 낮은 선호도로 이러한 변화는 두드러지지는 않으나, 투기 대상으로 전락한 아파트단지의 투기 매력이 사라진다면 재화로서의 부동산이 아닌, 안식처로서 생각하는 변화는 뚜렷하게 증가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예측이 불공정한 부동산 투기 철퇴와 주거문화 변화가 필요하다 생각하는 경제관념 없는 한 개인의 희망사항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파트 중심의 주거문화는 분명 오랜 시간동안 자연과 함께 살아온 인간이라는 존재에게는 오래 지속되기 어려운 문화로 판단된다. 이는 고밀 아파트단지 주거문화가 정착된 지 불과 한 세대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아름답게 꾸며진 공원의 요구도가 급증하는 데에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아직까지 고밀도시에 집중된 문화서비스와 아파트의 편리함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가 없기에 지금은 남이 가꾼 아름다운 공간을 잠시 방문하는 것에서 만족감을 느끼는 과도기라 볼 수 있다.

정원이 집에 딸린 뜰을 의미하는 것이니, 공공의 영역에서 방문객을 위해 조성하는 식물이 있는 공간은 분명 정원은 아니다. 정원을 공공의 영역으로 확장한 것이 공원인데, 공원은 그간 애정을 가진 개인이 가꾸는 만큼의 비용과 정성을 들일 수 없었다. 최근 초라하게만 조성되던 공공영역의 공원이 점점 많은 비용을 투입하면서 공원대신 정원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단지 이름만으로도 방문객들은 자신만의 공간이라는 느낌을 조금이나마 더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소중하게 가꾼 아름다운 화초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도 가질 수 있다. 뭐라 이름불리건 그 이름이 핵심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정원은 기존 공원보다 높은 만족도를 위해 그만큼 많은 세금이 투입된다는 데 있다. 거기에 그간 공원에서는 없었던 많은 유지관리비용 또한 추가된다.

어찌 되었건 비용을 과하게 투입하여 녹지공간을 만들고 정원이라 이름 짓건, 저비용으로 서비스되는 녹지를 만들어 공원이라 이름 짓건, 장기화되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주거지와 인접한 공공 오픈스페이스 요구는 증가할 것이 분명하다. 조금이나마 편하게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곳이 오픈스페이스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분명 고민해야 할 것은 비용효율성과 지속가능성이다. 개인의 정원과는 달리 분명 공공이 조성하는 녹지공간은 세금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도시개발은 좁은 땅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그나마 도시민 생활복지 측면에서 최소한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계획한 공원녹지조차 거의 조성하지 않은 채, 도심 고밀화를 방치해왔다. 도심에서 걸어서 즐길 오픈스페이스가 턱없이 부족한 이유이다.

이렇게 심각하게 부족한 오픈스페이스 확보를 위한 꼼수로 도시의 완충역할을 해야 할 하천범람원을 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을 당연시 해 왔다. 한강 고수부지를 포함해 대도시를 흐르는 하천둔치는 강이 흐르는 하천이 아니라 콘크리트로 뒤덮인 공원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금은 이용조차 없는 시골 하천도 이렇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하천에 물이 흐르기라도 하면 마치 큰 일이 벌어진 양 문제가 여기저기 발생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하천에 물이 흐르는 게 재난이 되는 이상한 사회가 된 것이다.

문제는 과거 하천 둔치가 소극적으로 이용되었던 반면, 지금은 적극적인 시설의 도입과 정원을 방불케 하는 과도한 원예식물 도입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하천 둔치에 아예 정원이라는 이름을 붙여 집약적인 조성과 관리를 하는 곳이 급격히 늘고 있다. 하천을 경계 짓는 제방은 매우 높게 쌓여 있다. 그리고 조성과 관리를 위한 비용이 집중되는 둔치공원은 제방 한참 아래에 만들어진다.

둔치를 이용하여 많은 비용을 들여 완성된 그럴싸한 이름의 공원과 정원은 처음에는 인기 높은 공간이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둔치에는 한 해에도 몇 번씩 물이 찰 수도 있다. 몇 년에 한 번씩은 큰 비에 애써 가꿔놓은 식물들이 초토화된다. 한참이나 높이 쌓아올린 제방이 짧게는 50년, 길게는 100년에 한번 정도는 물이 차니 당연한 현상이다. 숲이 우거지면서 둔치까지 물이 차는 경우가 확연히 줄어들었으나, 그럼에도 하천에 물이 흐를 때마다 복구를 위한 세금이 고스란히 투입되어야만 한다. 지속가능성이나 친환경과는 아예 담을 쌓는 것이다.

조경의 본질로 들어가 보자. 식물을 심고 가꾸어 원하는 경관을 만들어 내는데 최소 10~20년의 시간이 걸린다. 다른 설계도면과 달리 조경설계도면이 준공시점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 이유이다. 우후죽순으로 조성되고 있는 하천 둔치의 과도한 조경공간은 과연 설계가가 원하는 경관을 단 한번이라도 만족시킬 수 있을까? 정원으로 명명한 공적 공간은 앞서 얘기했듯 개인의 정성과 비용을 세금이 대신하는 것이다. 친환경을 주장하는 조경이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이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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