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 써드스페이스 베를린 환경아카데미 대표

코로나, 긴 장마, 세 번의 태풍, 그리고 또 코로나 – 한국은 지금 지구촌 어느 나라보다 큰 시련을 겪고 있다. 사실 좀 억울하긴 하다. 그간 거물급 산업국가로 도약했다고는 하나 영토도 작고 인구도 적은 한국이 과연 지구환경파괴에 몇 퍼센트 책임이 있을까.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피해는 이리 크게 보고 있으니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셈인가. 하필이면 태풍이 지나가는 길목에 나라를 세운 조상을 탓해야 하나. 그러나 지금은 그런 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상황이 얼마나 급한지 그것부터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9월 3일 서울에서 <기후와 포스트 코로나>라는 주제를 놓고 온·오프라인 결합 방식의 국제회의가 열렸다고 한다. “앞으로 닥칠 대재앙을 막으려면 환경보호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룩하는 5차 산업혁명으로 가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굳이 전문가들이 말하지 않아도 지금쯤이면 아무리 무딘 사람도 감을 잡았을 것이다. 기존의 경제와 산업방식을 고수할 수 없다는 것을. 대재앙이 앞으로 닥칠 것이 아니라 이미 닥쳤으며 재앙이 우연히 온 것이 아니라 환경파괴의 결과라는 것을.

독일 속담에 “나 죽은 뒤에 대홍수가 나거나 말거나”라는 말이 있다. 반드시 대홍수를 염두에 두었다기보다는 세상이야 어떻게 되는 제 앞가림만 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들이 기성세대를 빗대어 이 말을 자주 인용한다. 당신들 죽은 뒤에 대홍수가 나면 피해를 보는 건 우리다. 그러니 자손 대대로 잘 살게 하려고 그런다는 말 하지 말아 달라. 우리가 원하는 건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건강한 환경이다. 제발 우리에게 건강한 환경을 물려 달라.

그사이 수십 개국으로 확산하여 매주 금요일마다 열리는 데모 - ‘프라이데이즈 포 퓨처(Fridays for Future)’에서 10대, 20대들이 외치는 구호이다. 코로나 이후로 집회가 제한되어 온라인으로 무대를 옮겼으나 활동은 그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만 유난히 잠잠한데 이에 동참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 내 욕심이다. 시련을 크게 받는 나라의 아이들일 수록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취리히 시내에서 시위하고 있는 ‘빙하 이니셔티브’의 젊은이 © 고정희
취리히 시내에서 시위하고 있는 ‘빙하 이니셔티브’의 젊은이 © 고정희

얼마 전 여기 법학과 여대생 한 명과 녹색당 출신 주지사 사이에 신문 지상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반대 의견을 가진 인사 두 명을 초대하여 닭싸움을 시키는 신문인데 만 20세의 여대생과 만 72세 녹색당 창당 멤버의 싸움이 볼만했다. 젊은 세대들 사이에 녹색당도 이제는 한물갔다는 의견이 번지고 있다.

한때 초급진적이었던 그들이 나이가 들면서 점점 온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십 년이 넘도록 지진 부진하며 그렇게 큰소리쳤던 기후목표에 도달하지 못하여 신뢰를 잃었다. 여대생과 원로 정치가 사이에 쟁점이 된 것은 물론 산업과 경제성장이다. 그중에서도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자동차 산업이 도마 위에 올랐다.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독일 정부는 역대에 없던 지원금을 풀었다. 그중 일자리를 지키는 명목으로 자동차 산업과 루프트한자 등 항공사, 대형 여행사 등에 수백 내지 수십억 원의 지원금이 돌아갔는데 여대생은 그 지원금 대부분이 매니저 월급과 주주 배당금으로 들어갔고 결국은 수천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폭로했다. 지원금을 줄 때 미래형 친환경 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조건을 강력히 내걸어야 했다고 비난했다. 주지사는 당장 산업을 지켜내는 게 시급한 문제이며 녹색산업으로의 전환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반론했다.

여대생은 자동차 산업을 지키기 위해 벌벌 떠는 원로에게 냉소를 보내며 자동차 산업의 근로자들이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느냐고 물었다. 그들에게 녹색 일자리를 제공해 줄 생각은 해 본 적 없는가 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당신 세대들은 자동차가 인간의 기본적 욕구에 속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세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동차가 필요 없다”라는 폭탄선언을 했다. 사실 그렇다. 지금 유럽의 젊은 세대는 대중교통의 최적화와 자전거 도시를 요구하고 있다. 비건과 자전거가 그들 삶의 주제가 되었다.

이렇게 갑자기 바람 빼는 답변이 돌아오자 원로 정치가의 논지가 방향을 잃고 빙빙 돌았다. 그리하여 “다 너희들의 미래를 위해서 하는 일인데”라는 구차한 변명밖에 할 수 없었고 이에 대해 “우리의 미래를 팔아 당신들의 현재를 지키지 말아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지금 유럽의 10대, 20대는 이런 식으로 어른들에게 반항하고 있다. 그들의 반항은 사실 “살려달라”는 외침이다. 청소년들은 외칠 수라도 있지만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은 짐작하건대 마스크를 쓰고 세상에 나올 것이므로 아무 말도 못할지 모른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미세먼지에, 긴 장마에 태풍에, 코로나에 시달려야 하는 아이들이 너무 가엾다.

‘Fridays for Future’ 행동파들이 코로나 중에도 베를린 의사당 앞에 시위 구호를 펼치고 있다. © KAY Nietfeld/DPA
‘Fridays for Future’ 행동파들이 코로나 중에도 베를린 의사당 앞에 시위 구호를 펼치고 있다. © KAY Nietfeld/DPA

문제는 속도다. 소위 말하는 5차 산업혁명이 성공하여 세상이 깨끗한 녹색으로 변하는 날이 온다고 치자. 그게 언제일까. 그리고 그사이에 무슨 재앙이 또 닥칠까. 재해의 빈도와 강도가 엄청나게 진화하며 거친 속도로 인류를 덮치고 있는 지금 한가하게 <단계적 전환>을 논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급진적 전환>만이 살 길일 수 있다. 방법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산업구조의 전환에 대해서는 실로 많은 대안이 나와 있다. 산업계의 탐욕, 정치가들의 무기력, 대중의 무관심이 문제다. 우리나라에서만 노력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빙하가 녹으면 베니스가 잠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유럽은 멀쩡하고 태평양의 기류가 먼저 요동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나서서 미국이나 중국과 같이 기후보호에 무관심한 국가들에게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그들이 아무리 막강하더라도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대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새우등만 터질 것이다. 물론 우리도 떳떳해야 한다. 아직 대한민국은 환경과 기후보호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나라에 속한다. 유감스럽게도 사실이다.

대중은 물론이거니와 환경전문가들의 의식과 지식수준 조차도 수준 미달인 것을 많이 보아 왔다. 이젠 정말 달라져야 한다. 코로나가 나타나 인류의 질주를 막고 “정지! 한계를 넘었어”라며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강요된 근신이 2~3년 지속할지 모른다. 그 사이 자연과 환경은 어느 정도 회복할 것이다. 그때 다시 전력을 다해 파괴하고 다시 2~3년 쉬고 다시 파괴하고 이렇게 반복하면서 살 것인가, 아니면 이를 기회로 삼을 것인가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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