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원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도시농업과 농업연구사

[Landscape Times]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흙에서부터 순환을 시작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의 가장 근원적인 존재이유는 생명의 순환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는 흙과 멀어져 살고 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과 같이, 그래서 이젠 흙이 궁금해지지도 않게 된 듯하다.

언젠가 예비 선생님인 교대 학생들과 학교 로비에 실내조경을 하느라 화단에 상토를 부어 넣고 있는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을 모르고 서있던 학생들이 생각난다. 흙에 손을 넣으면 큰일 나는지 알고 있었단다. 태어나서 한 번도 만져보지 않았던 것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 “더러운 것 아니니까 아랫배 힘 딱 주고 한번 만져봐” 라고 학생들에게 주문했고, 난생 처음 맨손으로 흙을 만져본 아이들의 신나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의 생활은 예전에 비해 모든 것이 풍부해지고 편리해졌는데, 우리 주변의 흙은 배고프다. 도심지 조경공간은 충분한 수분의 부족과 바람, 극심한 온도차, 그리고 낙엽의 수거 등의 인위적인 개입으로 도시의 토양은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입주한지 10년 이상이 된 아파트 조경공간의 20개 지점 토양을 분석해본 결과, 토양 경도 25㎜를 넘는 공간이 전체 57.9%였고 이 중 2개 지점은 30㎜를 훌쩍 넘어 측정기가 들어가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물도 흡수할 수 없는 상황이니 흙 속의 양분은 언감생심 기대할 수도 없다.

과수원의 사과나무는 물이 토양깊이 어디까지 들어갈지 계산하고 물 온도까지 신경쓰느라 관수관의 재질도 설치하는 방법도 매우 다양하다. 양분은 잎색이 어떤 색을 띠는지만 봐도 어떤 성분이 부족한지 알아서 비료를 종류별로 농도 맞춰가며 주고 하루하루 상태를 관찰하는 것에 비하면, 아파트 단지 내 사과나무는 거의 방치 수준이니 10년이 지나도 과수원에 비해 줄기 두께가 반이다.

관수 시 토양
관수 시 토양

생태복원, 생태면적률, LID 기술 등등 척박해진 도시에 생명을 순환시키고자 하는 많은 노력들에서도 흙(Soil)과 식물은 담당자가 다르다. 그러나 인간에게 녹색의 건강성을 제공하는 조경공간이 많아져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식물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건강한 토양으로 회복시키는 과정을 통해서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진 건강한 생태계가 만들 수 있기에 흙과 식물은 하나로 보아야하지 않을까.

한번 공사를 한 조경공간의 토양을 주기적으로 바꿔주기란 쉽지 않다. 처음 공사할 때부터 기존 토양이 어떤 상태인지를 먼저 살펴보고,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토양으로 만들어 준 후 식재하는 것이 뿌리 활착이 되지 않는 이식피해에서 오는 하자발생을 줄일 수 있다.

토양 성분은 오랜 기간 풍화와 유기물에 의해 만들어진 토양이 가지고 있는 특성으로 토성을 간단한 방법으로 바꿀 수는 없다. 토양을 개량한다고 점토흙에 모래를 부어 섞는다고 사양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래와 점토가 더 단단한 흙을 만들게 된다.

이때는 토양을 깊이 갈아서 깊이까지 뭉친 흙을 부숴주는 것이 가장 좋은데 흙을 부수는 과정이 여건에 맞지 않을 때는 퇴비, 쌀겨 등의 유기질 재료를 섞어 토양 내에 공극이 만들어 지도록 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심토층에 배수층 역할을 하는 자갈을 넣고 배수로 작업이 이어진다. 배수가 되지 않으면 비온 후에 물이 토양 내에 정체되어 토양 중의 공기함량이 줄어들고 산소가 부족하여 뿌리 발달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반대로 토양에 자갈 함량이 35%를 넘는 경우에도 식물이 토양에서 물을 흡수할 수 있는 상태의 토양개량은 필요하다.

건강한 토양

그 다음 단계로 식물이 가장 잘 자랄 수 있는 토양인 표토가 유실되지 않도록 지키는 것도 토양 건강을 지키는 데 필수적인데, 다층구조의 식재가 숲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보기에도 좋지만 교목 하부가 나지일 경우 바람에 의해 표토가 날아가거나 강우로 인해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다층의 지피식물을 식재해주는 것이 숲에서의 토양생태계까지 만들어 준다는 차원에서 효과적이다.

녹지의 양에서 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요즘 조경관리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두들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만 비용발생의 문제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여러 분야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기본이 탄탄하면 어떤 어려운 문제도 풀어갈 수 있듯이 소홀하기 쉬운 토양 만들기부터 챙겨간다면 조경관리에 발생하는 비용 절감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생명체들은 모두 자연치유 기능이 있어서 면역력이 강한 건강한 상태에서는 어떤 바이러스가 와도 버텨낼 수 있는 힘이 된다. 건강한 환경에서 잘 자라고 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코로나19로 불안한 우리도 더 잘 씻고, 더 잘 먹어서 건강하게 이겨내자는 마음이 들도록.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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