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식물노마드] 잠꾸러기 씨앗
[최문형의 식물노마드] 잠꾸러기 씨앗
  •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 승인 2020.07.20
  • 호수 5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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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Landscape Times]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은 어느 날 잠자리에서 일어나 출근할 수 없었던 남자의 이야기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하기 싫은 일을 묵묵히 해야 했던 청년은 갑자기 흉측한 벌레로 변해 버린다. 전혀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은 일을 하던 그에게 합법적으로(!) 출근이 면제되고, 가장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했던 그의 존재 또한 가족들에게 서서히 잊혀 간다. 벌레가 된 주인공 게오르규는 평소 세상에 나가지 않는 나날을 꿈꾸었고 어느덧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 그는 왜 침대에서 나오기 싫어했을까?

게오르규처럼 세상에 나가기 싫었던 씨앗이 있었다. 영차영차 힘을 모아 최초의 싹을 올리기 두려운 씨앗이 있었다. 나갔다가 얼어 죽으면 어쩌지? 그렇게 나갔다가 무참히 밟히면 어쩌지? 나갔는데 햇볕을 못 받아 굶어 죽으면 어쩌지? 조금씩 자라다가 애벌레한테 몽땅 먹히면 어쩌지? 꽃을 피웠는데 수분이 안 되면 어쩌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 만사 귀찮다. 좀 더 자자. 그렇게 씨앗은 다시 잠으로 빠져들었다. 얼마를 잤을까? 봄에 기지개를 켠 벌레들이 웅얼대는 소리에 씨앗은 깨어났다. 벌레들은 세상으로 나갈 채비를 하느라고 분주했다. 밖을 염탐해 보니 햇볕이 훨씬 강해졌다. 추위도 덜했다. 나도 이제 나가볼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세상은 그전보다 더 어수선해졌을 게 뻔했다. 주변에 많은 씨앗들이 세상으로 나갔다.

이웃도 늘어났고 받을 수 있는 햇빛의 양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잠꾸러기 씨앗은 더 겁이 늘었다. 그래도 엄마가 싸준 도시락은 든든하고 넉넉하다. 아직도 한참을 먹을 수 있다. 굳이 밖으로 나갈 게 무언가? 한 번 뿐인 삶, 멋지게 살고 싶은데 세상은 너무 두렵다. 경상남도 함안에 가면 아름다운 연꽃 테마파크가 있다. 105.119 평방미터의 규모를 자랑하는 함안연꽃테마파크이다. 이곳에서 만나는 연꽃은 무려 700년 전 씨앗이 싹을 틔운 것이다. 함안 성산산성 유적지의 저수 시설 안에서 연꽃 씨앗이 다수 발견되었는데, 2009년 4월 2일 성산산성을 발굴한 국립 가야 문화재 연구소가 15알을 인수하였다.

이후 함안 박물관이 한국 지질자원연구원에 연대 측정을 의뢰한 결과 고려 중기와 후기의 씨앗으로 판명이 났다. 2010년 7월 7일 오전 7시는 700여년을 잠자던 연꽃이 피어난 시각이었다. 이 연꽃은 아라 홍련이라 명명되었다. 아라(阿羅)는 가야 시대 함안 지역에 자리 잡고 있던 나라, ‘아라가야’이다. 이 연꽃의 외모는 고려 시대 불화나 불상에 나타나는 연꽃 대좌를 연상시킨다. 아라 홍련은 7~8월에 개화하는데, 오전 6~11시 사이에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준다. 아라홍련 씨앗은 왜 700여년을 기다렸을까? 하지만 2000년을 넘는 시간을 묵묵히 기다린 씨앗도 있다.

때 맞춰 올라오는 새싹, 그들의 결정은 우리가 알 수 없다.
때 맞춰 올라오는 새싹, 그들의 결정은 우리가 알 수 없다 

일본 동경대학 그랜드 지하에서 발견된 연꽃 씨앗은 2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고 중국 동북부 지방 연못 터에서도 1300년 전 연꽃 씨앗이 발견되었는데, 이 씨앗들이 모두 개화에 성공했다. 이 연꽃 씨앗이 어떻게 오랜 세월동안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단단하고 촘촘한 껍질 덕분에 물의 침투를 막을 수 있어서 내용물인 탄수화물과 단백질이 보존될 수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이들 씨앗들이 땅 속에서 잠자고 있던 것은 아니니까 잠꾸러기라고 부를 수는 없겠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자원을 지니고 있었기에 수백 년 수천 년에 달하는 시간을 버티었을 것이다. 인생의 개화도 비슷하다.

세상이 지닌 시간표 탓에 (식물의 씨앗과는 달리) 일정한 시기의 개화를 강요받는 게 인간이지만, 어떤 씨앗은 시계의 시침을 거부해 버린다. 그리고는 달콤한 잠에 빠져든다. 이런저런 세상의 자극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어찌 보면 고집쟁이고 어찌 보면 철부지다. 이런 씨앗을 만난 부모와 선생과 사회는 참기가 힘들다. 이제 그만 세상 밖으로 나오라고, 더 이상은 못 기다려 주겠다고 아우성을 해도 아랑곳 않는다. 최적의 시기는 자신 만이 것이라는 이들의 잠을 누가 깨울 수 있을까? 어쩌면 세상이 원하는 발아와 개화는 그저 ‘변신’의 주인공 게오르규처럼 사는 것일 수 있다. 적어도 이들 씨앗들의 판단으로는 말이다. 개성 강한 이들은 게오르규의 삶을 처단한다. 한 칼에 거부한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라면 답이 명확하다. 멋진 왕자님의 존재가 필요할 뿐이니. 하지만 이 씨앗들의 속은 도통 알 길이 없다. 무엇이 씨앗의 잠을 깨울까? 부모의 염려와 질타도 교사의 훈계와 회유도 아니다. 우리 어른들이 기억할 게 있다. 오랜 기간 잠자는 씨앗은 자원이 풍부하다. 든든한 자원과 건강한 구조를 가진 존재이다. 그들의 가능성은 풍부하고 크다. 그들은 자신 만의 개성과 소신과 꿈이 있다. 그들만의 때를 기다린다. 700년이든 1300년이든 2000년이든 간에. 그러니 그냥 기다려 주자.

주변에 잠꾸러기 씨앗이 있다면 참아 주자. 우리는 그들의 DNA를 온통 파악할 수 없다. 그들이 산불을 기다리는지, 늦은 봄비를 기다리는지, 쨍한 햇빛을 기다리는지, 따뜻한 온기를 바라는지, 우리는 그들의 마음을 모른다. 당나라의 시인 두보는 ‘춘야희우(春夜喜雨)’라는 시에서 때의 중요성을 노래했다. “好雨知時節(호우지시절) 좋은 비는 시절을 알아서, 當春乃發生(당춘내발생) 봄이 되니 때 맞춰 내리네.“ 그 ‘때’가 언제인지 누가 알겠는가? 씨앗만이 알 일이다. [한국조경신문]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news@latimes.kr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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