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식물노마드] ‘중용’과 식물
[최문형의 식물노마드] ‘중용’과 식물
  •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 승인 2020.06.22
  • 호수 59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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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Landscape Times] 생명유지의 비밀은 항상성이다. 생명체는 늘 이 비밀을 유지한다. 더우면 땀을 내어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고 추우면 떨어서 체온을 올린다. 땀을 흘리면 잃어버린 염분을 보충하려고 짜게 먹는다. 염도가 올라가면 물을 많이 마신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동물 뿐 아니다. 식물도 항상성을 유지하는 작업을 한다. 염분이나 영양분이 과도하면 비 오는 날을 기다려 씻어 내거나 아니면 곧 떨어져나갈 잎에 모아서 내보낸다.

동양 고전 중에도 이러한 항상성(homeostasis)에 집중한 것이 있다. 바로 ‘중용’이다. ‘중용’에 관한 사람들의 오해는 극단을 취하지 않는 중간이라는 것이다. 흔한 오해이다. 하지만 중용의 저울추는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삶을 유지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이라고 인정해서일까? ‘중(中)’은 희로애락의 감정이 촉발되기 이전의 고요하고 평정한 마음이다. 이 마음의 저울추는 제로(0)이다. 양극단이 아닌 가운데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중용의 의미이다. 어떠한 자극도 없는 상태의 마음은 언제나 평온하다는 것이 중(中)의 뜻이다. 그런데 조금 생각해보면 이 중(中)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혼자 가만히 앉아서 마음을 들여다보자. 나의 마음은 평안한가? 하루 중에 평정심을 유지하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마음이라는 호수는 표면이 잔잔해 보여도 각종 찌꺼기들이 바닥에 가라앉아 있다. 아무런 자극이 없어도 울렁대기 일쑤이다. 깨끗한 물이라야 고요할 수 있다. 그러려면 수시로 바닥을 청소해 주어야 한다. 이 청정한 마음이 중(中)이지만 우리 보통사람들의 마음은 깨끗하기 어렵다. 바닥이 울렁대다 보니 자극이 오면 과도한 반응이 생긴다. 그런데 자극이 왔을 때 제대로 반응하는 것이 바로 ‘중용’이 말하는 ‘화(和)’이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표출되어 그때그때 절도에 꼭 맞는 것이 화(和)의 상태라고 ‘중용’은 말한다.

화(和)는 상황에 꼭 들어맞는(timely right) 감정의 표현이고 정도가 적당해야 한다. 이것이 잘 조절이 안 되면 감정과 인지판단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자신에게 모욕을 주었다고 끝까지 쫓아가 상대에게 신체적 위해를 가한다면 사회에서 위험인물이 된다. 이런 사람은 법의 판결을 받고 격리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용(庸)’은 무엇일까? 용은 평소, 일상의 뜻이다. 마음의 사용법이 잘 수련되고 숙지된 사람은 평소에 희로애락의 감정이 제 자리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외부의 자극이 올 때 자연스럽게 가장 적절하게 표출된다. 이런 메커니즘이 제 자리를 잡으면 평소에 이런 중화(中和)가 가능해 진다.

평소에 중(中)과 화(和)가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사람, 이런 사람을 ‘군자’라고 한다. 군자는 그저 고상하고 세련되고 번지르르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유지하고 보존하는 사람이다. 그러고 보니 중화(中和)와 중용(中庸)은 생명에 관한 이론이다. 그것은 바로 항상성에 관한 사유이다. 매사에 항상성을 유지하는 사람이 군자이다. 그는 자신을 보존할 뿐 아니라 다른 존재의 생명 유지에도 도움을 준다.

식물을 보자. 그들은 평소에 항상성을 유지하고 살면서 씨앗 만들기에 전념한다. 그러다가 외부 환경이 변하여 그들에게 자극이 되면 그에 가장 적합한 반응(和)을 보인다. 너무 춥거나 덥거나 건조하거나, 지나치게 수분이 많거나 갑자기 추워지거나 뜨거워지거나 할 때 자신의 생명을 보존할 수 있도록 그에 맞는 적절한 반응을 한다.

나무 둥치에서 자라나는 버섯. 식물은 중용의 도를 실천하여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고 다른 생명체를 품어 살리는 넉넉한 군자이다.
나무 둥치에서 자라나는 버섯. 식물은 중용의 도를 실천하여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고 다른 생명체를 품어 살리는 넉넉한 군자이다.

 

적이 침입하여 생존을 위협하는 경우도 많다. 애벌레의 침입, 초식동물의 공격, 인간의 무지막지한 초토화 작전 등 온갖 경우에서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지킨다. 때로는 적들에게 화학전으로 반격하기도 하고 또는 지원군을 부르거나 주둔군을 두기도 한다. 각종 독극물로 적의 몸에 이상을 일으켜 자신을 지키기도 한다. 식물의 공격을 받은 적은 탈피를 못하거나 짝짓기를 못하거나 소화를 못하거나, 단백질 합성에 이상이 생겨 불임이 되거나 심하면 바로 죽기도 한다. 이 모든 공격에는 엄격한 척도와 기준이 있다.

그들의 반응(和)에는 엄밀한 분석과 정보력이 따른다. 그렇게 그들은 상황에 가장 적절한 반응을 하는데 이것이 ‘중용’이 말하는 시중(時中)이다. 또한 그들은 용(庸)에도 능수능란하다. 적이 침입하면 공격을 받은 식물은 화학물질을 만들어 자신을 지키는데 이것은 이웃 식물에게는 1차 경보가 된다. 이 때 식물들은 자신도 독을 만들어 대비한다. 그러다가 적이 물러가면 얼른 독수치를 내리고 다시금 씨앗 만들기의 본업으로 돌아간다. 무리하게 늘 독수치를 높여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만약에 적이 재차 침입한다면 그 때 다시 적절하게 대응할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용(庸)이다. 중(中)과 화(和)를 평소에 자유자재로 하는 기술이다. 연약하고 수동적으로 보이는 식물이 굳건하게 생을 영위하는 비밀 중 하나이다.

식물은 군자이다. 중화와 중용의 비밀을 알아 활용하는 항상성 유지의 대가이다. 식물은 진정한 군자이다. 자신의 덕을 완성하여 다른 존재의 덕을 실현하도록 도와주고 천지의 화육에 동참하는 존재이다. 식물의 덕은 세상을 먹여 살리고 세상에 희망을 주며 세상의 모든 생명이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누리도록 돕는다. ‘중용’ 식물에 관한, 식물을 찬양한 책이다.

[한국조경신문]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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