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의 식물노마드] 성서와 나무
[최문형의 식물노마드] 성서와 나무
  •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 승인 2020.06.15
  • 호수 58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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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Landscape Times] 존 밀턴은 ‘복낙원’에서 예수가 사탄의 시험을 이기고 낙원을 회복시키는 이야기를 썼다. 앞선 작품 ‘실낙원’에 이은 책이다. 밀턴뿐일까? 사람들의 마음에는 잃어버린 낙원을 그리는 꿈이 저마다 존재한다. 각자 환경과 경험에 따라 다르겠지만 현실에 만족하고 안주하기 힘든 인간들에게 공통적인 사항이다. 성서 속 낙원(에덴동산)의 모습은 풍요롭고 아름다웠다. 생태적으로 보아도 모든 것이 조화로웠다. 빛과 어두움, 하늘과 바다라는 기본 환경 속에서 씨 맺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들이 즐비했고 그 안에서 각종 동물들과 인간이 삶을 누리고 살았다.

신은 창조의 단계마다 더없는 만족을 표했고 신이 만족한 만큼 피조물들도 행복하기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낙원 문은 닫히고 인간은 쫓겨난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바로 ‘나무’가 문제였다. 나무실과의 유혹! 선악을 알게 하는 금지된 나무가 인간을 추방시켰다. 신이 진짜로 두려워한 건 생명나무였다. 인지가 발달한 인간이 생명나무까지 손대게 되면 신의 위엄에 큰 손상이 갈 수 있으니. 그렇게 인간은 낙원에서 나와 땅을 일구며 땀 흘리고 살아야 했다. 이제까지 생산은 신의 몫이었으나 지금부터는 인간이 직접 생산을 해야 했다. 남성은 땅으로부터 씨를 맺는 채소와 씨가진 열매들을 생산해야 했고 여성은 그 일을 할 인간을 생산해야 했다.

시간이 흘러 땅에 죄악이 무성해지자 신은 인간을 만든 것을 후회하는 지경이 된다. 결국 노아라는 의인의 가족만 빼고 모든 인간을 물로 쓸어버리는 계획을 세운다. 노아는 큰 배를 만들고 동물 암수 한 쌍 씩을 실어 대피한다. 방주가 오랜 기간 홍수에 덮인 지구 위를 떠돌고 난 후 노아는 뭍이 드러났는지를 확인하러 비둘기를 내보낸다. 비둘기가 물어온 것은 바로 감람나무의 새 잎이었다. 물이 빠진 것을 확인한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땅위에 그들이 먹을 수 있는 식물들이 다시 자라고 있는가를 알아보는 중요한 작업이었다. 먹거리의 원천인 식물들이 있어야 동물이든 인간이든 다시 나가서 생명을 영위할 수 있을 터이니.

얼마가 지나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인이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하고 있을 때, 신은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모세를 만난다. 신이 모세에게 자신을 현현한 장소는 다름 아닌 나무, 떨기나무였다. 불이 활활 타오르지만 타버리지 않는 나무! 여기에서 신은 모세를 만나 사명을 준다. 떨기나무는 중동지역에 매우 흔한, 아카시아나무과에 속한 나무로서 광야에 흔히 보이는 일종의 ‘가시덤불’(thorn bush)이다. 재목으로 쓸 수 없는 볼품없이 초라한 나무를 골라 불꽃으로 임한 신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의 현 상황과 그들의 미래를 암시한다.

성경에 종려나무로 나오는 대추야자의 열매. 나무열매는 인간이 낙원에서 추방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성경에 종려나무로 나오는 대추야자의 열매. 나무열매는 인간이 낙원에서 추방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모세와 그의 형 아론이 이집트의 파라오를 만나 해방을 위해 각종 이적과 재앙을 행하던 도구도 나무, 나무지팡이였다. 평범한 나무지팡이는 신의 힘을 빌어 요술지팡이가 된다. 훗날 광야에서 시비를 가려야 했을 때에도 지팡이에 싹이 나고 꽃이 피는 것으로 어느 쪽이 옳은지 가늠을 했다. 결국 아론의 지팡이에서 꽃이 피어나 살구열매가 열렸다. 우리말로 살구로 번역된 이 꽃과 열매는 사실은 아몬드 꽃과 아몬드 열매이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케드(shaqed)는 ‘깨어있다’ ‘지켜보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시비판정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의미이다.

예수의 시대로 넘어 오자. 그의 아버지는 목수였다. 목수는 나무를 다루어 필요한 물건을 만드는 직업이다. 성서에는 예수가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때 많은 사람들이 환영하면서 흔든 것이 바로 종려나무 가지였다. 종려나무는 부챗살처럼 곧게 뻗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는 찬란한 빛의 형상이며 승리와 영광을 나타낸다고 본다. 또 종려나무는 히브리어로 ‘타마르’(tamar)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의 대추와 비슷한 열매가 달리기 때문에 일명 대추야자나무라고도 한다.

대추야자는 늦여름이 되면 잘 익어 황갈색이나 적색이 된다. 열매가 연하고 맛이 꿀 같기 때문에 성경에 나오는 꿀은 종종 종려나무 열매로 표현되었다. 대추야자는 엄청난 생명력으로도 유명하다. 72년 경 로마군에 끝까지 저항했던 유대인의 요새 마사다에 남겨졌던 대추야자 씨앗이 한참 후에 고고학자들에게 발견되어 우연히 식물학자에 의해 심겨진 일이 있었다. 씨앗은 놀랍게도 싹을 틔워 나무로 자라났다. 이 씨앗의 나이는 무려 2000년이 넘어갔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성서의 한 획을 긋는 대사건이다. 십자가는 형벌과 고통의 나무이기도 하고, 동시에 속죄와 영광의 나무이기도 하다. 이 나무가 바로 인간이 낙원에서 쫓겨나게 만든 ‘지식의 나무’라는 설이 있다. 그리스도교의 성화 중에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그림이 있는데, 그림 상부 중앙에 예수가 매달린 십자가는 바로 인류를 타락하게 만든 그 ‘지식의 나무’로 만든 것임이 묘사되었다.

인류의 불행은 낙원추방에서 시작되었다. 그 사건은 나무가 발단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무열매를 두고 신과 다투면서 시작되었다. 인간은 다른 존재와 다르게, 존귀하게 지음 받았다고 믿었다. 성서에 따르면 인간은 신의 형상대로, 신에 의해 제작된 특별한 존재이다. (인간은 신이 직접 흙으로 빚는 수고를 했다) 나무 또한 신의 창조물이었다. 하지만 신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는 인간이 아닌 나무였다. 신은 자신의 피조물이자 자신이 가장 아끼는 대상인 나무를 지키기 위해 인간을 낙원에서 쫓아내었다.

그리고는 자신을 나무에 비유하였다.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호세아 14:8) 신은 자신의 풍요의 원리를 잣나무 열매로 표현한다. 예수도 자신을 ‘포도나무’로 지칭했다. 가지인 성도들이 자신에게 붙어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이 지금도 나무와 그 열매를 애지중지하는 것은 낙원의 기억을 잊지 못하기 때문인가?

[한국조경신문]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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