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Landscape Times] 어느덧 나이가 들어가고 누군가를 만나면 자연스레 경제적 상황에 대한 얘기가 오간다. 이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집과 관련한 부동산 얘기다. 어디에 집을 사서 가격이 올랐더라는 말은 하필 내 주변 지인한테서만 일어나고 나만 교묘하게 피해가는 ‘머피의 법칙’이 여지없이 적용된다. 그러다보니 이런 얘기가 나올 때마다 늘 한숨짓는 사람이 태반이다. 공공의 안녕을 위한다는 조경분야에서 먹고사는 우리들 또한 예외는 아니다. 도시민의 행복 증진을 위한 조경사업으로 돈을 벌기보다 건물에 투자를 잘 해서 부자가 되었다는 누구누구의 소문이 떠도는 것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개발과 관련한 분야에 있으니 관심만 갖는다면 관련 움직임을 조금 더 빠르게 포착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보다 그 잘난 정보로 부동산에 투자? 한 결과가 훨씬 자랑스러운, 참을 수 없는 자본주의의 가벼움이 고착화 된지 오래다.

건물주가 모든 국민에, 심지어 초등학생에까지 선망의 대상이 된 우리 사회를 바라보면서 왜 나는 건물주가 되지 못하는가에 대한 개탄을 하면서도 일터의 전선에서는 마치 다른 사회를 살아가는 양, 가벼운 깃털에 추를 단 마냥 곧 시행될 도시공원일몰제의 부당함을 연신 성토한다. 도시에 없어서는 안 될 공원을 지켜야 한다고 말이다. 이 풀릴 수 없는 내면적 갈등에 관한, 무엇이 우리사회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인가에 대한 고민이 바로 눈앞에 닥친 도시공원일몰제와 겹쳐 머리를 혼돈케 한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두 가지, 개인의 재산권과 공공복리 사이에서 말이다.

수십 년 전에 서울 도심 한가운데 각각 토지를 소유한 두 사람. 이후 소유주 입장에서는 순전히 우연히, 한 곳은 공원으로 계획되었고 다른 한 곳은 바로 옆 토지가 지하철역으로 계획되었다면? 이런 생각을 조금 더 확장해서 깊이 진행해보자. 위에 얘기했던, 건물을 사서 돈을 번 누구누구의 대부분은 자신이 번 돈 만큼 역할을 한 것은 단연코 없다. 국민을 위한다는, 또는 어느 권력자에 의해 어딘가에 지하철역이 생겼고, 어디엔가 KTX역이 들어왔다. 느닷없이 신도시가 만들어지고 버스도 들어오지 않던 곳에 고속도로가 생겼기에 가능했던 일들 아닌가? 반대로, 동일하게 국민을 위한다는 이유로, 화장장이 생기고, 쓰레기소각장이, 아직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 고준위방폐장이라도 계획할라 치면 그 일대 부동산은 끝없이 추락한다.

이 두 사례는 다르지 않다. 어떤 사유로 국가의 정보를 조금이라도 먼저 알면 미처 정보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이미 계획된 미래가치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구매할 수도 있고 높은 가격으로 판매할 수도 있다. 호흡을 길게 해 보면, 그곳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다른 사람이 취했어야 할 이익을 가로챈 것이고, 내가 받아야 할 어려움을 전가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다고 하는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누군가의 이익을 대신한 그런 것이다. 남의 이익을 대신한 것이 자랑이 되는 시대, 미덕이 되는 시대라? 물론 자신의 노력으로 가치를 높인 경우도 있겠으나, 이런 경우는 극히 희소하며 오랫동안 피땀으로 이루어지기에 단기에 높은 차익을 실현시킬 수도 없다.

헌법에는 두 극단적 상황을 모두 ‘공공의 필요’로 인정한다. 그리고 강제할 수 있다. 물론 법에서 보장하는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것은 해당 시설이 들어서는 위치의 토지에 한정된다. 시설이 들어선 후 실질적인 득실은 주변에서 발생하는데도 말이다. 이런 법이 정당한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님비(Not In My Back Yard)는 절대다수 국민에 비난받는 매우 부정적인 단어로 사용된다. 그런데 이 단어로 그 지역주민에게 이기주의라며 매도하기 위해서는 우리 동네에 무엇 무엇을 유치해 달라는, 핌피(Please In My Front Yard)를 외치는 절대다수의 국민도 똑같은 이기주의로 비난해야만 한다.

도시에서 더 나아가 국토로 확장하면 이 문제는 더욱 혼란스럽게 된다. 과거 개인재산권은 안중에 없었던 국가폭력시대에 수많은 토지들이 국가에 의해 점령되어갔다. 국립공원 사례가 대표적이다. 개인의 재산을 아름답다는 이유로 규제를 시작하고 아무런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수익사업은커녕 토지를 무상으로 다른 사람들한테 내어주어야만 한다. 아름다움의 가치가 국가가 인정할 만큼 정말로 훌륭하다면 그 가치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그럼에도 정부는 공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유지를 마치 자기 것인 양 무상으로 개방하고, 또 국민은 사유지 무상이용을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

생활반경이 현저히 줄어들게 될 포스트코로나시대에, 특히 대부분 국민이 아파트에 갇혀 사는 시대에 집 주변 공원은 말 그대로 없어서는 안 될 ‘기반시설’임에 분명하고 지금보다 더 확장해야만 하는 것도 분명하다. 법이 결정한 도시공원일몰제는 단연코 미래도시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설득하고 실현시키는가이다. 단순히 반대만으로 관철시키기에는 조경이라는 분야의 힘이 너무나 미약함을 잘 알고 있다.

비록 토지공개념이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다고는 하나 오래전 일이다. 좁은 국토에서 개발이익이나 손해, 공익을 위해 발생하는 개인의 손해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모두가 분담해야만 한다. 도시공원일몰제 반대에 앞서 토지공개념을 주장해야 할 때다. 분명 헌법이 명시하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이다.

부동산광풍이 사라지면 도시공원문제는 자연스레 해결된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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