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 Times 이수정 기자] “오늘도 이발소 창 앞에가 앉아, 재봉이는 의아스러운 눈을 들어 건너편 천변을 바라보았다. 신수 좋은 포목전 주인은 가장 태연하게 남쪽 천변을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가운데 다방골 안에 자택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그가 종로에 있는 그의 전으로 나가기 위하여 그 골목을 나오면 배다리를 건너는 일 없이, 그대로 남쪽 천변을 걸어, 광교를 지나가더라도 우리는 별로 그것에 괴이한 느낌을 갖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이발소, 빨래터, 포목전, 카페, 한약국, 다방, 식당, 당구장 등 1930년대 후반 청계천변의 도시풍경과 사람들을 카메라로 촬영하듯 생생하게 표현한 박태원의 세태소설 ‘천변풍경’의 한 대목이다. 딱히 주인공도 없이 인물들의 서사는 청계천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짜여 있다. 각 장마다 청계천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것이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90여 년이 지난 지금의 청계천변을 바라보면 소설 속 장면은 생경하지 그지없다. 산업화가 가속화한 1960년대부터 도심제조업으로 바삐 돌아간 이곳은 세운상가와 대림상가를 중심으로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 현재 89개 정비 구역이 도시재생방식 관리로 해제됐지만 2구역과 5구역 일부, 6구역 등 63개 구역은 일몰연장된 상태다.

지난해 시가 이곳 개발구역을 전면 해제하고 도시재생 형태로 추진된다고 해 안심했던 상인들은 또다시 불안에 잠식당하고 있다. 을지로와 청계천 인근은 서울한복판의 노른자위 땅이다. 자본과 토건세력이 가만둘 리 없었을 게다.

시는 일몰연장된 구역에 대해서 세입자들에 대해 대책을 마련한다고 했지만 이곳 상인들은 불안함을 떨칠 수가 없다. 중구청이 도심제조산업 생태계를 보전하고 전통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메이커스파크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곳 상인들에게는 뼈아픈 강제이주 경험이 있다.

청계천 상인들이 청계천복원사업으로 일터를 떠나 가든파이브로 입주했으나 대부분 상인들은 높은 임대료와 적합치 않은 작업환경에 결국 되쫓겼다. 오랜 시간 유기적으로 얽혀 집약적 기술로 진화해온 제조업의 노동환경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기계적 집행이었다.

27층의 주상복합고층아파트가 청계천 바로 앞에 건설됨으로써 경관이 훼손되는 것도 문제다. 아파트가 지어지는 이곳은 3-1과 3-4, 5구역으로 공구상가가 밀집했던 구역이다. 청계천과 바로 맞닿아 있는 이 구역에 건물이 들어서게 되면 멀리 보이는 인왕산이나 남산 같은 자연경관은 특정 건물에 사유화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라는 치명적 재난 경험으로 공유와 협력은 가장 지혜로운 생존법임을 알게 됐다. 을지로의 낡은 골목에 가면 작은 정원들을 볼 수 있다. 녹지율이 제로에 가까운 이곳을 예술가와 젊은 조경인들이 조성한 작은 정원이다. 아무도 돌보지 않을 것 같은 풀과 나무는 시간이 지났어도 인근 상인들 손길 속에 여전히 콘크리트 틈 사이에서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시간을 두고 사람과 도시를 들여다보며 식물을 매개로 한 골목길 도시재생의 다양한 방법을 실험해본 공간 사례였다. 다만 자본의 시계는 그보다 빨리 흘러서 말이지만.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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