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
최문형 성균관대 유학대학 겸임교수

[Landscape Times] 2020년 접어들면서 들이닥친 바이러스 국면은 삶의 많은 부분을 바꾸고 있다. 사람들은 동물이라 움직이기를 좋아한다. 들로 산으로 바다로, 겨울이면 겨울대로 봄이면 봄대로, 원래 자신의 고향인 자연을 찾아 나선다. 사철이 뚜렷한데다 산이니 강이니 들이니 바다를 모두 갖춘 이 땅의 환경과 구석구석 다채로운 먹거리에 따뜻한 인심까지, 무엇 하나 부족할 게 없는 한국인들이 집안에 앉아있을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게다가 친구들과 어울려 먹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니 주말이 되기 무섭게 집밖으로 나갔던 것이 일상이었다. 그랬던 우리가 이제 친구 만나기 힘들어졌다. 모임하기 힘들어졌다.

벼르고 별러 한 번 모여도 마스크 끼고 밥 먹고 이야기해야 한다. 어깨동무라도 하고픈데 최소 2미터는 떨어져 있어야 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들은 어깨를 마주하고 축배를 들고 함께 즐겨야 직성이 풀리는데, 그렇게 어울리다 보면 집단감염의 위험이 올라간다. 이렇게 언제까지 살아야 할까? 사람들은 우울해지고 마음 따라 몸도 무거워진다. 동물처럼 움직이고 장난치고 활발하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어느새 식물처럼 발이 묶였다. 이제 식물인간처럼 되어 버린 처지를 한탄하며 살아야 할 지경이다.

하지만 이 칙칙한 기간을 활용하여 식물들의 생태를 닮아 멋지게 살아보면 어떨까? 식물이 멋진 가장 큰 이유는 식물의 생명력이 동물보다 월등하다는 점이다. 사시나무와 자작나무는 100년 정도, 느릅나무는 400년, 너도밤나무와 참나무는 500년을 산다. 보리수나무, 밤나무, 낙엽송들은 수명이 천년이 넘는다. 동물은 어떤가? 동물 중에 100년 넘게 사는 종은 드물다. 장수하는 종인 거북은 200년을 조금 더 산다. 나무들이 자기 수명을 다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들의 욕심 때문이다. 자라는 도중에 나무를 베어 버리기도 하고 행운의 부적을 만든다고 조금씩 잘라내다가 죽여버리기도 한다.

식물들의 생명력과 생태는 종교적 주목을 받아왔다. 인류 역사를 보면 세계종교들조차 식물의 삶을 동경해왔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인내와 적응력과 부활 능력은 사람들을 압도하고 찬탄을 불러오고 경외심까지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다보니 장수하는 나무 중에는 종교의 혜택을 받은 나무가 많다. 자크 브로스는 ‘식물의 역사와 신화’에서 그 예로 프랑스 북서부 오트노르망디주 외르 지방의 라에드루토 묘지에 살아가는 주목 두 그루를 들었다. 이 두 주목은 둘레가 각각 14미터, 15미터이며 수령은 1300년에서 1400년이다. 한 나무의 아래에는 작은 예배당이 지어졌고 또 다른 나무의 중간에는 구멍을 내어 지름 2미터 높이 3미터짜리 기도소가 만들어졌다. 예배당과 기도소를 가지고 있는 나무이니 살뜰하게 보살피고 아꼈으리라.

불교와 유교의 사랑을 받은 은행나무 ⓒ지재호 기자
불교와 유교의 사랑을 받은 은행나무 ⓒ지재호 기자

은행나무는 불교 승려들의 보호를 받은 나무이다. 승려들은 사찰 주위에 은행나무를 심고 신성한 숲으로 아껴왔다. 은행나무는 유교와도 관련이 있다. 공자묘 뒤쪽에 은행나무를 많이 심었는데, 이것은 행단과 관련이 있다. 은행나무는 독특한 향을 내어 벌레가 꼬이지 않아 학문을 수양하는 행단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쥐라기 중기 때 처음 등장한 은행나무는 무려 1억 5천만년 동안 지구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은행나무는 살아있는 화석이라고도 불린다. 그만큼 생명력이 좋다. 서울 시내에도 가로수로 심긴 은행나무가 많다. 공해와 가지치기를 견디며 살고 있는 그들의 인내와 적응력은 놀랍다.

성경에도 많은 나무들이 등장하는데, 예수는 자신을 포도나무에 비유했다. 자신(성자)에게 붙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성부)에 의해서 제거될 것이라고 했다. 가지는 예수의 제자, 곧 성도를 뜻하며 제자의 사명은 예수의 삶을 본받아 똑같은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이다. 포도나무는 나무 한 그루에서 4천 5백 송이까지도 열매를 맺는 특성이 있다, 포도는 잘 자라고 열매도 잘 맺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기만 하면 된다는 성경의 비유가 가능했을 것이다. 그림으로도 유명한 예수의 최후의 만찬은 바로 포도주로 행해졌다.

유교가 좋아하는 식물 중에는 대나무가 있다. 매화, 난초, 국화와 더불어 사군자로 불리며 꿋꿋한 지조를 상징한다. 대나무의 생태는 특이하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대나무 중에는 하루에 60센티미터씩 자라서 무려 40미터까지 훌쩍 자라는 것들도 있다. 대나무의 꽃은 잘 피지 않는 편이라 본 사람이 극히 드물다고 한다. 보통 50년 주기로 꽃피는데 최대 100년을 지나야 꽃을 피우는 경우도 있다. 대나무는 줄기가 거의 시들어갈 무렵에야 꽃을 피우기 때문에 꽃을 피우고 나면 어느 날 갑자기 대나무 숲 전체가 없어지기도 한다. 또 같은 뿌리에서 나온 줄기는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같은 해에 꽃을 피우며, 멀리 떨어진 곳에 심긴 줄기라도 원래 줄기가 꽃피는 날 꽃을 피운다.

식물들은 천천히 묵직하게 산다. 시간과 공간 속에 매여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자신의 영역을 운영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번 바이러스 사태가 엄청난 일이라고 걱정하고 힘들어 하지만 식물 입장에서는 별 일이 아니다. 그들은 이제까지 많은 일을 겪으며 살아왔으니까. 홍수와 산불과 태풍 등 생존을 위협하는 거대한 자연의 위력과 인간과 동물의 공격에도 묵묵히 살아남았다. 지금 우리의 삶이 힘들다고 식물이 겪어 온 고난에 비할 수 있을까? 환경이 달라지면 어떤가? 식물한테 배워서 적응하고 유연하게 살면 된다. 수천 년, 수억 년을 살아낸 식물들이니까. 지구의 진정한 주인이 된 식물을 따라 살면 우리도 넉넉히 살아낼 것이다. 진짜 ‘식물인간’, ‘나무인간’이 되면 이겨낼 수 있다. 두려울 것도 우울할 것도 없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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