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준호 객원 논설위원
신준호 객원 논설위원

[Landscape Times] 작년 10월 아모레성수 준공 이후에도 성수정원의 설계/시공과정에 대한 현장안내를 요청받아 종종 성수동을 방문했다. 별도의 주차공간도 없고 많은 인원이 집결하기에 전면공간이 협소한 까닭에 성수동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느낄 겸 성수역 4번출구 부근 ‘우란문화재단’의 공개공지를 출발장소로 삼았다. 멀리서도 눈에 띄는 형태와 밝은 색채의 콘크리트 신축건물 앞에 마련된 휴게공간은 자작나무 여러 그루를 모아심어 겨울철 따스한 햇살은 받아들이고, 다른 계절엔 충분한 그늘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중첩된 수직적 선들 사이에서 적당한 위요감을 느끼며 주변을 관찰하기에 알맞은 장소다.

이곳을 출발하여 멀찍이 보이는 대림창고를 뒤로하고 고가 아래 횡단보도를 건넌 후 역주변을 한 블럭만 벗어나면 아직 기계소리가 분주하게 들려오는 공업사들 사이로 ‘카페어니언’이 보인다. 과거 금속공장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는 파란 철문 옆 모퉁이로 새로 난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오래된 건축물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며 조성된 독특한 분위기의 공간들이 펼쳐진다.

카운터가 위치한 메인공간을 지나 밖으로 나가면 외부의 중정을 통해 또 다른 건물로 이어지며, 부속 건물의 뒤쪽과 주동 옥상에 소규모 녹지공간과 함께 마련된 야외테이블과 의자를 많은 사람들이 채우고 있다.

다시 카페를 나와 오른쪽에 펼쳐진 공업사의 풍경들을 바라보며 골목길을 걷다보면 반대편 모퉁이에 목적지인 아모레성수가 나온다. 자동차검사소와 고물상으로 둘러싸인 이 곳 또한 과거 오랜 기간 자동차정비소로 사용되던 공간이다. 아모레 리테일팀과 박천강, 권경민 두 건축가의 설계를 통해 자동차의 출입을 위한 콘크리트 포장을 걷어내어 정원을 조성하고, 수리를 위해 사용되던 필로티 바깥에 유리를 끼워 모든 방향에서 정원을 바라볼 수 있도록 계획되었다. ㄷ자형 건축물로 둘러싸인 폭 8.5미터 길이 23.5미터 남짓한 공간에 도시의 번잡함과 삭막함에서 벗어나 차분함과 촉촉함을 느낄 수 있는 원시적인 숲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안이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얼마간의 실시설계 과정을 거친 후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기존토양을 치환하는 작업을 시작으로 약 한 달의 공사기간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이 세 곳의 공간들은 각각 조성목적이나 접근방식, 디자인과 시공의 주체까지도 모두 다르지만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건축물 또는 공간의 가치가 올라가는데 조경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건축법 제42조 제2항 조경기준의 식재기준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란문화재단의 경우 자작나무, 노각나무, 계수나무 등 낙엽교목의 하부에 그라스류와 함께 일부 가지선들이 강조되는 관목을 식재하였고, 카페어니언의 경우에는 그라스류를 중심으로 단풍나무, 산딸나무와 같이 천천히 자라는 교목들을 작은 규격으로 식재하여 전체적인 공간의 스케일이 유지되었다. 성수정원 또한 200㎡도 되지 않는 식재공간 내에 각기 다른 규격의 교/관목 16종과 50종이 넘는 초본류를 식재하였는데 이들 중 상록수목은 관목인 만병초 6주뿐이다.

이는 오랫동안 관행적, 무의식적으로 지속되어 온 과도한 관목의 군식이나 상록수목의 사용을 최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도시공간 내 조경공간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들이라 생각한다. 공동주택을 벗어나 굳이 조경기준의 적용을 받지 않아도 되는 가로녹지, 공원, 심지어 수목원이나 식물원을 조성하면서까지 대형교목과 상록수목에 대한 집착, 관목의 과도한 군식으로 천편일률적인 경관을 양산하는 것은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위한 것일까.

‘경관을 생태적, 기능적, 심미적으로 조성하기 위하여 식물을 이용한 식생공간을 만들거나 조경시설을 설치하는 것’을 조경이라 정의하며 시작되는 조경기준이 양적인 기준에만 머무르다보니 오히려 공간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있어 걸림돌이 되고 있지 않은지 다시 한 번 고민해볼 때가 되었다. [한국조경신문]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