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하늘물을 오롯이 담는 물영아리오름
[특별기고] 하늘물을 오롯이 담는 물영아리오름
  • 강서병 넥서스환경디자인연구원(주) 부원장
  • 승인 2020.05.18
  • 호수 5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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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병
강서병

[Landscape Times] 오름은 화산활동으로 생긴 작은 산이다. 기생화산(寄生火山) 또는 측화산(側火山)이라고도 한다. 한라산 기슭에는 360여개의 크고 작은 오름이 있다. 화산으로 만들어진 오름은 일반적으로 투수성이 높아 물이 잘 고이지 않는다. 그러나 물영아리오름을 비롯해 물장오리오름, 어승생오름, 금오름 등 몇몇 오름은 정상 분화구에 물이 고여 있다. 이러한 곳을 화구호(火口湖) 습지라고 한다. 백두산 천지와 한라산 백록담을 연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물영아리오름도 이들처럼 오름 정상에 원형의 화구호 습지가 형성되어 있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는 오름에 초원부터 삼나무수림대, 상록활엽수림대, 낙엽활엽수림대가 나타난다. 목초지 초원경관, 천연림 산림경관, 산정 화구호 습지경관 등 경관 다양성은 식물 종 다양성뿐만 아니라 곤충류, 양서·파충류, 포유류 등 생물다양성으로 이어진다. 생물다양성은 결국 인간의 지속가능한 삶과 연결된다.

물영아리오름은 제주와 서귀포를 잇는 도로변에 있어 접근성이 아주 좋다. 생태공원과 탐방안내센터를 거쳐 탐방로에 들어서면 탁 트인 목초지가 나온다. 목초지 둘레로 조선후기의 목축문화를 엿볼 수 있는 잣성(잣담)이라고 하는 목장 경계용 돌담이 쌓여져 있다. 이 돌담은 말이나 소가 산림이나 농경지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물영아리오름의 전이공간에 있는 이 목초지는 목가적인 초원경관을 보여준다.

서귀포시
물영아리오름 ⓒ서귀포시

목초지를 끼고 삼나무 숲길을 따라 걷다보면 오름을 오르는 계단길과 둘레길이 나온다. 계단길은 중간에 쉼터가 있긴 하지만 경사가 급해 다소 힘들다. 넉넉한 마음으로 둘레길을 돌면서 오름의 자연경관을 자세히 음미하는 것이 좋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란 시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쁜 물영아리오름, 오래 보아야 아름다운 물영아리오름이기 때문이다.

삼나무수림대가 끝나고 오름이 시작되는 곳부터는 붉가시나무, 동백나무 등 상록활엽수림대와 서어나무, 팥배나무, 산뽕나무, 때죽나무, 참꽃나무 등 낙엽활엽수림대가 나타난다. ‘천연림이 이런 것이구나’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 군락 아래에는 노루귀, 천남성, 금새우란 등 희귀식물들과 멸종위기야생생물Ⅱ급인 아기뿔소똥구리, 두점박이사슴벌레 등 곤충들이 서식하고 있다.

오름을 오르는 동안 들리는 새소리는 아마도 팔색조인 듯하다. 나무를 오르는 도마뱀, 탐방로 주변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금새우란, 벌들이 수정하러 들어왔다가 나가지 못해 꽃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천남성, 산정 화구호 습지로 내려가는 계단길 주변의 천연림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산림경관이 아니다.

물영아리오름 습지는 직경이 약 100m, 둘레가 약 300m, 깊이가 약 40m이며, 바깥둘레는 1,000m정도 된다. 습지 경계에는 복분자딸기, 좀찔레군락이 서식하고, 습지 내부 가장자리에는 고마리 군락이 띠(帶)를 형성하고 있다. 그 안쪽으로 물고추나물과 보풀군락, 송이고랭이군락, 마름군락이 수심에 따라 차례대로 서식하고 있다. 물그릇처럼 움푹 파인 오름 습지 안에서는 푸른 하늘과 위요된 오름경관 그리고 숲속의 옹달샘 같은 습지경관에 압도당한다.

이런 까닭에 물영아리오름은 2000년 12월 5일 국가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고, 2006년 11월 18일 람사르습지로 등록되었다. 습지보전법에서는 자연상태가 원시성을 유지하고 있거나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지역,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이 서식하는 지역, 특이한 경관적, 지형적 또는 지질학적 가치를 지닌 지역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하여 보전하도록 하고 있다. 제주에는 물영아리오름 이외에도 1100고지습지, 물장오리오름습지, 숨은물뱅듸습지, 동백동산습지 등 4곳이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들 모두 람사르습지로도 등록되어 있다. 물영아리오름은 지난해 람사르습지도시 후보지로 선정되었다. 람사르습지도시란 2015년 제12차 람사르 총회에서 우리나라와 튀니지가 공동으로 발의해 채택한 제도로서 람사르습지 마을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습지를 보전하고 현명한 이용을 유도하기 위해 마련된 국제인증제도이다. 람사르습지도시로 지정되면 향후 6년간 람사르 로고를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람사르 로고가 부착된 지역 특산품은 친환경적 브랜드 가치로 인해 판매가 촉진될 수 있다. 람사르 총회는 3년마다 개최된다. 우리나라는 2018년 제13차 람사르총회에서 인제군 대암산용늪, 창녕군 우포늪, 제주시 동백동산, 순천시 순천만이 람사르습지도시로 인증을 받았다. 이번에 후보지가 된 서귀포시 물영아리오름과 고창군 고창갯벌과 운곡습지는 2021년 제14차 람사르총회에서 람사르습지도시로 선정되기를 기대해 본다.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섬이라는 지질학적 특성 때문에 제주도는 물이 매우 귀하다. 깔때기 모양의 물영아리오름은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을 오롯이 받아 주변의 야생동물들에게 생명수를 공급한다. 옹달샘 동요에도 있듯이 깊은 산속 옹달샘은 새벽에 토끼가 세수하러 왔다가 물을 먹고, 달밤에 노루가 숨바꼭질 하다가 목이 마르면 물을 먹는 곳이다. 야생동물과 인간의 공존을 위해서 숲속의 옹달샘은 반드시 필요한 생태자원이다. 이것이 산지습지가 마르지 않도록 관리되어야 하고 보전·복원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한국조경신문]

강서병 넥서스환경디자인연구원(주)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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