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 성균관대 학부대학 겸임교수
최문형 성균관대 학부대학 겸임교수

“꽃밭에 앉아서 꽃잎을 보네, 고운 빛은 어디에서 났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꽃이여!” 애창되는 가요 ‘꽃밭에서’의 가사 일부이다. 한가로이 꽃밭에 앉아서 오랑조랑 피어있는 작은 꽃들을 바라보며 그 신비로운 빛깔에 감탄하는 시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꽃의 고운 빛에 잠겨있던 시인은 이내 임을 떠올린다. “이렇게 좋은 날에, 이렇게 좋은 날에, 그 임이 오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인이 그리는 임은 연인일 수도 벗일 수도 있으리라. 꽃과 감응하던 시인은 문득 이 아름다운 꽃을 교감하고픈 상대를 생각한다. 자연에서 사람으로, 물상에서 마음으로 자연스레 서서히 옮겨 앉은 마음이다.

노래의 주인공처럼 우리도 어느덧 봄을 맞았다. 바람처럼 휙 스쳐가는 봄이지만 이번 봄은 다르다. 전 세계를 강타한 바이러스에 짓눌려 암울한 사람들을 위무하는 봄이다. 눈뜨면 보이는 도시의 회색 콘크리트 속에서 그보다 더 짙은 진회색빛 마음으로 지내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희망일까? 생명의 안전도 먹고사는 문제도 전부 다 막막해져 가는 2020년의 겨울을 관통했던 우울함을 단 번에 가시게 한 힘은 무엇일까? 그렇다. 꽃밭에 피어난 작고 고운 꽃! 보도블럭 사이를 뚫고 나온 연약한 들꽃과 산비탈에 피어난 야생화들이다.

그들이 없다면 우리가 어떻게 봄을 느낄 것인가? 계절의 변화를 어찌 알 수 있으며 우리의 어두운 마음을 어떻게 추스를 것인가? 그들이 꽃을 피운 진짜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들에게 주는 따사로움과 환한 미소에 탄성이 터질 따름이다. 지구상 어떤 존재가 그저 자신의 삶을 오롯이 살면서 다른 존재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선사할 수 있을까? 봄에 피는 꽃들의 진짜 목적은 그들의 짝짓기, 번식인 줄 알면서도, 그러니까 개화가 인간이란 생명체와는 별 상관이 없는 사건이란 걸 알면서도 우리는 그들이 환희롭다. 우리 인간이 꽃을 좋아하게 된 진짜 이유는 경제적이고 실용적인 것이라고 한다. 진화론자들의 말을 빌리면 꽃을 잘 기억하는 사람은 굶어죽을 확률이 적었다.

꽃이 피었던 곳에는 얼마 후 열매가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런 오랜 세월의 기억이 유전자에 남아서 지금도 우리가 꽃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는 설명이다. 꽃이 인간에 관심이 없다 해도 무슨 상관인가, 우리의 꽃사랑이 먹고사는 문제와 걸린 것이라 한들 또 무슨 대수인가. 누가 뭐래도 무슨 논리라도 그저 꽃이 좋은 걸 말이다.

수많은 전설과 신화가 꽃에서 시작됐다. 끝없는 사랑과 이별이 꽃과 그 운명을 같이 했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꽃이 있고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 꽃이 있다. 어떤 시인은 먼저 떠난 아내를 그리는 마음을 꽃에 투영하여 우리 마음을 울렸고 또 다른 시인은 이별한 임을 야속히 여기는 심정을 꽃에 실었다. 꽃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꽃은 각 나라를 점령했다. 국가들은 저 나름 국화라는 걸 가지고 있다. 자국을 상징하는 꽃이다. 인기가 좋아 두 나라 이상의 국화가 된 꽃들도 있다. 방울꽃은 스웨덴과 핀란드가, 에델바이스는 스위스와 오스트리아가 각기 자기네 꽃이라고 우긴다. 학교들은 또 어떤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각급 교육기관의 개별학교들은 저마다의 학교꽃을 뽐낸다. 친근하고 아름다운 교훈을 교화에 실어 학생들에게 보낸다. 꽃들이 이런 사실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니, 나는 그저 나 살려고 피었는데 사람들이 왜 온통 나 때문에 난리야?’ 라고 의아해할까, 아니면, ‘그럼 그렇지, 인간들이 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지 알고 있군.’ 하고 뿌듯해 할까?

사계절 내내 치열하게 열심히 자기 생을 살아가는 식물은 칭송받아 마땅하다. 그들의 성실함은 본받아 마땅하다. 자신의 욕구에 처절하게 부응하는 꽃은 사랑받아 마땅하다. 그러면서도 다른 존재들에게 감동과 기쁨을 담뿍 안겨주는 꽃은 그 얼마나 대견한가! 우리 또한 그렇게 살고 싶다. 오롯이 성실하게 본성을 완수하며 살고, 세상이 어떻든 누가 뭐래든 꿋꿋이 자기 생을 영위하고 싶다. 겨우 며칠 동안 이지만 고운 빛을 발하고 자신을 키워준 땅으로 불평 없이 돌아가는 꽃은 얼마나 멋진가!

다음 봄을 기약하며 푸르른 잎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봄꽃은 통 큰 군자의 모습이다. 앞서 소개한 가요 ‘꽃밭에서’는 이종택 작사, 이봉조 작곡의 노래로 정훈희가 불러 1979년 칠레국제가요제에서 최우수가수상을 수상한 곡이다. 노래의 주인공은 일명 깽깽이풀이라 불리는 한국 자생의 야생화라는 설이 있는데, 연보랏빛 꽃잎에 자주색과 노란색의 수술을 가진 이 꽃은 해금(깽깽이)의 선율처럼 곱다고 해서 깽깽이풀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산중턱 그늘에서 자라는 이 아름다운 꽃은 뿌리가 노란 색이어서 ‘황련’ ‘조선황련’ ‘토황련’이란 이름도 있다. 아름다움만이 아니다. 소화와 지사에 효능이 있어 한약재로도 쓰이고 또 노란 염료를 추출하기도 한다.

꽃은 땅위에 내려앉은 별이다. 우리는 별에 닿을 수 없지만 땅위의 별인 꽃은 우리 곁에 머문다.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 생텍쥐페리는 별꽃(star-flower) 심벌을 편지나 글 중간에 자주 그려 넣었다고 한다. 꽃과 별을 소재로 한 그의 대표작 ‘어린 왕자’와 어울린다. 우리나라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는 ‘꽃과 별’(이태선 작사, 이성동 작곡)이란 노래가 있다. 노랫말과 곡조가 모두 정다워 옮겨본다. “담 밑에 앉아서 쳐다보면, 별도 뵈고 꽃도 뵈고. 수많은 별들은 하늘의 꽃, 꽃들은 하늘의 별. 꽃들이 예뻐서 별들은 안자요, 별들이 예뻐서 꽃들도 안자요. 초승달이 넘어가네, 밤새들도 잠들었네.” 이번 봄에는 아무 생각 없이 꽃들과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 지난 시간의 어두움을 모두 잊고 꽃들만 느껴 보자.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사랑과 애틋함을 주는 꽃, 더불어 유익함을 주는 꽃들과의 풍성한 만남에 설레는 봄이다!

국립수목원에 피어난 보랏빛 깽깽이풀꽃 ⓒ윤인호 숲 해설가
국립수목원에 피어난 보랏빛 깽깽이풀꽃 ⓒ윤인호 숲 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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