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시대] 착한 조경의 굴레를 벗자
[조경시대] 착한 조경의 굴레를 벗자
  • 이태겸 객원 논설위원
  • 승인 2020.04.20
  • 호수 5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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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겸 ㈜에스이디자인그룹 공공디자인연구소 소장
이태겸 ㈜에스이디자인그룹 공공디자인연구소 소장

[Landscape Times] 졸업연구 크리틱 수업시간, 연구를 진행하는 학생들의 발표가 한창이다. 그 중 도시공원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던 학생들이 동그라미 세 개가 조금씩 겹쳐져 있는 화면을 띄우고 다음과 같이 설명을 시작한다.

“해외사례를 통해 살펴보니 공원의 지속가능성은 크게 ‘경제·사회·환경’의 3가지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다. 도시분야는 사회·경제적인 측면에서, 조경분야는 경제적인 연구는 많이 이루어지지 않고 주로 사회·환경적인 측면에서 분석된다. 공원의 가치를 경제적으로 환산하여 평가하기는 어려우며, 특히 조경공간이 지니는 심미적 특색과 주변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지는 가치는 경제적 가치만으로 환산할 수 없다.”

조경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이야기이니 학생들의 이런 견해는 새로울 것도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의문이 들었다. 조경 공간을 이야기할 때, 경제적 가치에 대한 논의가 자연스레 배제되는 것이 당연한가? 학창 시절을 떠올려 봐도, 현재 주위의 분들을 만나봐도 조경 작업을 경제적인 관점에서 논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주위에서 쉽게 접하는 뉴스나 SNS 등에서는 ‘경의선 숲길공원을 만들었더니 주변 임대료와 지대가 얼마가 올랐다’, ‘아파트 조경을 고급화하니 평당 가격이 얼마나 올랐더라’ 등과 같은 이야기나 ‘숲세권’ 등과 같은 표현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도시나 건축 분야에서는 오픈스페이스와 지가 및 임대료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들이 다수 이루어져 왔고, 이들이 밀접한 관계가 있음은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구체적인 수치를 말하지 않을 뿐 조경공간이 지가나 임대료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도 우리가 조경공간의 필요성과 효과를 논할 때 경제적 효과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나조차도 공원을 왜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환경·생태·시민복지 및 정서함양·커뮤니티 공간 제공과 같은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보다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집값이 올라요, 사람들이 더 많이 오니 장사가 잘 될 거예요라고 말하진 않는다.

보다 착한 효과만을 전면에 내세운 결과, 조경은 건축 등과 같은 소위 돈 되는 개발사업보다 후순위로 진행되거나 그 중요성이 간과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공원이라는 알리바이>(“용산공원”, 김연금, 노수일 외, 2013, 나무도시) 글이나 <라지파크>(Czerniak, Julia, Hargreaves, George 저, 배정한+idla 역, 2010, 조경), <뉴욕 런던 서울의 도시재생 이야기>(도시재생네트워크, 2009, 픽셀하우스) 등에서는 거대공원과 개발계획의 연계성을 밝히고 있다. 현대에 만들어진 대규모 공원을 착한 공간으로만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대규모 도심개발에 대한 알리바이로서 작용하는 측면이 있다고 서술하며 비판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조경은 (개발논리, 경제행위와 무관하게) 착해야 한다라는 어떤 절대 명제에 갇혀 있는 듯 보인다.

흔히들 현대에 와서야 조경이 개발논리와 연계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지만 사실은 그와 다르다. 18세기의 영국 풍경식 정원의 조성은 1713년의 인클로저법(Encloser Act)을 통한 토지의 사유화와 지주계급의 정치력 강화 과정과 연결되어 있다. 인클로저법은 16세기 영국에서 모직물 공업의 발달로 양털 값이 폭등하자 지주들이 자신의 수입을 늘리기 위하여 농경지를 양을 방목하는 목장으로 만들기 위한 법으로 다수의 소작농을 이주시키거나 쫓아내고 양떼 목장을 넓히는 과정에서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식 정원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정원으로 손꼽히는 고산 윤선도의 보길도 윤선도 원림도 마찬가지다. 금산으로 지정되어 사유화가 금지된 섬을 사적으로 점유하며 정원을 만들었고, 이를 통해 해양 및 산림 자원을 확보하고 가문의 영향력을 강화한 측면이 있다. 이 외에 다양한 연구를 통해 동서양의 옛 정원 조성에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배경이 있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이처럼 조경은 역사적으로도 경제적 혹은 세속적 가치와 무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를 사는 우리는 왜 직접적으로 조경과 세속적 가치를 묶어 언급하기를 꺼릴까? 언제부터 조경은 착함의 틀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던 것일까?

착한 조경 혹은 조경가로서의 태도가 정작 조경의 역할과 필요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좀 더 속물적인 조경가가 될 필요가 있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으며, 사회에서 말하지 않는 그 세속적인 무엇을 좀 더 당당히 배우고 연구하고 이야기하자고 감히 말씀드려 본다. [한국조경신문]

이태겸 객원 논설위원
이태겸 객원 논설위원 news@latimes.kr 이태겸 객원 논설위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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