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 Times] 생존한다. 그리고 후손을 퍼뜨린다. 생명을 가진 개체라면 이 두 가지가 성공의 관건이라고 찰스 다윈은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게 뭘까? 자신이 속한 특정 환경에 어떻게든 적응해야 한다. 적응해야만 살아남고 살아남아야 유전자를 후대에 남길 수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종은 무엇일까? 바로 인간도 고등동물도 아닌 식물이다. 겨울에는 땅 속에 뿌리를 꽁꽁 넣고 있어 눈에 잘 띠지 않아 몰랐다고 해도 4월 들어 기지개를 시원하게 켜는 각종 풀들과 잎들과 꽃들을 보면 ‘아, 이제 그들의 계절이 시작되는구나!’ 하고 실감이 든다. 별별 곤충과 동물을 끌어들이는 그들의 향기와 화학물질들이 온 땅을 현란하게 감아 도는 봄이다.

그래서 봄이 나른한 걸까? 식물들의 무시무시한 에너지가 방출되니 말이다. 이제 그들은 추운 계절이 올 때까지 다시금 새로운 생명의 수레바퀴를 쉴 새 없이 돌릴 것이다. 어떠한 존재든 상관하지 않고 그들의 품으로 끌어들일 것이고 인간이든 벌이든 나방이든 파리든 관계치 않고 자신들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유혹할 것이다. 양분이 부족한 땅에서 살면 햇빛 대신 곤충을 먹고 살 터이고 환경이 달라지면 온갖 변신기술을 발휘하여 그 곳에 최적화된 모습을 뽐낼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현명하고 영약한 그들이 자신들의 거대한 발전소를 본격적으로 가동하는 계절이 되었다. 최고의 지략으로 삶을 영위하는 그들에게서 배울 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봄부터 피어나는 꽃들을 보자. 식물도 좋은 자녀를 두고 싶어한다. 인간처럼 말이다. 그러려면 신중하고 지혜로워야 한다. 일단 허약하거나 문제가 있는 자녀가 만들어질 가능성을 피해야 한다.

위험부담을 줄이는 첫 번째 방책은 조합이다. 양쪽 유전자에 다리를 걸치는 것이다. 식물도 짝짓기, 그러니까 양성생식을 한다. 이렇게 되면 유전자가 다양하므로 변화하는 환경에 잘 적응한다. 윗대 조상들로부터 살아남은 유익한 유전자들이 조합되어 질병에도 강하고 특정 포식자에게 단번에 먹혀서 멸종될 위험도 적다.

식물은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고 꽃을 피워 생식과 생존을 도모한다.
식물은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고 꽃을 피워 생식과 생존을 도모한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암・수 양성으로 이루어지는 생식이 여러 모로 유리하다. 무성생식이 계속되면 유전적으로 동일한 개체들이 되므로 질병에 취약하게 된다. 특히 악성 변종이 일어났을 때는 문제가 심각하다. 불량 유전자를 계속 쌍으로 전달하면 어느 순간 모든 개체가 단번에 멸종될 수 있다. 그래서 식물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최대한 유성생식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식물의 경우는 한 가지 위험이 따른다. 암수가 모두 한 공간 안에 있으니 남매끼리 혼인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근친상간이나 근친교배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좋은 유전자의 안전한 전달을 위해서는 타가수분이 정답이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자가수분이 되지 않도록 무진 애를 쓴다.

식물은 자가불화합성 유전자가 있어서 ‘자신’의 꽃가루를 인지하여 자신을 거부한다. 그래서 암술이 수술보다 먼저 성숙하거나 수술이 암술보다 먼저 성숙하거나 하는 방법이 많이 쓰인다. 봉선화와 분홍바늘꽃은 수술이 먼저 성숙하고는 수술이 떨어져나간 후에 암술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반대로 암술이 먼저 자라고 수술이 늦게 자라는 꽃들도 있다. 이처럼 암술과 수술이 시차를 두고 성숙하기 때문에 자가수분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데 식물들의 삶의 전략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안전을 기하기 위해 유성생식이나 무성생식의 두 가지 방법을 다 활용하기도 한다. 무성생식은 빠른 기간에 많은 자손을 확실하게 남겨준다. 사실 특정 환경에 아주 잘 적응한 경우에는 굳이 형질을 다양하게 만들 필요가 없고 자신의 유전자를 그대로 자손에게 전달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 변화와 변신은 삶의 어려운 고비를 헤쳐 나가려는 몸부림의 일환이니까. 식물이 편안하고 안정된 환경에서는 무성생식을 하듯이 인간도 현재 자신의 상황이 만족스러울 때는 굳이 힘든 변화를 꾀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타가수분과 자가수분이라는 두 가지 방식을 다 활용하는 식물들도 있다. 청초한 제비꽃은 봄에는 꽃등애를 유혹하여 타가수분하고, 여름과 초가을에는 꽃을 닫아 놓고 자가수분을 한다. 이 두 가지 방식은 제비꽃으로 하여금 다양한 유전자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많은 종자도 만들 수 있게 해준다. 채송화는 암술과 수술이 같은 시간에 성숙한다. 햇빛이 강한 정오에 꽃이 활짝 피는데 이때 벌들이 찾아와 수분해 준다. 오후가 되면 수분이 안 된 꽃의 수술들은 몸을 이리 저리 비벼대어 암술에 자기 꽃가루를 묻힌다.

이렇게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니 식물이 지구의 점령자가 된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사람들은 식물들이 움직이지 못한다(?)고 하등한 존재로 몰아붙이는 실수를 범한다. 식물인간, 식물정부, 식물대통령, 식물국회…별별 용어를 다 만들어 사용한다. 그렇게 식물을 비하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인간 자신들이 멍청하다는 걸 인정하는 꼴이다.

이제 새로운 국회가 시작된다. 이번 국회는 식물국회면 좋겠다. 매번의 국회에 꽃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 장미국회, 봉선화국회, 제비꽃국회처럼 말이다. 그때그때 환경에 따라 현명하고 지혜롭게 판단하고 결정하여 생존하는 식물처럼, 국가의 번영과 국민의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국회, 진정한 ‘식물국회’가 되면 좋겠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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