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Landscape Times] 산업화·자동화는 인류사회의 총생산을 늘여 풍요로운 문화사회를 만들고, 시민의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많은 사람들이 여유로운 삶을 영위하며 높은 삶의 질을 누리도록 만들어 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은 막상 이 시대가 올 때까지 오랜 시간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 시대는 “쾌적한 환경과 웰빙을 추구하는 친환경사회이기에 조경은 언제나 미래가 밝다”고 들어왔다.

앞서 말한 여러 미래 전제들이 현실이 된 지금 우리는 그 ‘밝은 미래’에 서 있는 걸까? 밝은 미래는 어디가고 현실의 조경은 점점 초라해져만 가고 있다.

너무 밝은 미래를 낙관한 것일까? 이제 조경은 건설분야에서도, 환경분야에서도, 심지어는 도시녹지분야에서도 소외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현장과 한참 뒤떨어져 있다는 학교에서 받는 느낌이 이러할지니 업계에서는 더욱 피부로 느낄 것이라 본다. 최근 조경신문의 지면을 차지하는 뉴스들은 그동안 당연히 우리들 몫이라 여겼던 많은 자리가 위협받고 있다는 내용들이 매주 수북하다. 무엇이 밝은 미래를 암울하게 만들었을까? 꿈을 안고 입학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공원과 녹지, 수목은 조경의 근간이다. 그리고 공공의 영역에서 시민의 건강과 안녕, 아름다움을 책임지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도시기반이기도 하다. 당연히 공공의 영역에서 가능한 넓은 면적을 확보해 주어야만 한다. 하지만 좁은 국토에도 불구하고, 토지를 단순한 수요공급의 원칙에 맡긴 방임적 국가정책으로 인해 현실에서는 그러하지 못함을 잘 알고 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개발이익은 간접 건강을 위한 환경까지 고려할 이성을 마비시킨다.

국가경제가 무한성장할 수는 없는 노릇으로 우리나라도 이제 경제성장률이 매년 최저치를 기록하며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지만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대로 웰빙을 위한 공적투자가 달갑지 않다. 요즘과 같은 심각한 국가재난상황이 닥치기라도 하면 더욱 본능적으로 ‘친환경’ 얘기는 마치 ‘악’인 양 물어뜯기 마련이다.

보편적 복지와 포퓰리즘이 사회적 유행어가 될 정도로 복지예산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음에도 유독 오픈스페이스라는 공공복지는 외면 받고 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도심에 공원과 녹지를 만들고 수목을 식재하는 따위들의 기회비용이 건설과 같은 다른 행위와 비교하여 훨씬 작다고 인식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에 동승하여 영원히 성장할 것만 같았던 과거, 현재를 준비하지 못했고 이제는 옆에서 누가 잠시 흔들기만 해도 뿌리가 흔들릴 정도로 위태로워 보인다. 무엇을 준비해야 했을까?

구구절절 서론이 길었다. 항변할 꺼리야 많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도시공원 일몰제와 겹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던 도시녹지를 활성화시킨 곳은 산림청이다. 도심 내 녹지조성이 ‘미세먼지를 막아주는 허파’라는 홍보를 통해서 말이다. 올해 미세먼지대안사업만 무려 2천억 원이 넘는다. 대부분이 도심에 녹지를 조성하는 비용이다. 이 국가예산을 만들어낸 동력은 미세먼지의 단순측정이다. 미세먼지로 모든 국민의 원성이 드높았던 2017년 봄 도시숲이 미세먼지를 무려 40.9%나 저감시킨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는 도심 한가운데와 숲 한가운데의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하여 숲의 미세먼지 농도가 낮으니 숲이 미세먼지를 무려 40.9%나 저감시킨다는 내용이다. 그냥 봐도 무엇이 문제인지 알 터인데 애써 눈을 감은 모양이다.

산림청이 연구한 자료를 바탕으로 대략 계산해보면 지금 예산으로 10000년 동안 꾸준히 미세먼지숲을 조성한다 하더라도 이로 인해 줄어드는 미세먼지량은 측정기 오차범위 이내이다. 자료생성 주체인 산림청은 그렇다 쳐도 비판의 시각을 견지해야만 하는 환경단체나 전문가들조차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아직까지도 ‘천연 공기청정기’, ‘청정 숲세권’ 등으로 홍보를 하고 있다.

자료야 어찌되었건 도심에 숲이 만들어지니 좋은 것 아닌가 반문할 수도 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모두가 시민을 위하는 공공사업이니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할까?

장풍득수, 찬바람이 많이 불면 살기 어려우니 숲을 만들어 바람을 막는다. 이 전통지식이 현대에 와서 180도 바뀌었다. 숲을 만들어 바람을 불게 하면 도심에 쌓인 미세먼지를 내보낼 수 있다고 말이다. 이런 논리면 숲의 항생물질이 코로나바이러스도 죽인다고 할 기세다. 숲에 사는 사람들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코로나에 걸린 확률을 비교한 수치를 들이밀고 말이다.

분명 도심에 녹지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이다. 정서적으로도 그렇고 육체적 건강을 위해서도 그렇다. 도시공원이 적정하게 분산 조성되어 있었다면 지금 코로나 정국에서 도시민이 이렇게 우울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치 과학적인 양, 유사과학으로 만들어진 지금의 현상은 자칫 도시녹지의 무용론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소외되고 있는 조경이 다시 제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건전한 비판과 함께 우리가 아닌,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객관적 과학을 축적해야만 한다. 우물 안에서 늘 얘기하는 명제인, 녹지의 조성이 경제적 측면에서, 삶의 가치 측면에서 필요한 것임을, 막연한 설득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인식시킬 수 있게 준비해야만 한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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