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 Times 이수정 기자] 장애물 없는 외부공간의 설계디자인(Barrier Free Design)은 장애인을 포함해 어린이, 노인, 임산부, 영유아 등 사회적 약자가 외부공간에 대한 시설물을 이용할 때 불편이 없도록 도입된 국제 규정이다.

2006년 UN이 채택한 ‘장애인권리협약’의 국제적 흐름에 맞춰,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과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의거해 2007년부터 지역, 도로, 여객시설, 교통수단, 공원, 건축물을 대상으로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인증제도가 시행된지 13년이 지났는데 공공 공간과 시설에 대한 사회적 약자들의 ‘접근성’ 수준은 어떠할까.

지난 2월 ‘장애물 없는 외부공간의 설계·시공’을 펴낸 이기영 조경기술사는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 설계로 반영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설계가나 시공사 및 감독의 배리어프리(장애물 없는, 이하 BF)에 대한 인식부족과 전문교육 부재를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어 “그동안 BF 외부공간에 대한 매뉴얼만 있어 실제 현장에서 설계와 시공할 때 헤매는 경우가 많다”며, “장애물 없는 외부 공간에 대한 설계나 시공 시 행정적·실무적·현실적·제도적 미비 등으로 예비인증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이기영 조경기술사
이기영 조경기술사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조경설계 및 건축설계, 도시계획, 조경시공감독 등을 거치며, 2006년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제도 위원으로 참여했다. 인증제도가 만들어진지 13년이 됐는데, 그동안 설계내용을 보면 배리어프리 유니버설디자인에 대한 핵심철학과 핵심원리를 파악하지 못하고 단지 매뉴얼설계를 한다. 심의 받으면 재설계나 수정사항이 자주 나오는 이유다. 지금까지 매뉴얼 서적은 주섬주섬 나왔지만 현장 실무자들에게 필요한 가이드가 없었다. 시설에 대한 매뉴얼은 있지만 통합적이고 종합적인 개념으로 배리어프리 설계를 전달하기에 너무 빈약한 실정이다.

BF 설계·시공에 대한 현행 법령이나 지식, 경험을 토대로 조경, 도시계획, 토목, 건축, 교통 등 관련 분야 현장 실무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 실무자는 물론 대학생도 이해하기 쉬운 수준에서 BF 및 유니버설 설계에 대한 기초적이고 실무적인 내용을 주로 다뤘다.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제도 현황은?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을 설계 및 시공할 때 충족해야 하는 시설디자인 기준에는 다섯 가지 목표가 있다. 안전하고, 차별이 없어야 하며, 편리하고, 쾌적하고, 접근성이 있어야 한다. 그 중 안전성, 비차별, 접근성은 핵심 기준이다. 설계하고 시공하는 사람이 이를 잘 안 지키니 국가가 인증제도를 만들어 의무적으로 따르게 한 것이다. 이 인증기준은 법의 최소한도다. 인증제도가 2007년부터 시행돼왔지만 인증 과정에서 여전히 많은 문제점들이 돌출하고 있다. 인증을 위해 두 가지 절차를 밟는데, 하나는 예비인증이고 다른 하나는 본인증이다. 설계도면으로 예비인증을 받고나서, 도면을 기반으로 시공을 점검하는 본인증을 받는다. 만약 준공검사에서 BF 본인증을 못 받으면 재공사까지 감수해야 하는 막대한 비용문제가 발생한다. 지난 12년 간 약 6000건의 인증을 보면 예비인증이나 본인증 시 보완이 거의 발생하고, 특히 본인증에서 시공된 시설 보완이 대다수 발생한 걸 알 수 있다. 본인증에서 시공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감독이나 감리, 시공자가 BF 인증기준 내용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BF 공사 발주할 때 BF 인증 받아야 하는 걸 고지해도 말이다.

장애물 없는 외부공간 관련 교육 개선이 필요해보인다

중앙정부가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제도를 시행하면서 서울시, 제주도, 경기도, 전북도, 용인시, 화성시, 천안시를 비롯해 11개 지자체에서 유니버설 디자인(UD) 조례를 제정했다. 서울시를 비롯한 21개 지자체가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조례를 만든 상황에서 대학 조경학과에서 강의를 안 하면 직무유기다. 설계하고 시공할 인력 키워내는 게 대학인데 조경관련 법규는 설명하면서 BF 관련 법규는 잘 안 다룬다. BF에는 도시계획, 토목, 건축, 조경, 장애, 심리, 복지, 미학 등 다양한 분야가 혼합돼 있다. 이 모든 분야를 알아야 하는데 대학에서 BF 교육을 안 하는 게 말이 되나. 한국복지대에 유니버설 건축학과가 지난 2018년 개설된 정도다.

호주 서오스트레일리아대학(UWA)에서는 조경가 등 전문강사를 둬 강의를 진행하고, 벨기에 디펜벡대학(University of Diepenbeek)에서는 건축학과 학부 및 대학원에서 필수과정으로 채택했다. 그밖에 미국, 덴마크, 그리스 등 많은 국가에서 조경뿐 아니라 건축, 교통, 도시계획, 언어, 색상 등 여러 분야에 걸쳐 BF 관련 과목을 개설해 온오프라인으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BF 설계는 전 세계적인 추세다. 보편적 설계로서의 BF가 시공 시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

공개공지 등 일상적 접근 공간 BF인증 의무화·우수사례 보급…향후 과제

앞으로 UN 권유체계에 따라 장애인 분류체계를 바꾸면 장애인 비율이 10%까지 올라갈 것이다. 교통약자는 2030년이 되면 전 인구의 약 40%인 2천만 명에 이르며, 노인인구는 25%로 늘어날 것이다. BF 외부공간 설계와 시공에 대한 개선이 시급한 때다. 길을 걷다보면 대지와 보도 사이 불편한 공개공지가 많다. 사회적 약자가 일상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공개공지나 보도에 접한 사무실이나 상점에 대해 인증을 의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장애물 없는 외부공간에 대해) 배리어프리나 유니버설보다 ‘Aceess’라는 접근이용 개념으로 설계한다. BF 설계는 단순하지만 ‘누구나 접근 가능한’ 통합적인 설계여야 한다. 내국인과 외국인 차별금지나 언어 장벽 해소도 BF다. 토일렛, 레스트룸, 클로짓으로 번역하는 화장실만 해도 그 뜻이 각각이다. 이처럼 정보전달도 BF에 포함된다. 미국의 경우 정보를 전달하는 홈페이지부터 ‘접근성’을 제공한다. 이용자의 혼란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다. 이는 장애인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의료나 통신분야도 법으로 강제해야 하는데 아직 이 분야는 손도 못 대고 있다. 장애물 없는 설계와 시공을 널리 확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수 사례를 발굴하고 보급해야 한다. BF 관련 데이터 베이스를 축적하고 공개하는 것도 좋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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