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진혁 (주)누리넷 대표
구진혁 (주)누리넷 대표

지역계획가에게 있어 ‘농촌다움’은 프로젝트의 시작에서 끝까지 풀기 힘든 난제로, 필자에게도 지난 20년간 지역의 프로젝트를 진행 하면서 가장 많이 고뇌에 빠지게 만들었던 단어이다.

“OO스럽다”, “OO답다” 라는 사전적인 의미는 ‘그러한 성질이 있음’을 뜻하는 것으로 ‘농촌다움’은 농촌의 풍경과 모습에서 농촌스러움을 나타내는 것이다. 농촌스러움은 ‘시골 같다’, ‘촌스럽다’ 와는 다른 의미로 시골스러운 풍경에서 더 나아가 자연스럽고 편안한 풍경 속에서 그 지역의 기후와 풍토를 담고 지역적인 색깔까지도 담고 있어야 하며, 그 지역의 농업, 산림, 주거환경과 고유한 지역문화를 담고 있어야만 농촌다움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농촌경관에서는 ‘농촌다움’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는 마을의 모습이 아니며 살아왔고 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의 손때가 묻은 오래된 전통이 남아 있는 마을 모습으로, 마을의 공간을 이해하고 이치를 찾아내어 자연스러운 경관이 형성된 전통적인 농촌마을에서 더 쉽게 느낄 수 있다.

전통마을의 공간구조를 보면, 바람과 물(風水)의 이치를 고려해 마을을 배치하고 부족한 마을의 환경을 보완하기 위해 마을 어귀에 비보림인 마을숲을 조성한다. 지형의 높낮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치된 살림집과 그것을 연결해 주는 꼬불꼬불한 마을길에서 농촌다움이 잘 보존된 농촌경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 지역을 대표하는 농작물과 농업활동에 의해서 농촌다운 경관을 볼 수 있다. 특히 사람들이 느끼는 농촌다움에는 전통문화가 잘 보존된 농업활동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드넓게 펼쳐진 평야지의 쌀 농사 풍경, 이른 봄 섬진강변의 언덕에서는 매화꽃 풍경, 봄 들판 초록의 청보리밭 풍경, 산비탈의 경사지를 따라 굽이굽이 펼쳐지는 수십 층의 다랭이논 풍경, 하얗게 소금을 뿌려놓은 듯한 메밀밭 풍경이 그 지역을 대표하는 농촌다운 농업경관이며, 세시풍속이나 24절기에 따라 행해지는 농촌의 다양한 전통행사도 농촌다움의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한 건축가의 집념에 의해 농촌다운 경관을 만들어낸 사례를 전라북도 무주에서 찾을 수 있다.

청보리밭풍경
청보리밭풍경

바로 감응의 건축가 고 정기용 선생으로, 1996년부터 10여 년 동안 무주의 작은 마을회관부터 면사무소, 운동장, 시장, 납골당까지 30여 곳에서 농촌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건축가는 도시와 농촌을 떠나 근본적인 물음인 “어디에서 나는 자연과 더불어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건축의 공공적 기능이 주변 환경에 녹아드는 맞춤형 농촌 공공건축으로 표현되도록 하였으며, 무주의 땅과 기후와 풍토와 환경에 적절한 해답을 가져오는 고민을 통해 농촌다운 건축과 농촌다운 풍경을 만들어 내고자 하였다.

최근 정부 각 부처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지역발전을 위한 농산어촌 사업들이 시행되고 있다. 이러한 사업들은 지역주민들의 참여에 의해 ‘상향식 계획’으로 진행되고 있으나, 일부지역에서 주민들의 지역 이기주의와 행정의 선심성 지원으로 근시안적이고 누더기식 계획이 진행되어 농촌다움과 거리가 먼 곳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지역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건물 신축과 환경개선 사업들이 이루어지고 있어 농촌의 경관개선 보다는 경관을 파괴하는 계획에 가깝게 진행되고 있는 것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고 정기용 건축가는 무주 공공건축 프로젝트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조경은 나무를 심고 경관을 다루는 건물의 보조수단이 아니라 모든 것으로부터 자연이 주인임을 실현시키는 것이 본래의 역할이다.”

농촌다움도 농촌의 고유성과 향토성을 찾아주는 자연과 소통하는 일로서 자연이 그 지역의 주인임을 실현시키는 계획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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