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시대] 아파트 화(花)단에 꽃(花)이 없다
[조경시대] 아파트 화(花)단에 꽃(花)이 없다
  • 한승원 객원 논설위원
  • 승인 2020.03.31
  • 호수 58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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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원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도시농업과 농업연구사
한승원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도시농업과 농업연구사

[Landscape Times] 봄바람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예년 같으면 따뜻한 바람 따라 어디론가 나섰을 텐데 올해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만든 사회적 거리 덕에 선뜻 집을 나서지 못하고 있다. 문득 창밖으로 내려다보니 아파트 화단 곳곳에는 어느 해와 다름없이 목련이 꽃망울을 터트리고 울타리의 개나리도 만개했다. 답답한 마음에 오랜만에 아파트 단지 내 산책이라도 할 마음으로 봄의 꽃향기와 신선한 바람을 기대하고 나섰지만 가까이에서 본 화단에서는 공원이나 숲에서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은 다 채우지 못하고 이내 돌아왔다. 화단에 꽃이 없다.

최근 지어진 새 아파트는 조경공간이 넓어진 덕에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식물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오래된 아파트일수록 식재된 식물들을 보면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관심 정도를 판단할 수 있다. 주민들의 보는 눈이 다 다를 수 있으니 과감하게 새로운 식물들을 단지 내로 들이는 것도 망설여지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요즘 아파트 입주 전 주민들이 직접 품질검수단을 조직하여 하자로 인한 분쟁을 줄여나가는 사례들이 많아지면서 조경 수목 하자의 종류와 함께 다양한 발생 원인들이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살아있는 식물들을 공산품과 같은 잣대로 품질을 평가하는 것이 혹 어떤 경우에도 살아남는 ‘공산품스러운’ 식물들만 심게 되어 전체적인 녹색의 질은 떨어지게 되는 건 아닐까하는 걱정이 앞선다. 다양성에 대한 가치는 오랜 시간이 지나 사람마다 다르게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니.

주거공간인 아파트의 녹지는 공공의 공원이나 숲과는 다른 사적인 정원의 개념으로 접근할 때 녹색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지속적인 관리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단지 내에 커뮤니티공간이나 동 주변화단 등 입주자들이 참여하여 관리할 수 있는 정원공간이 필요하다. ⓒ한승원
주거공간인 아파트의 녹지는 공공의 공원이나 숲과는 다른 사적인 정원의 개념으로 접근할 때 녹색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지속적인 관리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단지 내에 커뮤니티공간이나 동 주변화단 등 입주자들이 참여하여 관리할 수 있는 정원공간이 필요하다. ⓒ한승원

아파트는 주택난이 심한 도시에 대량으로 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르 코르뷔지에의 혁신적인 생각에서 시작됐다. 지대를 많이 필요로 하는 단층의 주택들을 건물과 정원으로 기능을 분리하여 건물은 수직으로 쌓고 그로인해 남는 지상의 공간을 ‘자연녹지로 만들자(Tower in the Park)’는 개념이다. 많은 사람들이 살아야하는 도시의 주거계획으로 건물을 일종의 상품처럼 제조해 빠른 시간 내에 거주공간은 확보하면서 공공의 정원인 공원을 통해 녹지가 인간에게 주는 혜택까지 놓치지 않았으므로 혁신적인 방법임에는 틀림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변화하는 아파트의 모습에서 당시 놓쳤던 주거공간의 다양한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집집마다 거주자의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변형 가능한 가변형 구조로 실내공간이 바뀌고 있는 것은, 편리함 다음의 가치는 남과는 다른 개성, 즉 다름을 인정하는 다양함의 가치가 우선하는 데 있다.

주거공간인 아파트의 녹지는 공공의 공원이나 숲과는 다른 사적인 정원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녹색의 질을 높이는 손쉬운 방법이 될 수 있다. 지속적인 관리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단지 내에 커뮤니티공간이나 아파트 동 주변 화단 등 입주자들이 참여하여 관리할 수 있는 정원공간이 필요하다. 집안을 청소하고 기분전환을 위해 가구와 벽지를 바꾸듯, 아파트 화단을 깨끗하고 다양한 식물들로 기분전환이 될 수 있다면 ‘우리 집’보다 ‘우리 아파트’라는 더 큰 공간을 가졌다는 가치가 더해진다.

매일 지나치는 공간이 다양한 식물들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식물을 해치는 것 같은 주변의 잡초 하나를 뽑아주면서, 유난히 더운 날 시원하게 물을 주면서 발견한 블루베리 열매하나 입에 물고 집으로 들어가면서 멀리 보이는 나무하나 풀 한 포기를 위한 관리의 필요성을 공감하게 된다.

관리사무소마다 조경관리가 어려운 이유 중 첫 번째가 예산부족이라는 답변을 듣다가 언젠가 어느 관리소장님께 여쭤봤다. 조경관리를 위해 세대 당 얼마씩 내면 되겠느냐, 오천 원, 만 원 정도면 되는 건가 질문하니, “천원이면 충분합니다.”

허무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자신감으로 변했다. “아파트 화단에 꽃을 피우자.”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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