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시대] 디자이너병, 예술가병
[조경시대] 디자이너병, 예술가병
  • 신준호 더가든 부장
  • 승인 2020.03.23
  • 호수 5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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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호 더가든 부장

[Landscape Times] 

#1

조경시대 첫 번째 기고문을 송부한 다음날, 서울 출장길에 올랐다가 ‘조경일상’이라는 이름으로 열린 토크쇼에 청중으로 참석했다. 본인이 가진 설계철학과 방법론을 몇 가지의 키워드로 정리하여 개인적인 경험과 결과물들을 자신 있게 소개하는 발표자의 모습만큼이나 집중해서 이를 지켜보는 주변 학생들의 진지한 표정과 눈빛들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토크쇼 막바지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현실적인 고민부터 조경의 미래, 조경가가 되기 위해 요구되는 자질, 조건 등에 관한 폭넓고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와중에 조경학과 졸업을 앞두고 있다는 한 학생은 이런 자조 섞인 질문을 던졌다.

“나름 설계수업을 열심히 들었는데 아직도 직선과 곡선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어요.”

#2

그로부터 2주 뒤, 다른 매체를 통해 한 조경학과 교수가 비니 매스(Winny Mass)의 디자인에 대한 자신의 평가와 견해를 밝힌 글을 읽게 되었다. ‘서울 국제교류복합지구(SID) 수변생태 여가문화 공간 조성 국제설계공모‘의 당선작으로 선정된 해외 디자이너의 설계안에 대하여 많은 논란과 부정적인 반응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미’라는 본질에만 집중한 과감하고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글의 후반부에는 비니 매스의 또 다른 작업인 서울로의 당선안을 사례로 들며 이 또한 진지함을 벗어던진 ‘예쁘고 새로운‘ 디자인이라고 평가했다. 뿐만 아니라 조성이후 시민들과 세계적인 건축, 디자인 매체들의 반응과 관심도를 근거삼아 서울의 최근 프로젝트 중 최고라 추켜세우기까지 했다. 이 글을 함께 읽은 주위의 몇몇은 진심으로 그런 생각을 했을리가 있겠냐며 오히려 반어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비니 매스의 디자인과 한국 조경의 현실을 함께 비꼬는 것이라 해석하기도 했다.

#3

2년 전 국내의 한 지자체에서 스위스 출신의 건축가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와 진행했던 프로젝트 회의에 참석하게 되어 직접 그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건축물의 한가운데 비워진 공간을 두고 이를 둘러싼 실내의 모든 방향에서 전면유리를 통해 내부를 바라볼 수 있도록 디자인된 단순한 형태의 계획안을 보여주며, 그 안에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넣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몇 가지의 기술적인 문제와 해결방안 등을 짧게 논의한 후 그는 미팅에 참석한 모든 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주차장으로 이용 중이던 대상지에 도착한 후 사전에 계획했던 중정의 실제 크기에 맞춰 모든 이들을 둘러 세우더니 자신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위치를 하나씩 조정했고, 동행한 직원들은 수정된 선형을 바로 도면에 옮겼다.

코로나19 슈퍼전파자로 알려진 국내 31번 확진자의 존재가 밝혀지기 직전에 일어난 #2는 올해 들어 나에게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직접 디자인 실무를 진행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다른 이들의 설계안을 심의 또는 심사할 수도 있는 지위에 있는 교수로서 너무나도 과감하게 공개한 생각에 통수를 아주 제대로 얻어맞았다. 특히 서울로의 디자인에 대해 조성초기부터 지속적으로 비판해온 입장이기에 객관적인 기준이나 근거를 생략하고 매우 주관적인 감상만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후에 그러한 디자인과 결과물도 다양성의 범주에서 포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매우 위험해보였으며, 더 나아가 조경디자인분야의 전문성을 떨어뜨리는 언사라고 보였다. 오히려 현재의 한국조경이 직면한 디자인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선 하루빨리 말뿐인 개념이나 전략의 논의에서 벗어나 실제 공간과 경관의 크기(scale)나 형태와 디자인요소 간의 관계성, 시점의 이동이나 빛과 바람의 변화와 같은 기본적인 것들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하며, 이를 기준으로 디자인을 가르치고 평가하여 발전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과거 디자이너병, 예술가병에 감염된 후 스스로 섬에 격리되어 치유의 과정을 거치며 항체를 얻고 보니 아직도 설계판에 그 병이 돌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되고 걱정스럽다. 혹시나 이 병에 걸리진 않았는지 의심되는 이들은 #1의 학생이 던진 마지막 질문에 진지하게 답변해보는 것으로 감염여부를 진단하길 바란다. 또한 아직 확실한 백신이나 치료제가 개발되기 전이니 이상증세를 보인다면 2차 감염예방과 대가병으로 심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자가격리 후 #3을 매일 읽는 것을 적극 권장한다. [한국조경신문]

신준호 더가든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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