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문형 성균관대학교 학부대학 겸임교수
최문형 성균관대학교 학부대학 겸임교수

[Landscape Times] 도대체 우리 인간이 이렇게 당할 줄은 몰랐다. 육안으로 볼 수 없는 탓인가? 정체를 가늠하기 힘든 새로운 왕관 모양 바이러스에 세계가 우왕좌왕 한다. 최고의 이성과 기술을 자랑하고 살던 인류라는 종을 비웃기라도 하듯, 자신이야말로 지구의 주인인 듯 왕관을 뽐내며 이 바이러스는 종횡무진 서식지를 넓히고 있다. 인간이 이런 종류의 미물에 덧없이 쓰러진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역사를 보면 바이러스의 공격은 여러 번 있었다. 잊을 만하면 찾아와 인류를 괴롭힌 이놈들 때문에 의학이 발달하기도 했다. 도처에 이 ‘왕관바이러스’ 소식이 널렸다. ‘카더라~’하는 이야기부터 ‘그렇다!’는 과학 정보까지.

놈의 정체를 파악하기 힘드니 전문 학술지에 실린 ‘그렇다!’는 논문도 다음날에는 ‘카더라~’로 전락한다는 게 문제다. 미지의 적에 대한 정보가 나날이 갱신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언제까지 인류가 이 버거운 전쟁을 계속해야 할까? Covid19를 쫓아낼 묘책이 나올 날이 언제일까? 바이러스로 인해 달라진 일상을 지내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하나 있다. 좀 생뚱맞을 수 있지만 인간이 변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것이다. 때와 장소, 환경에 따라 자유로이 기능과 형태를 바꾸는 식물들의 능력이 늘 부러웠다. 한 곳에 정착해서 살아가야 하는 식물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생존능력을 키웠으니까.

햇빛이 부족하거나 너무 많은 곳, 수분이 지나치게 많거나 메마른 곳, 양분이라곤 없는 토양, 혹한과 혹서에도 적응하고 살아남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러다 보니 얼핏 보면 정체를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변신해버린 친구들도 많다. 가시모양이 되어버린 선인장의 잎이 그렇고 혹서에서 살아남으려고 온 몸을 땅 속에 묻어버린 돌식물이 그렇다. 영양분이 없는 땅에서 악착같이 초식이나 육식을 하며 살아가는 네펜데스 종류도 있다,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변신하여 큰 나무가 떨구는 잎을 받아먹기도 하고 아니면 집단으로 움직이는 사회성 곤충인 개미를 유인하여 단체로 먹어치우며 생존을 영위하기도 한다.

식물의 삶을 보며 어떻게 이토록 처절하게 살아가는지,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동물이야 살던 지역이 마음에 안 들면 떠나가면 되지만 식물은 그럴 수 없지 않은가! 적의 침입이나 양분과 수분, 햇빛이 부족한 환경에서 살아내야 하다 보니 별별 수단을 다 동원해왔다. 심지어는 다른 식물에게 기생해서 사는 종류들도 있다. 피투성(被投性)의 운명에서 천명을 다하려다보니 변신의 천재가 되고 말았다. 인간은 어떤가? 4차 산업혁명시대를 사는 인간은 호모 노마드(Homo Nomad)답게 이동하며 산다. 가상의 공간에서 디지털 노마드로 살아가기도 한다. 21세기 인류는 이동의 자유를 누린다.

그런데 이번 ‘왕관바이러스’ 국면은 이런 ‘동물적’ 인간의 일상을 모조리 바꾸어 버렸다.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능력으로 이동하는 바이러스의 힘에 장악되어 이제는 인간의 이동이 어려워졌다. 움직이지 않고 접촉을 최소화하는 것이 살길이 되었다. 하나였던 지구촌은 바이러스를 피해 쌓을 수도 없는 장벽을 높이려 서로 안간힘을 쓴다. 인간보다 더 빨리 더 멀리 움직이는 종에 의해 인간이 제압되어 버렸다. 우리는 아직도 이 바이러스들이 어떤 방식으로 거주지를 넓히는지 정확히 모르고 있다. ‘장님 코끼리 더듬기’ 식으로 겨우 정체를 알았다 싶으면 이들은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재빨리 ‘변신(변이)’해 버린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평균 15일에 한 번씩 모습을 바꾸어 버린다고 하니 이들도 자신이 살아남으려고 기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까지 이들의 성공(?) 전략을 살펴보면 그 비결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그 어떤 동물보다 재빠르게 이동하며 옮겨 다닌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식물을 ‘닮아’ 변신에 능하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 후자에 주목해 보자. 보름에 한 번씩 변신(변이)하는 바이러스! 이들의 변신 능력은 식물을 닮았다. 식물 중에 선인장이나 돌식물이나 네펜데스들 보다 훨씬 고수(高手)로 변신하는 것이 있다. 바로 옥수수이다.

옥수수는 순식간에 변종을 만들 수 있다 Pixabay
옥수수는 순식간에 변종을 만들 수 있다 ⓒPixabay

우리와 친숙한 옥수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순간 모습을 확 바꾸어 버린다. 옥수수 중에 알록달록한 알을 가진 옥수수가 그 결과이다. 옥수수에는 전위유전자(jumping gene)가 존재하는 데 이 유전자를 이용해서 부분적으로 유전자 구성을 재배열한다. 환경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면 유전자 구조를 유동적으로 바꾸어서 단기간에 고도의 변종들을 만들어 낸다. 옥수수의 이 능력을 간파하고 평생을 연구한 여성과학자 바바라 메클린톡(Barbara McClintock)은 노벨과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인간의 이성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인간은 아직 자신을 순간에 바꾸는 옥수수의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

합성생물학이 머지않아 캣 우먼이나 배트맨 같은 새로운 생명체, 그러니까 인간의 변종을 만들어낼 것이란 전망이 있지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21세기의 길목에서 DNA지도를 다 해독했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변신은 고등동물이기에 오히려 어렵다. 그래서 식물의 변신 능력이 더할 나위 없이 부럽다. 요즈음 우리들 삶은 식물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여행의 자유도 이동의 즐거움도 타의로 또는 자발적으로 누릴 수 없게 되었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자신에게 정해진 땅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완전히 변해버린 생존환경에 적응하면 살고 그렇지 못하면 도태되는 실정이다.

우리도 돌식물처럼 땅에 몸을 박고 살 수는 없을까? 우리도 선인장처럼 작은 가시로 수분을 보존할 수 없을까? 네펜데스처럼 삶의 방식을 통째로 변화시킬 수는 없는 걸까? 더 큰 욕심을 부린다면 아예 옥수수처럼 적이 침입하여 해치려 할 때 순식간에 유전자를 변화시켜 그에 대응하면 어떨까? ‘왕관바이러스’가 자기가 왕 인양 기승을 부리는 요즈음, 식물의 변신 능력이 한없이 부럽다.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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