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Landscape Times] 조경을 하시는군요. , 이번 봄에 나무를 좀 심으려 하는데 어떤 나무를 심으면 좋겠는지요?” “제가 집에 작은 정원이 있는데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전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더 어울리는 나무가 있을까요?” 다른 분야의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가 시작되면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해 의례적으로 내게 건네지는 말들이다. 물론 관심의 표현이리라 생각하지만 이 분야를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한 사람으로서 마음 한편에 자리한 불편함은 떨쳐내기 어렵다. 이런 만남에의 반응은 무언가를 설명하려 하거나, 그냥 머쓱하게 지나치거나, 아니면 정말 질문에 관심을 가져주거나. 각기 대응은 다르겠지만 대개 시작은 비슷할 것이리라.

전공이 조경이신데 다른 일을 하시네요?”, “조경에서 이런 일들도 하는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공간정보, 경관, 역사문화유산, 생태복원, 야생동물, 도시재생, 마을만들기 등 외부에 알려진 설계와 시공이라는 한정된 영역의 틀에서 다소 벗어난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말이다. 반백년의 역사를 앞둔 학문분야 치고는, 환경이라는 복잡하고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말 그대로 종합예술로 자찬하는 분야 치고는 외부에 고착된 이미지가 참 가볍고 단순하기 그지없다.

일반인이 접할 수 있는 백과사전(두산백과)에서 조경을 설명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아름답고 유용하고 건강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인문적·과학적 지식을 응용하여 토지를 계획·설계·시공·관리하는 예술로 요약되며, ‘심미성과 기능성, 공공성의 이념을 지향하며’, 인간생존 조건의 총화인 환경의 개선을 위해, ‘환경과의 상호관계를 의도적으로 변화시키는 인간행위를 광의의 조경으로 정의하며 조경의 역사가 곧 인류의 역사라 말한다. , 모든 인간의 삶과 연계된 환경의 개선행위라 정리할 수 있다.

2013년 한국조경학회에서 제정한 한국조경헌장도 한번 살펴보자. ‘조경은 건강한 사회의 척도이고 행복한 삶의 기반이다. 조경은 생태적 위기에 대처하는 실천적 해법을 제시하고, 공동체 형성을 위한 소통의 장을 마련하며, 예술적이고 창의적인 경관을 구현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환경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은 조경의 책임이자 과제이다조경은 상처받은 자연을 건강하게 치유하며,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누구에게나 평등한 공공환경을 조성하며, ‘역사성, 지역성,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며, 창의적 예술정신을 지향함을 추구해야 할 가치로 정의하고 있다. 12개 항목으로 정리된 조경의 대상은 말 그대로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공간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조경이 해결해야 할 과제인데, 요약해보면 보편성과 다양성의 동시 추구’, ‘역사의 이해와 미래를 위한 창의적 문화 형성’, ‘지구환경위기의 대응’, ‘지속가능한 환경복지 지향’, ‘시민사회 협력의 참여문화와 리더십’, ‘도시문제 해결을 위한 전문지식과 기술’, ‘도시환경문제의 융합적·통합적 접근이다.

대개의 헌장이나 선언들이 그러하듯 그 시대에 담아야 할 좋은 말들을 모두 담아놓은 참 아름다운 문구들의 향연이다. 깊이 새겨야 할 말이기에 연구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고 가끔 읽어보지만 조경인의 한 사람으로 드는 생각은 어딘가 모를 불편함이 있다. 과연 조경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사회적 인식이 이런 가치의 어느 정도까지 도달해 있는가 하는 자괴감이 들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제도관련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다. 조경관련은 아니었지만 조경학과를 지원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경험이다. 당시 설계라는 직업이 마음에 자리하였는데, 대부분의 설계가 뭔가 딱딱한 이미지의 것이었던 데 반해 조경이라는 분야는 자연과 함께하는 아름다움과 여유가 있는 설계분야로 막연하게 그려졌고 망설임 없이 대학진로를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진로정보라고는 학원에서 나눠주는 책의 학과소개 몇 줄이 전부인 시대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었는지 지금도 신기할 따름이다. 모의고사 때마다 매번 같은 학교 조경학과를 선택했던 내게 주위 친구들이 하던 말은 한결같다. “삽질하러 가냐?”, “삽질 열심히 배우고 가라” 30년 가까이 지난, 정보의 홍수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조경이라는 이름을 마주한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은 당시 정보가 없던, 오로지 나무 심는 것으로 인식하던 고등학생의 눈에 비친 모습과 어떻게 달라졌을까?

다시 조경헌장으로 돌아가 보자. 이 헌장에서 가장 중요한 조경이라는 단어를 지우고 읽어보면 어떨까.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과연 괄호 안에 들어갈 단어를 집어넣으라는 문제를 낸다면? 아니 세상에나, 내 행복한 삶의 기반이 되는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이렇게 중요하고 아름다운, 공공의 복지를 위한 환상의 단어를 설명하는데 왜 생각나는 단어가 없지?

국토개발이 국가의 중심축이었던 1970년대 초반 만들어진 조경이라는 이름이 담고 있는 한계는 분명해 보인다. 그 의미를 반세기동안 그렇게나 확장하려 애썼던, 이 단어가 지닌 심오한 함의는 우리 내부에서만 무한 확장을 계속하는 건 아닐까 한다. 지금의 시대는 더 이상 도시공간의 확장이 중심이 되는 시대가 아니다. 많은 고심을 통해 탄생한 조경헌장을 되새기며 헌장이 제시하고자 하는 우리 분야의 재정의와 고유한 가치의 공유를 위한 새로움을 위해 더 큰 변화를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도시계획을 포함해 환경해설, 공간정보, 커뮤니티디자인, 생태복원 등 조경분야의 일부로 새롭게 만들어진 다양한 분야가 짧은 시간에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된 것과는 달리 그 근간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도시근교 비닐하우스로 대표되는, 변할 것 같지 않은 조경이라는 이름의 이미지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이다. 괄호를 넣어 이 함의를 담을 새로운 그릇을 빚어보면 어떨까.

[한국조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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