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씨드림이 지난 1일 정책토론회 및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Landscape Times 이수정 기자] 토종씨앗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토종씨드림(대표 변현단)이 토종씨앗을 공유재로서 보호하고 농민의 종자주권을 지키는 정책과 법제화 추진을 본격 선언했다.

조상 대대로 선발돼온 토종씨앗은 생물다양성이라는 유전자원적 가치는 물론, 오랫동안 한국 기후 풍토에 적응돼 왔다는 측면에서 생태적 가치가 높다. 이는 농민이 키우고 수확하는 과정에서 확보된 자가채종 때문에 가능했다. 토종씨앗에 대한 법이 부재한 가운데 다수확 품종에 밀려 점점 사라지는 토종씨앗에 대한 농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안정적인 자가채종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토종씨드림이 지난 1일(토) 정책토론회를 완주에서 개최했다.

변현단 토종씨드림 대표
변현단 토종씨드림 대표

변현단 토종씨드림 대표는 “토종씨앗을 사유하지 않고 소수의 회사가 독점해서는 안 되며, 제도나 틀에 묶여 우리 스스로 목을 죄는 형태가 돼서도 안 된다”며, “종자회사에서 여러 가지 토종씨앗을 품종명으로 팔고 있다. 발아되지 않고 기형되는 현상에 봉착했다. 생물다양성협약이나 나고야의정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국가가 토종씨앗을 보존하기 위해 힘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결국 민간이 압력을 가할 수밖에 없다. 이번 정책토론회는 농민에게는 현실적이고, 소비자들에게는 밥상에 쉽게 오르고, 토종씨앗의 스토리와 음식문화와 건강을 지켜내는 이 모든 것에 관해 입안화하는 과정이다. 상반기 이후 외연화해 법제화를 추진할 것이다”고 이번 정책토론회 배경을 밝혔다.

우선 토종씨드림이 제안한 주요 토종씨앗 정책은 생물다양성국제협약에 의한 전통지식과 연계된 식물재래종 활성화 법 제안 등이다. 그밖에 이번 정책토론회에서 논의된 사항은 향후 국회의원 및 종자관련 농민단체와 연대해 정책으로 구체화할 계획이다.

이날 정책토론회에서는 농민, 법학자, 도시농업 전문가, 토종학교 관계자가 참석해 토종씨앗과 관련된 유통현황, 법 제도 검토, 토종작물 재배 활성화 방안, 도시농업에서의 토종작물 접근방법 등 입체적 논의가 진행됐다.

전 세계 약 1300여 개의 종자은행에는 약 600만 품종의 종자가 보관돼 있다. 기업이 씨앗을 독점하면서 약 1만 종의 식물 품종이 재배돼 왔지만 오늘날에는 이들 종자 중 극히 일부분에 국한돼 생산되고 있다. FAO(유엔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농작물의 생물다양성은 생산성을 높이는 작물에 의해 급속도로 축소되고 있다.

지난 1일 토종씨드림이 개최한 토종씨앗 정책토론회 모습
토종씨드림이 개최한 토종씨앗 정책토론회 모습

김은진 원광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종자에는 전통적 가치들이 있다. 그 중 토종씨앗은 더욱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전 세계 농부들이 농작물로 쓰는 종자는 120종 종자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경우는 더 적다. 이 120종만이 기업에 의한 돈벌이 대상이다”고 지적했다.

또한, 종자에 대한 농민의 권리를 담은 국제조약의 국내 시행을 위한 국내법에 ‘농부권’이 애초 빠져있음을 비판했다. 농수산생명자원의 보존·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보면, FAO에 의해 채택된 식물유전자원의 국제조약 핵심인 현지 내 보존이나 농부권에 대한 규정이 누락돼 있다. 단지, 시험과 연구를 위한 유전자원 연구기관의 활용에 대한 것만 언급됐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종자산업법도 비슷한 사정이다. WTO 출범 이후 TRIPs 협정(개발도상국의 유전자원과 전통지식을 보호하는 국제조약)에 따라 1995년 종자산업법이 제정, 이후 종자생산권한은 국가에서 품종을 생산한 육종가에게 넘어갔다. 김 교수는 “종자산업법을 만들어 육종가 권리와 자가채종 작물을 국가가 정하려 했으나 아직까지 못하고 있다. 손해배상 청구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며, 자가채종은 국가가 허용하는 범위에서만 가능해졌다고 개탄했다.

종자산업법은 UPOV(국제 식물신품종보호동맹) 협약을 기준으로 한 식물품종보호제도를 기반으로 한다. UPOV 협약이란 신품종 종자를 보호품종으로 등록함으로써 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농민들이 여러 세대 걸쳐 채종을 통해 고착한 종자 역시 등록되면 보호받을 수 있는 국제조약이다. 그러나 일단 등록이 된 품종의 경우에는 그와 유사한 품종까지 보호범위가 확장되므로 농민들의 자가채종은 제한받게 된다. UPOV 협약을 보면, 농민이 육종한 품종이지만 새로운 품종으로 간주되는 ‘신규성’ 항목이 있다. 김 교수는 “기업이 더 이상 ‘신규성’을 무기로 종자를 뺏는 걸 막아야 한다. 이럴수록 대외적으로 종자 독점을 못하도록 알려야 한다. 씨앗에 대한 농민의 권리를 안정적으로 보유하는 걸 방해하는 법, 특히 종자산업법은 어떻게 해서든지 폐지하는 방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다”고 전했다.

토종씨드림이 개최한 씨농제에서 전시된 토종볍씨
토종씨드림이 개최한 씨농제에서 전시된 토종볍씨

토종씨앗은 도시농업 분야에서도 매력적인 소재다. 김진덕 전국도시농업시민협의회 대표는 “도시농업이 자가소비를 목적으로 하므로, 소량생산이라도 개성이나 맛 때문에 토종씨앗운동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면서도, 최근 도시농업의 개인화와 맞물려 토종씨앗을 심고 먹는 소비적 태도 혹은 단순 전파에만 머물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농부권이 박탈되고 종자주권이 지켜지지 않고 (토종씨앗에 대한)전통 역사가 사라져간다. 토종농사 지으면서 얘깃거리 만들어 지켜야지, 먹고 소비하는 데 그치면 안 된다. 학교텃밭에서 토종종자를 교육할 때도 토종이 갖고 있는 인문학적·철학적 가치를 질문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좋은 농부를 키워 농민과 연대하고 교류하고 활성화시켜 지속가능한 농업 동반자로서 역할 만드는 게 도시농업 역할이다. 도시농업도 이제 지구 살리는 역할로 모토를 넓힐 때다”고 강조했다.

환경과 생물다양성 보존을 위한 공공재로서 토종씨앗은 현재 소농 중심으로 재배, 채종되고 있다. 소농들에게는 토종작물로 재배한 먹거리 판매나 홍보는 여전히 높은 벽이다. 봉화에서 농사짓는 박성인 토종씨드림 운영위원은 “취약계층의 먹거리 등으로 토종씨앗을 활용할 수 있다”며, 토종에 대해 합리적이고 자율적 가격을 모색하고 토종 먹거리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소비자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직거래 농산물 바우처 제도를 제시했다.

토종씨드림이 개최한 씨농제에서 전국농민 및 도시농업인들이 전시된 토종씨앗을 관찰하고 있다.
토종씨드림이 개최한 씨농제에서 전국농민 및 도시농업인들이 전시된 토종씨앗을 관찰하고 있다.

이력이 정확하지 않고 토종씨앗의 고정성이 담보되지 않은 채 유통되는 것도 문제다. 국내 종자회사의 토종씨앗 판매 현황을 발표한 장재학 토종학교 운영자에 따르면, 종묘사나 종자회사 또는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종류의 토종 혹은 재래종 종자가 무분별하게 판매되고 있다.

이에 토종씨드림은 올해 상반기 내로 토종씨앗에 대한 특성 및 수집내역 등 정보를 관리하고 입증하는 토종씨앗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예정이다.

한편, 같은 날 열린 토종씨드림 정기총회에서 변 대표는 2020년 사업계획안으로 ▲채종관리농가 확대 및 육종학교 통한 채종육종농가 육성 ▲토종교육 활성화를 위한 토종생태학교텃밭 연구모임 진행 ▲한국토종축제 개최 등을 밝혔다.

끝으로, 변 대표는 12년 토종씨앗운동 기록집 발간을 성과로 꼽으며, “아직 토종씨앗이 경작단계에 불과하지만 토종씨앗을 매개로 예술, 철학, 언어, 수학 등 통합교육이 가능하다”며 토종씨앗에 내포된 교육적 가치를 강조했다.

[한국조경신문]

저작권자 © Landscape Time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